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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옆에 '45세 딸이 80세 아빠와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순간의 기록들'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와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시는 탓에 아빠와 함께 간 어린 시절 놀이공원의 기억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고 가족끼리 피서 간 적도 없다. 어린 시절 유일한 바닷가의 기억은 이모네 가족들 여행에 엄마가 나만 딸려 보낸 거였다. 작년에 어머니 모시고 베트남 여행하면서 부모님과의 여행은 정말 쉽지 않고, 내가 해왔던 여행이랑은 전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적지 않은 나이의 아빠와 딸의 여행이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나 파란만장할까 싶기도 해서 기대가 되었다.
첫 책을 출간한 저자는 출간 기념 마케팅의 일환으로 34일간 714킬로미터이 나체즈 길(미국 테네시에서 앨라배마, 미시시피까지 3개 주를 걸쳐 있다)을 걷기로 한다. 하루 24킬로미터를 걷는 이 여정에 그녀를 길에 내려주고 숙소로 데려오는 등 도와줄 사람으로 아버지가 함께 한다. 걸으면서 점점 신체적으로 힘들고 아버지에게도 지쳐가던 그녀는 일정이 3주 남았을 무렵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저자 안드라 왓킨스의 아버지는 수면에 무호흡증 치료기가 필요하고, 과체중에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든 데다 보청기도 착용하고 건강 상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계신다. 책을 읽다 보면 여정 중에 아버지가 어떻게 되시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녀를 돌보고 여정 중에 마주친 사람들에게 그녀의 책을 파는 데 열심이다. 그런 아버지와만 지낸 지 딱 이틀 만에 각자 연락을 취해 도착한 어머니는 그녀에게 또 다른 불안 요인이었다. 매사 모든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녀와 충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부모님과 함께하는 일정이 얼마나 엄청날지 기대하던 그녀는 매일 걸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일정 속에서 그동안 놓쳤던 부모의 나이 듦을 제대로 실감하고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의 진심을 어렴풋이 마주하게 된다.
나는 우리 모험의 모든 요소를 아주 작은 거까지 기억하고 싶었다. 아빠의 웃음소리, 엄마가 내 이름을 말하는 방식,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와 아빠를 꼭 끌어안고 그들을 내 뇌 회로에 깊이 각인시켰다.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니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모두 날마다 죽어간다. 누가 먼저 죽는지 어느 정도 순서는 있지만, 다 죽어 간다. 그런 명백한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실감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나이가 먹으면 부모님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저렇게 나이가 드셨는지 모르겠는 부모님, 약해짐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부모님,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걸 본인 마음대로 기억하시는 부모님, 같은 말 무한 반복하시는 부모님... 이 책이 좋았던 건 그런 부모님과 자식인 그녀의 714킬로미터에 이르는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자신과 부모님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까지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서 나는 저자가 진정으로 이 여행을 부모님과 같이할 수 있어서 기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눈물이 좀 났는데 그녀와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예산 삭감으로 인원이 감축되었음에도 추가 수당 없이 개인 시간을 내어 저자를 살피고 있었던 공원 관리원들 때문이었다. 이런 티 나지 않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세상도 무사히 지나간다.
나는 나체즈 길이 어떤 의미가 있는 길인지 잘 모른다. 저자는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 때문에 이 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 나체즈 길은 메리웨더 루이스 때문에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녀에게 이 길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