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


​

​

추천 독자

​

책을 좋아하지만 혼자 읽는 일에 조금 지친 사람,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면서도 오래가는 연결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

부모의 노년과 자신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


책을 ‘혼자 읽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방, 접힌 페이지, 밑줄과 메모.

그러나 아사쿠라 가스미의 읽고 읽고 말하다는 그 익숙한 독서의 풍경을 뒤집는다.

​

이 소설에서 책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읽고,

다른 사람이 자기 기억을 얹고,

누군가 엉뚱한 말을 보태는 순간

한 권의 책이 여섯 사람의 인생으로 번역된다.

 

오타루의 카페 시트론에는 매달 첫 번째 금요일, 평균 나이 85세의 노인 여섯 명이 모인다.

이름은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

이들은 한 권을 정해 돌아가며 낭독하고,

읽은 대목에서 떠오른 이야기를 말한다.

​

감상은 줄거리나 문학적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먼저 떠난 배우자, 오래된 후회, 젊은 날의 선택, 말하지 못한 사랑으로 번진다.

​

소설가로서 길을 잃은 스물여덟 살 야스다는 처음에는 이들의 대화를 산만한 소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래 머무르며 깨닫는다.

이 모임에서 사람들이 읽는 것은 서로의 생애라는 사실을.

​

나는 데이터로 사람과 시장을 이해하려 했다.

숫자는 복잡한 세계를 정리해주지만

정리된 세계에는 자주 체온이 빠진다.

읽고 읽고 말하다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독서모임은 인간을 데이터로 압축하는 장소가 아니라

압축된 인간을 다시 원본으로 복원하는 장소가 아닐까.

 

한 사람을 ‘노인’, ‘배우자를 잃은 사람’, ‘환자’라는 항목으로 분류하면 삶은 금세 설명된다.

​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문장에서 멈추고,

어떤 이름 앞에서 목소리가 떨리는지를 듣기 시작하면 설명은 무너지고 한 인간이 나타난다.

​

특히 세상을 떠난 아내가 남긴 책을 읽으며 밑줄과 메모 속에서

아내의 손동작과 표정을 떠올리는 장면은 오래 남았다.

​

책은 죽은 사람이 남긴 생각의 유품이 아니라

다시 말을 걸어오는 시간의 장치였다.

​

그 대목에서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 있을 때 서로 읽어주는 것.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옆에서 말해주는 것.

사랑은 완벽히 알아듣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수하고 계속 말을 건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

이 소설의 심장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

독서는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기억의 발화다.

​

좋은 독서모임은 정답을 합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문장이 각자의 내부에서 어떻게 다르게 폭발하는지 지켜보는 자리다.

​

그래서 이 모임의 대화는 자주 옆길로 새고,

서로의 말에 한꺼번에 달려들며,

마치 모두가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듯하다.

​

이상하게 따뜻하다.

누구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감정 가까이에 서서 잠시 보조를 맞춰주기 때문이다.

관계에 지친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인맥이 아닐지 모른다.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한 달에 한 번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

​

이 책이 보여주는 연대는 서로를 소유하지 않는다.

가까이 있지만 침범하지 않고,

느슨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

나는 이것을 ‘예약된 다정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

그것은 거창한 희망보다 더 현실적인 생존 장치다.

이 소설을 읽고 가장 새롭게 보인 것은 노년이었다.

우리는 노년을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시기로 생각한다.

책의 사람들은 다음 달에 읽을 책을 고르고, 다음 모임에서 할 말을 준비한다.

​

삶의 길이는 아직 말할 수 있는 미래형 문장의 수로 측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

“다음 달에 만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미래를 가진 사람이다.

아흔두 살에도 “재밌겠다, 두근두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은 계속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존재다.

​

솔직히 이 작품은 빠르고 극적인 소설은 아니다.

대화는 어수선하고 이야기는 자주 샌다.

사건 중심의 독자에게는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느슨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실성이다.

실제 삶도 핵심만 요약되지 않는다.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오래 하다가 가장 중요한 고백을 흘린다.

이 소설은 그 흘러나온 말들을 버리지 않고 주워 담는다.

​

읽고 읽고 말하다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책을 사이에 두고 더 오래 사람으로 남는 법을 보여준다.

​

소설을 읽고 책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 곁에서 끝까지

책을 읽을 때 비로소 삶이 바뀐다는 생각을 했다.

​

독서는 지혜를 쌓는 행위이기 전에 외로움이

한 사람의 전부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작은 공동체의 기술이었다.

​

​

​

​

#읽고읽고말하다 #아사쿠라가스미 #현암사 #책리뷰 #서평

#신간추천 #소설추천 #일본소설 #독서모임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