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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이라며 친구가 빌려준 책. 친구 말고도 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 제목이 특이해서 궁금했는데 작가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포함해서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품들 모두 공통적으로 친구나 연인, 가족과의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불분명한 감정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이유는 누구도 명확한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왜곡되거나 해서이기도 한데 전반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데 더 능숙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덕분에 다 읽고 나서도 인물들이 겪은 사건이나 감정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데 이 직전에 읽었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는 아주 대조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겪는 많은 순간들의 감정이란 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기보다는 오히려 이 작품의 화자들이 표현하듯이 모호한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그런 점에서 친구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고... 개인적으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으면서 Bernard 씨가 생각났다. 스위스 여행에서 만난 Bernard 씨는 열차에서 엉터리 영어로 딱 40분 정도 대화를 나눴을 뿐인 여행객인 나에게 지금까지도 때때마다 가장 먼저 축하나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헤더와 로버트가 나눴던 교감과는 다르지만, 혼자 했던 여행의 마지막까지 나는 Bernard 씨가 보여준 친절 덕분에 한층 안도감을 느꼈으니 헤더가 로버트에게 느꼈을 감정의 일부분은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싶다.
감정을 안으로만 삭히는 게 익숙해져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문득 친절하고 다정한 누군가에게 긴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