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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살인사건 ㅣ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중국에서 유능한 형사였던 탈링은 믿음직하고 충실한 동료 링추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사립탐정사무소를 열어 활동 중이다. 사촌이자 백화점 사장인 손튼의 의뢰로 백화점 매니저 밀버그의 횡령 혐의를 조사하였으나 미팅 자리에서 얘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의뢰를 거절한다. 손튼의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에 고초를 겪을지도 모르는 전 직원 오데트에게 경고 차 방문한 탈링은 손튼의 후원을 받는 범죄자 샘 스테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다음 날 이른 아침 손튼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가슴에는 수선화 한 다발이 놓인 채로.
많은 추리소설이나 범죄, 수사물에서 보면 우선 시체의 상태를 보고 어떤 범죄인지, 살인자의 피해자에 대한 감정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유추해낸다. 죽은 손튼의 시신은 '코트와 조끼를 제외하고 옷을 온전히 입고 있었고, 가슴에 난 상처는 피 묻은 여자 실크 잠옷으로 묶여 있었다. 가슴 위에는 두 손이 가지런히 모인 채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수선화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사인은 심장을 관통한 총상이었고... 이제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내보자면, 일단 시신에 훼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상처는 마치 지혈을 한 듯이 묶여 있었고 심지어 수선화 한 다발까지 놓여 있었다. 원한으로 인한 범죄는 아닌 거 같고, 시신의 자세, 수선화 등은 범인이 범행을 후회하고 피해자를 추도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
용의자는 첫 번째로 교활한 백화점 매니저 밀버그, 손튼이 자신의 횡령 사실을 의심하고 탐정에게 의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손튼이 그 사실로 자신을 압박하며 다른 희생양을 찾아 범행 조작을 하는 데 동조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손튼의 개인적인 호감을 단호하게 거절하여 백화점에서 해고된 직원 오데트, 이 연약한 여성은 손튼의 복수가 해고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사건 당시의 행방이 묘연한 데다가 범행 시각에 그녀의 아파트에서 총소리와 비명을 들었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있다. 세 번째 용의자는 손튼을 숭배하는 전과자 샘,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자신을 출소 때마다 마중 나와 주고 일자리까지 주었던 손튼을 위해 목숨도 걸 수 있는 이 범죄자는 손튼의 거짓말에 속아 오데트에게 증오를 품고 함께 그녀를 궁지에 몰 계략을 짰다. 그리고 수사를 해 나가면서 탈링이 의심하게 되는 또 한 사람, 바로 탈링의 동료인 링추, 손튼이 중국에 있을 당시에 그에게 모욕당한 링추의 꽃다운 여동생이 명예 자살을 했고, 링추는 살인 흉기로 쓰인 탈링의 총을 꺼내갈 수 있었다. 자, 범인은 누굴까?
사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꼭 범인이 누군인지 궁금해서만은 아니다. 어떻게 범죄가 발생했는지, 그걸 누가 어떻게 밝혀 나갔는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수사를 해 나가는 탈링과 링추 콤비는 얼핏 홈즈와 왓슨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홈즈의 관찰자, 기록자의 역할이 컸던 게 왓슨이라면 링추는 탈링의 해결사 역할이 크다. 중국에서도 신출귀몰한 형사였던 링추는 탈링이 넘지 못하는 선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특히 엄청난 관찰력과 강력한 신체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과묵한 링추 대신에 런던 경찰국의 화이트사이드 경위가 왓슨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홈스 같은 탐정물을 기대한다면, 탈링에게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누군가의 천재적인 추리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갈등 없는 협업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진짜 나쁜 놈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게 된 거 같아 개인적으로는 속이 후련하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하지 않은가 싶었다.
저자인 에드거 월리스는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와 동시대에 활약한 영국 작가이다. 유명한 영화 <킹콩>의 원작자라고 하는데 추리소설뿐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시, 역사소설 등 폭넓게 집필했다고 하니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영국에는 대체 어떠한 기운이 흘렀길래 이런 추리 소설 작가들이 파도파도 나오는 건지 그것이 알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