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없음 -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헬렌 톰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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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헬렌 톰슨 저자(글)

윌북

[국제정치·경제 인사이트 리포트] 에너지와 민주주의의 붕괴 — 『질서 없음』이 말하는 21세기 혼돈의 설계도

“패자의 동의가 사라진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헬렌 톰슨의 『질서 없음』을 덮는 순간, 이 한 문장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히 ‘혼돈의 시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에너지, 통화, 민주정이라는 세 개의 축을 통해 오늘날 세계 질서가 왜 이렇게 뒤틀렸는지를, 그리고 왜 앞으로 더 ‘질서 없음(Disorder)’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를 냉철하게 보여주는 21세기 판 『국가의 흥망』이다.


1.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 “모든 혼란의 근원엔 에너지가 있다”

톰슨은 정치학자가 아니라 ‘지정학적 에너지 해부학자’에 가깝다.

그녀의 통찰은 명확하다. “석유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각국 정부는 국민이 아닌 국제 자본시장에 재정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정치가 에너지에 종속되고, 경제가 달러에 예속되면서,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뿌리를 잃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시민이 아닌 국제 금융에 손을 내밀었을 때, 민주정의 기반은 이미 무너졌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돈이 아니라 에너지가 역사를 움직인다’는 말을 체감했다.

2008년 금융위기조차 석유 흐름의 문제로 귀결되고, 유럽의 민주주의 위기도 천연가스 배관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또 얼마나 현실적인 정치학인가.


2. 에너지와 지정학 — ‘유라시아’라는 판이 흔들릴 때

1부 ‘지정학’에서는 에너지와 유럽의 관계를 거대한 체스판 위에 올려놓는다.

러시아-독일의 가스 협력은 단순한 경제 관계가 아니라, EU 내부 분열의 구조적 뇌관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NATO 안에서 미국이 에너지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순간, 분열은 구조화된다.”

책은 이처럼 ‘지정학의 균열이 민주주의의 불신으로 번지는 과정’을 탁월하게 포착한다.

즉, 국제 질서의 혼란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3. 경제와 통화 — “달러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

2부 ‘경제’는 석유와 달러의 공진화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왜 세계 모든 나라의 금리와 복지를 결정짓는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왜 ‘달러 의존 경제’일 수밖에 없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답한다.

“중국은 달러가 없으면 석유를 살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석유를 지켜야 한다.”

톰슨은 석유와 달러가 만들어낸 이중 지배 구조를 “현대의 제국적 질서”라고 표현한다.

이제 달러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에너지 권력의 언어가 된 셈이다.


4. 민주정 — “패자의 동의가 사라진 시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3부 ‘민주정치’다.

톰슨은 민주정이 무너지는 과정을 ‘시간’과 ‘부채’라는 두 단어로 설명한다.

“국가의 부채는 더 이상 국민이 아닌 시장이 감시한다.

시민은 세금만 내고, 결정은 월가가 한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오늘날의 한국 정치도 떠올랐다.

‘투표는 하지만, 결정은 어디선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패자의 동의가 사라진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적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다.


5. 개인적인 여운 — “질서 없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질서 없음’이라는 말을 두려움이 아닌 자각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톰슨은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혼돈을 직시해야 다음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나에게 “혼란의 시대에 사고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했다.

지정학, 경제, 민주주의 — 세 영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하나의 유기적 네트워크로 엮여 있으며,

그 연결의 실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지적 생존력이다.


마무리

『질서 없음』은 세계를 다시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교양서’다.

에너지와 민주주의, 달러와 정치, 유럽과 중국, 그리고 나 자신까지 —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질서의 붕괴를 지성의 언어로 재구성할 용기”를 갖게 했다.

“세상이 무너질 때, 지식인은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한다.”

– 『질서 없음』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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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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