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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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구가 보내 준 구호물품(?) 안에서 제일 먼저 이 책을 집어 든 건 '모파상'이라는 작가 때문이었을 거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뭔가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 물론 읽는 내내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다가 정리하고 작은 항구도시 르아브르에 정착한 롤랑 일가. 술과 낚시를 좋아하는 롤랑 씨와 그 부인, 그리고 두 아들은 어느 날 파리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 마레샬이 죽으면서 막내아들 장에게 전 재산을 남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유산 덕에 변호사로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된 장에게 느낀 축하와 질투, 두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큰아들 삐에르는 절친한 약사 마로브스꼬와 맥주홀 여종업원의 은근한 암시에 자신의 가족에 대한 예상치 못한 의혹에 휩싸이게 된다.

읽으면서 설마설마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순간, 결국 모파상이 쓴 <사랑과 전쟁>을 읽은 것인가 싶었다. 롤랑 부인이 장에게 진실, 진심이라고 늘어놓는 얘기들은 아무도 배려하지 않은 몹쓸 고백이었고, 그나마도 철저하게 자기 합리화된 것이어서 나는 장과 삐에르가 너무 불쌍했다. 사랑하는 어머니니까 용서하고 무마하고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다고 해도 삐에르는 왜 떠나야 하는가. 사실 가장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삐에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삐에르의 심경과 행동들을 따라가면서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긴장하면서 읽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예상했던 반전이 그대로 맞아서 약간 김이 샜고, 이 난장극 주역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뻔뻔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물론 개개인이 느끼는 괴로움과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 안에서 이해되는 지점은 괴리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라는 입장과 '오죽하면 그랬겠냐'라는 입장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나는 사건이 일어난 과거는 제쳐두고 일단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상처 입힌 입장이 있는 사람의 태도는 우선적으로는 무조건적인 사죄가 먼저여야 한다고 믿는다. 아마도 내가 짜증 났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롤랑 씨는 상관없다고 해도 롤랑 부인은 삐에르에게는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중편과 장편의 경계선에 있다는 이 작품은 모파상의 네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는 모파상,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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