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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반드시 두꺼운 걸로 3권은 챙기라는 친구의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짐이 될 거 같아 망설이고 있다가 집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는 가져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제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 책장을 넘겨보다가 앞부분만 살짝 읽고 가져갈까 했는데 뭘 믿고 이런 책을 그렇게 중간에 멈춰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더위에 정신이 나간 듯... ㅋㅋㅋㅋㅋ
정신과 의사인 엠마는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아기방 때문에 공사 중인 집에 돌아가는 대신 학회에서 제공한 호텔 방에서 머물기로 하는데 다음날 '이발사'라고 이름 붙여진 연쇄살인마에게 강간 당하고 머리가 깎인 채로 발견된다. 다른 희생자와는 달리 생명을 잃지 않았고, 엠마가 묵었다는 1904호 실이 호텔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엠마의 진술은 분석수사관인 남편에게까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유산까지 겪은 엠마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직업도 잃고 집에서 갇힌 생활을 하게 되는데 남편이 세미나로 인해 집을 비운 날, 우체부 살림에게서 이웃에게 온 소포를 대신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억지로 떠맡은 소포에서 발견한 낯선 이름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엠마의 긴 하루가 시작되는데...
사실 다 읽고 나면 제목이자 엠마의 상태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소포는 크게 걱정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 소포를 부탁받은 날, 마치 작당한 것처럼 하나같이 수상하게 구는 주변인들이 문제고, 그 소포를 엠마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데 적절히 활용하는 범인의 존재가 소름 끼칠 뿐...
대단히 참혹할 것처럼 쓰여있는 표지의 문구와 저자에 대한 소개 덕에 다 읽고 괜히 찝찝하거나 쓸데없이 신경이 곤두서거나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굳이 죽었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드는 팔란트와 필리프 빼놓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놓고 넘나 사랑해서, 다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이유는 대체 어떤 정신 상태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싶다.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에서 비극적 사건으로 환자가 된 인물이고 끊임없이 트라우마, 강박과 편집증에 시달리기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일 거 같지만, 의외로 액션이 많아서 놀랐다. 저런 상태면 그냥 집에 있지라는 생각? ㅎㅎㅎㅎ
책 자체보다는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저자가 상당히 유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가 말려서 더 싣고 싶었던 독자들의 편지를 실을 수 없었다는 작가는 뭔가 본질보다 주변에 집중하는 장난기 같은 걸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으나 늘 그렇듯 사람은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 그나저나 이런 소설들에서 등장하는 남편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나쁜 놈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 왜 그런 것인가 정말 알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