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오로지 공중파 4개 채널로만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정말 한참 늦게 케이블 TV를 보기 시작한 편이라서 나는 친구가 선별해서 녹화해 준 비디오테이프로 케이블 프로그램들을 먼저 접했었다. 각종 미드에 정말 적나라한 리얼리티까지 친구의 기준을 통과한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은 매번 커다란 쇼핑백에 담겨서 나한테 오곤 했었다. 쉬는 날 테이프 하나씩 하나씩 보물 상자 열 듯 꺼내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때 봤던 <베첼러>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떠올랐다.

요즘이야 우리나라도 리얼리티 예능의 수위라는 게 상당히 올라간 편이지만, 그때 봤던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랑은 아직도 비교할 게 아닌 거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에서도 리얼리티 안에서 다툼, 갈등, 썸 등을 볼 수 있는데 외국 리얼리티 속에서 - 물론 교묘한 편집으로 한층 과장되게 - 보여주는 폭력성이나 선정성의 수위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이 『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의 배경이 바로 그런 서바이벌 리얼리티 방송이었다.

 


전혀 연결고리 없는, 직업도 성별도 다양한 10명의 참가자가 유명세와 상금을 위해 경쟁하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 <하우스 어레스트>. 3시즌이 시작된 이 방송은 예상과는 다르게 연일 화제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그 중심에는 한층 방송을 극적이고 흥미롭게 조작하는 능수능란한 프로듀서 제럴딘이 있다. 2명의 참가자가 탈락하고 8명이 남은 시점에 켈리라는 참가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용의자를 한정 짓지 못하고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럴딘과 참가자들은 방송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수사 책임자 콜리지 경감을 비롯한 경찰들은 참가자들의 배경 조사와 동시에 방송되지 않은 녹화 테이프까지 전부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계속 진행되는 방송 중에 켈리에 대한 살인 예고장이 발견되고 최종 후보 세 명 중 한 명도 죽을 거라는 경고까지 적혀 있어 참가자들은 패닉 상태가 된다.

개인적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크게 관심도 없고 잘 보지 않아서 이 책을 읽는 게 녹화 테이프 전체를 훑어봐야 하는 콜리지 경감의 심정만큼이나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수사물에서 화합이나 팀플레이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세 경찰 콜리지, 후퍼, 트리샤는 수사 내내 서로를 반면교사를 삼느라 바쁜 느낌이라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래서 마지막에 보여준 아주 극적인 팀플레이가 약간 의아한 느낌이랄까.

분명 책을 읽었는데,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우스 어레스트>를 직접 본 듯하다. 시청자들에게도, 같은 참가자들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안 되는 상황의 참가자들과 그런 참가자들의 이미지를 시청률이 오르고 화제를 유지하는데 유리하도록 어마어마하게 편집하는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에 현기증이 났다. 이 좋은 머리와 실력을 왜 이렇게 쓰고 있나라는 생각을 나만 하지는 않을 거 같다.

거침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맞을 것이다. 그런 리얼리티 방송을 보는 거 같은 생생함을 소설 안에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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