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 출근한 사이먼 신부 - 슈퍼마켓 점원이 된 신부님의 달콤 쌉쌀한 인생 이야기
사이먼 파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20년간 신부였던 저자는 사제직을 그만두고 슈퍼마켓에 취업한다. 이 책은 그가 3년간 슈퍼마켓에서 보냈던 날들의 기록이다.

사제직을 그만두고 슈퍼마켓에 취업하게 된 전후 사정이 궁금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구체적인 상황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적지 않은 나이에 슈퍼마켓에 취업하게 되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냥 어렴풋이 모든 직업들이 그렇듯, 밖에서 보는 모습과 내부자가 겪는 직업 내의 세계가 전혀 다른 얘기인 것은 종교인에게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은 의도적으로 무례하게 굴지는 않는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은 슈퍼마켓에 가서 한바탕 진상 좀 떨고 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우리는 삶에서 아슬아슬하게 쥐고 있는 것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공황상태에 빠진다.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세 살배기 아이처럼 허둥댄다.

- 『슈퍼마켓에 출근한 사이먼 신부』 中

저자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매장 노조 위원장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직원들을 대변하기도 하고, 이력서나 기타 지원 서류 작업을 도와주기도 대필해 주기도 한다. 사과를 매대에 쌓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베이커리 코너에서 보람을 느끼는 저자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국적이 혼재되어 있는 슈퍼마켓 직원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여러 가지 사정을 가진 동료들, 말이 통하지 않고 골치 아픈 일은 무심하게 넘겨버리며 곤란한 상황만 피하기 바쁜 매장 매니저들, 쓸데없는 일에만 힘 빼고 중요한 지적 사항에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본사 사람들과 진상 진량 보존의 법칙을 매일매일 지켜주는 각종 고객들까지... 불합리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그 체제 자체가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기에 분노하거나 흥분하기보다는 머릿속으로 냉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권력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일은 높은 곳에서 맨 정신으로 버티려 애쓰는 사람이나 그런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 스스로 미쳐가는 과정이다.

한 예로 신부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신부가 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절대 교회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높은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포기해야만 지역사회와 함께 엄청난 모험을 헤쳐나갈 수 있다. 신부는 인간과 신의 가능성에 신념을 두고 있어야 하지만, 제정신으로 버티고자 한다면 절대 교회라는 제도 자체에 신념을 두어서는 안 된다.

- 『슈퍼마켓에 출근한 사이먼 신부』 中 

나도 이전에 위의 문구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미쳐가는 과정이라고까지 표현할 줄이야. ^^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한 윤리 체계가 필요한 직업일수록 직업적 소명을 중요시하면 버틸 수가 없는 거 같다. 저자가 신부직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거 같은데 거기에 이를 때까지 많이 괴로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제였던 사람이 슈퍼에서 일한다니'에 중점을 두면 의외로 재미가 없을 수도 있을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삶에서 단지 방향 전환을 한, 한 사람의 일기장을 공유한다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 윈스턴, 개리, 페이스, 캐스파, 모하메드 등 저자의 동료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새 매니저 콩이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