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는 여자들
바네사 몽포르 지음, 서경홍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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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읽고 싶었던 책. 바르셀로나 출신의 저자가 소설 속에서 실제 마드리드의 유서 깊은 공간을 다루고 있어 마드리드의 여행안내서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홍보 문구가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내가 인상 깊게 본 홍보 문구랑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거리가 좀 있었다.

마드리드 심장부에는 수수께끼 같은 여인 올리비아가 운영하는 '천사의 정원(Jardín del Angel, 하르딘 델 앙헬)'이라는 꽃 가게가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곳에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이 가게에 남편을 잃고 삶의 길도 잃은 듯한 마리나가 나타난다. 덜컥 점원으로 고용된 마리나는 이곳을 드나들던 카산드라, 갈라, 오로라, 빅토리아를 만나 완벽하고 재능 넘치게 보였던 그녀들 나름의 사정을 알게 되고 깊은 교감을 나눈다.

 

 

마드리드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예상했던 나는 각자 괴로움과 고단함, 지난함을 안고 있는 5명, 아니 올리비아까지 6명의 평범한 여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이들이 교류를 통해 진심을 나누고, 상호 간의 성장을 도와 결국은 모두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 과정은 낭만적이지도, 수월하지도, 통쾌하지도 않고 주인공들 만큼이나 읽는 나에게도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끈질긴 설득과 쉬운 듯 어려운 실천의 치유 과정이었다.

여러 가지로 전에 읽었던 『남은 생의 첫날』과 닮은 책이었다. 차이점이라면 프랑스 작가와 스페인 작가라는 점, 한쪽이 프랑스의 유명한 가수의 노래 가사를 이야기 진행에 이용한다면, 다른 한쪽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의 실제 명소와 스페인 문학 거장들의 유산을 활용한다는 점 정도... 물론 작가들의 사회 문화적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남은 생의 첫날』이 좀 더 트랜디 드라마를 보는 거 같달까.

 

슬프게 지냈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슬픔을 얼마나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슬픔을 미화시키려 애썼다. 그 슬픔이 허용될 수 있는 최선을 순간만을 허용했고 영원히 숨겨버리려고 했다. 우리는 강한 체했으며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슬픔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그것은 하나의 기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슬픔을 몰아내려고만 했고, 참아냈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 『꽃을 사는 여자들』 中

 

올리비아는 5명의 여자들에게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라고,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며 행동하라고 한다. 이 조언 덕에 마리나는 남편의 유해를 가지고 절대 할 수 없을 거 같았던 혼자만의 항해를 떠난다. 빅토리아, 카산드라, 갈라, 오로라도 갖은 합리화로 스스로가 만들었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다. 홍보 문구가 내세웠던 마드리드의 유서 깊은 풍경, 비밀이 많은 거 같은 꽃 가게 주인 올리비아, 그리고 이야기 속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스페인의 작가- 저자, 자신을 포함해서 -들 덕에 살짝 이 이야기가 논픽션인가 싶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생각과는 달라서 초반부는 좀 어렵게 읽었던 거 같다. 마드리드를 여행하면서 읽었으면 좋았을걸. 중간중간 펜 일러스트로 그려진 거리와 건물들이 실제로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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