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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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설명에 거의 모두 해당되어서 역시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라며 새삼스러워했었다. 그래도 먹방도 한 번씩 보고,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흉내도 내보고 하니 먹는 거에 완전히 손놓고 있지는 않는데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와 할머니, 고모, 그리고 동네 할매, 아지매들과 나눴던 음식을 통해 그립고 포근하고 때로는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고 다정하게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안동 임하라는 곳에서 음식 솜씨 좋기로는 최고인 어머니가 정성으로 손질하고 조리한 음식들을 오감으로 경험하며 성장했다. 거의 한 일가가 마을 하나를 이루는 시골이었던 그곳에는 풍족하지는 않아도 신선한 재철 재료들을 이용해서 다양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아낌없이 나눴던 어머니와 할머니,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레시피의 음식이더라도 만든 이의 사정, 이야기가 담기면서 그 맛이, 모양이 그럴 수밖에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정성 가득했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 그 음식을 나누며 도란도란 즐거운 이야기가 오가던 소박한 마실에 대한 그리움, 이제는 많이 잊혀가는 정겨운 옛말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음식으로 기억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리움을 얘기하는 작가의 문체는 따뜻하고 정겹다.

저자가 언급한 시장이나 동네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인접하여 개인적으로는 한층 더 친근감을 느꼈고, 도시 스타일로 자라서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건강한 간식을 먹이겠다고 애쓰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냉동실에 가득한 나물들을 보며 그걸 보내준, 종손 며느리로서 우여곡절 많은 생을 살다간 고모를 회상하는 글에서는 살짝 울컥했다.

 

아침저녁 빈소에 상식상을 지어 바치는 시어른 삼년상이 끝나고 여든이 됐을 때 고모는 내게 말하셨다. "야야 살아보니 인상이 참 허쁘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허쁘다, 라고 토로하신 후 고모는 다시 십 년쯤을 더 사셨다. 그 나머지 십 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세월이었다. 시어른 밥상을 차리는 대신 철따라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물을, 곡식을, 양념을, 장아찌를, 김치를, 젓갈을, 부각을, 정과를 다식을 모조리 내게로 보내고 또 보내셨다.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中 p.87

 

아픔은 사람을 사무치게 만든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임하의 아이들은 열 살만 넘으면 대개 의젓해졌다. 그 의젓함은 특히 여자들이 더했다.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中 p.17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무언가가 자라는 데는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의 성장에 자양분이 된 어머니, 할머니, 고모,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의 정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사랑과 정성에 남자 어른들은 한참 비껴 서 있다는 느낌은 참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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