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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이룬 거 많은 부유한 아버지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암에 걸려 입원한 병원에서 역시 암에 걸린 다섯 살 소녀를 만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로부터 도망치는 어린 소녀와의 이야기를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둔 밤, 아들에게 편지로 남긴다. 사랑했다는 고백과 함께...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이 먹으면서 바라보는 아버지는 내가 겪은 누군가와도 다른 독특한 당신만의 체계를 가진 세계였다. 그 체계 안에서 아버지 스스로는 참 좋은 사람이었으나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진 엄마에게, 자식인 우리에게도 아버지는 차갑고 불편하고 심지어 한 번씩 못된 사람이었다. 어느덧 아버지가 첫 자식을 얻었을 때도 훌쩍 지난 나이에 이른 나는 이제 아버지의 세계가 조금은 보인다. 어머니께서 실없는 소리라고 번번이 일축하시는 아버지의 말씀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은 어떤 것인지 약간씩은 알 거 같다. 더 어렸을 때 파악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까? 그랬다면 쓸데없는 괴로움, 걱정이 좀 줄었을 거 같기는 하다. 그래도 이제라도 아버지라는 세계를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고, 어머니와도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일생일대의 거래』 속 아버지도 자신의 체계 안에서 가족을 사랑했다. 다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도망갔을 뿐이다. 병에 걸린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아내와 아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사랑을 주지 못했음에 후회하고 그럼에도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순간을 회상한다. 무심한 듯한 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섯 살 소녀의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그의 일생일대의 거래가 뭔지 예상이 되었다. 다만, 그 거래로 인한 결과가 예상과는 달라서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일생일대의 거래마저도 가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그냥 당신의 결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 그 뒤로 부모님에게 결코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괴로움에 아버지는 삶 내내 자신의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자신의 세계에서는 여리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아버지가 결정한 이 거래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열독 프로젝트 두 번째 책이었던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매뉴얼 없는 가족 관계 속에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워했던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관계 속에 정답은 없다.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그 관계 속에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모두를 사랑할 수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더라도 모두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니 그저 자신의 체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 저자는 가족 때문에 고민이 많던 길고 신기한 해를 보낸 시점에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작품 속 아버지는 작가의 모습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부모가, 좋은 자식이, 좋은 형제가 되려는 부담감에 집 앞에서 멈칫하는 모두에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좋다는 건 너무나 다양한 기준으로 가지고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