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봄날 오후의 국철 승강장에 서서 죽음이 몇달 뒤로 다가와 있다고 느꼈을 때, 몸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선혈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믿었을 때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 자신의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 「나무 불꽃」 中

 

친구가 빌려준 마지막 책. 오늘 다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 ^^;; 연작소설집으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의 세 작품이 묶여 있다. 연작소설이라고 쓰인 걸 보지 못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인물과 이야기가 연결이 되길래 깜짝 놀랐다.

불편한 마음으로 읽다가 문득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던 초기에 봤던 한국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생각이 났다. 넘치는 열정으로 우리나라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묶어서 상영해주는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보러 다녔는데 상영관은 사람이 거의 없이 텅텅 비어 있기가 일쑤라 전세 낸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막 좋은 기억은 아니다. 재미를 떠나 이해나 공감할 만한 여지를 찾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쓴 한강 작가의 작품인데 마치 한 사람의 속내를 180도 뒤집어 본 느낌이다. 그나마 「나무 불꽃」에서 영혜의 언니 마음에는 조금 다가설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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