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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미궁
티타니아 하디 지음, 이원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영국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소재가 정말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애거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아직도 대중적인 콘텐츠로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작가진은 대적할만한 나라가 없는 듯...
프리랜서 사진작가 윌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유산으로 받은 열쇠와 문서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긴 여행을 해왔다. 샤르트르 성당의 미로에서 문서 안 글귀의 힌트를 얻고 고향의 아버지 댁으로 돌아가던 윌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윌의 형 알렉스와 친구인 사이먼은 윌의 사고에 의문을 품는다. 윌의 사고, 그리고 연이어 일어난 아버지 댁의 도난 사건에 수상함을 느끼던 알렉스는 윌이 풀던 문서의 수수께끼를 접근해 가던 중 육촌인 캘빈을 만나게 되고 윌이 물려받은 열쇠와 문서의 가치, 자신이 몰랐던 가문의 내력에 대해 듣게 되는데...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소설인 『장미의 이름』이 계속 생각이 났다. 제목이 비슷하기도 하고 종교 관련 얘기가 계속 나오기도 해서였던 거 같다. 이 소설은 신비주의 학자인 -튜더 왕가의 마술사로도 알려져 있다 - '존 디'라는 사람이 자신의 연구와 관련한 문서와 물건들을 가문의 장녀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라고 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가문의 후손들이 의로운 지인들과 힘을 합쳐 그 가보들을 자신들의 권세에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로부터 지켜냄과 동시에 문서가 가진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존 디와 함께 셰익스피어 등도 등장하니 읽다 보면 허구와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묘하게 왔다 갔다 하는 내용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동생을 잃고 만나게 된 사랑인 루시가 너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알렉스와 연결고리가 생긴 게 좀 아쉽고, 전 세계를 엄청난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졌다는 악당들이 하는 위협이라는 게 하교하는 알렉스의 아들을 심하게 밀어서 다치게 만드는 정도라는 게 함정이다. 선한 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힘을 가지려면 반대편인 악당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말로는 거의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미국의 백악관까지 휘두를 수 있다는 악의 무리들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도 매번 뒷북이고, 자신들이 심부름꾼처럼 부리던 - 특별히 은밀히 움직인 것도 아닌- 사람의 행방을 몰라서 행패를 부리고 초반 사고로 위장한 윌의 죽음이 이후 위협이라고 하는 게 상해 정도니 대체 그 어마어마한 힘을 어디서 느껴야 할지 몰라 마지막 책을 덮으면서도 찝찝했다. 캘빈이 계속 바들바들 떨면서 두려워하는 그들이 하는 짓이 고작 이것인가. 차라리 알렉스와 그 친구들에게 인간적으로 호소하며 섭외해서 수수께끼도 풀어달라고 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엄청난 부도 나눠주고 하는 게 더 나았겠다 싶은 실없는 생각도 잠시 했다.
호주 출신인 작가의 중세 유럽의 민속과 백마술, 예언에 관한 인문서로 2백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종교, 역사, 문학을 아우르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이 책은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참 많은 공부를 했을 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든 사건이 한때 우리나라도 휩쓸었던 휴거, 종말 예언과 관련하여 벌어지기에 옛 추억도 생각이 났다. 마지막 작가 노트에 보면 휴거에 관한 소설이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게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작가는 충분히 우려할만한 사항이라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 소설을 읽으면서 세 군데나 오타를 발견한 건 첨이다.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