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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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열독 프로젝트 매3소, 그러니까 매주 1권의 소설을 3주간 읽는 미션단(?)에 선정되었다. 기대하고 있는데 도착한 첫 책은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캄보디아에서 호텔 원더랜드를 운영하는 복희씨는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탓에 손님에게도, 교민사회에서도 좀 어려운 사람이다. 호텔 운영이 걱정된 직원 린의 강력 건의로 만든 한 달 살기 상품으로 지우가 원더랜드 101호의 손님으로 오게 되고, 특별할 거 없는 복희씨의 일상과 호텔 부지를 노리는 교민회 회장, 그리고 교회 목사와의 갈등에 눈치 없이 개입하는데...

 

 

첫 페이지를 넘길 때만 해도 그날 다 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위대로 활동하는 선배들과 대립하던 도입부부터 나는 복희씨가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더 빨리 읽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복희씨는 원칙이 확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일상도 정확한 루틴대로 진행하고 호텔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원더랜드에 투숙하는 손님들은 늦게까지 흥청망청 놀 수도 없고, 다른 투숙객에게 민폐인 행동도 용납 불가다. 전날의 실수를 묻는 취객에게 기물 파손에 대한 추가 요금을 청구하고,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며 인터넷 후기로 협박하는 손님에게도 강경한 태도로 불가 입장을 밝히는 복희씨, 차갑다, 덕분에 나라 이미지도 망가진다, 별의별 소리를 들어도 그녀는 단지 몇 가지 원칙도 못 지키는 그들이 한심하고 멍청하다고 느껴질 뿐이다.

이런 복희씨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은 호텔 운영을, 그것도 외국에서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읽다 보면 그녀의 가족을 관통하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그와 맞물려 있는 캄보디아 교민 사회의 이야기까지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된다.

복희씨는 자신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곳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 대신, 자신이 진짜 살펴야 하고 챙겨야 하는 곳에는 최선을 다하는 나름 섬세한 사람이고, 낄끼빠빠를 명확히 아는, 무엇보다 부당한 폭력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로지 앙코르와트만 보고 원더랜드에 살러 온 또 다른 멍청한(?) 손님인 지우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그런 부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울컥한 게 무엇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복희씨가 옆에 있었다면, 온 힘을 다해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전에 같이 근무하던 분에게 곧이곧대로라서 그렇게 피곤한 거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내가 그런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러면서도 불쑥불쑥 떠올랐던 건 당시 일했던 곳이 학교였고 학교라는 곳에서만큼은 내 곧이곧대로인 성격이 피곤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융통성이 아주 없는 사람도 아니었던 내가 바랐던 건 복희씨처럼 정말 중요한 원칙 몇 가지는 반드시 꼭 지켜졌으면 하는 아주 소박한(?) 바람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살면서 스스로가 정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주 금방 오해받고 고립되기 쉬운 성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그런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이뤄낸 경우가 더 많으니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이유로 정말 지키고 싶은 자신의 중심까지 흔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끔찍하게 오래 사는 시대다. '백세시대'라니.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아직도 반밖에 안 왔다. 고문이 따로 없다. 인류는 쓸데없는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쏟는다. 야단법석으로 지구를 망가뜨려 놓더니 이제 와서 천년만년 살고 싶은가 보다. 오래 살아봤자 좋을 것도 없다. 세상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고 거기에 대단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것처럼 군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中

 

 

첫 챕터의 위 문구부터 웃음이 났다. 누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갔나 싶게 공감해서였다. ㅋㅋㅋㅋ 냉소로 일관할 거 같았던 복희씨의 이야기가 즐겁고 마음 따뜻하게, 한편으로는 살짝 통쾌하게 흘러가서 좋았다.

반가웠던 복희씨, 매3소뿐 아니라 친구가 제안한 1,000권 읽기까지 쭉 완주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을 품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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