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성공한 변호사 남편과 나름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세 명의 자녀를 둔 조앤. 조앤은 스스로를 현명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엄마로서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자신이 없으면 가족들의 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그녀는 말리는 남편을 뒤로 하고 식중독에 걸려 아프다는 막내 딸을 만나러 바그다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점에 고등학교 동창인 블란치를 만난다. 학생 시절 모든 학생들의 동경을 샀던 블란치는 몇번의 스캔들과 생활고를 거치면서 몰라보게 늙어 있었는데 우월감과 동정심을 느끼며 대화를 이어가던 조앤은 오히려 당당하고 편안해 보이는 블란치의 모습에 불편함과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낀다. 런던에 가기 위해 타려고 했던 이스탄불행 기차를 악천후로 놓치고 텔 아부 하미드에 발이 묶인 조앤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면서 몰랐던 아니 자신이 모르고 싶어 외면했던 진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여섯 편의 소설 중에 하나라고 한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등장하지 않는 그녀의 소설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기대를 가지고 보았는데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은 사막, 벌어지는 모든 일은 조앤의 머릿속의 회상과 그녀의 심리 변화가 다인 이 이야기가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 건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이니 말이다.

어떤 상황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중심적으로 기억하고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는 고통으로 남기도 하는데 조앤이 바로 이런 자기 중심적인 사고, 자기 합리화가 너무나 체득화된 인간이었다. 자신을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아닌 그저 집안의 하인들이나 부릴 줄 아는 하는 거 없는 인간으로 매번 팩트 폭행하는 큰 딸 에이버릴이 불편하기만 하고, 자신을 따르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고용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데다 남편 로드니는 자신이 모르는 가족, 주변인들의 사정을 시시콜콜 알고 있다. 조앤은 할 거 없이 고립된 사막의 숙소에서 난생처음 오롯이 갖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가족들의 진심, 진실을 처절하게 깨닫고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는 그녀가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조앤을 따라 함께 여러가지 감정의 파도를 탔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는 조앤처럼 나이 먹을 수도, 저렇게 눈 뜬 장님처럼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살다 보면, 남들은 다 보고 있는 아픔, 슬픔, 기쁨을 마치 시야를 차단당한 경주마처럼 살피지 못하고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며 그걸 다른 사람한테까지 강요하는 조앤같은 사람을 볼 수 있다. 민폐아닌 민폐같은 인간 유형, 이런 사람은 나름의 공고한 논리 구조 속에서 자신이 꽤나 좋은 사람이다. 조앤의 남은 생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딱히 모두가 살고 싶은 인생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남편의, 세 자녀의, 그리고 그녀가 친구라고 가깝게 느꼈던 모든 이의 인생에 그녀는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다는 걸 깨닫지도 못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