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 - 거대 자본으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법
크리스틴 케르델랑 지음, 배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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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케르델랑의 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은 단지 억만장자 비판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심히 받아들여온 기술의 세계가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심문하는 철학적 탐사이자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기 위한 경계의 기록이다.

전통적인 ‘국가-시민’ 모델이 붕괴된 21세기 정부의 기능은

점점 기술 재벌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고 있으며

그 결과는 실로 경악스럽다.


 

"대통령이 되지 않는 이유? 대통령보다 강하니까."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빌 게이츠.

이 여섯 명의 공통점은 돈이 많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들은 서른 즈음에 상상 불가능한 부를 축적했고

지금은 언론, 외교, 국방, AI, 우주, 생명공학 등

거의 모든 시스템의 ‘코어’를 장악한 존재들이다.

책은 이들이 단지 기업가가 아니라 인류의 방향을

설계하는 '구세주를 자처하는 기술 관료'로 진화했음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특히 머스크는 “대통령이 되면 화성에 로켓을 못 쏜다”고 말하며

정부의 권력을 경시한다.

미국 정부의 국방부조차 스페이스X의 존재 없이는

전쟁 전략을 짤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

뉴요커 기자 로넌 패로가 기술한 바와 같이

정부 고위 인사들이 머스크의 눈치를 보는 장면은

더 이상 풍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구세주의 가면을 쓴 ‘기술 메시아’들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바로 "자선의 탈을 쓴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테크계의 본심을 드러낸다.

이들이 추구하는 프로젝트는

공통적으로 ‘죽음의 정복’, ‘증강인간’, ‘우주 이주’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캘리코를 통해 유전자 조작으로 수명을 두 배 늘리는 연구를 지원하고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로 인간 뇌에 칩을 심고자 한다.

이들이 믿는 건 과학기술을 통한 신체와 정신의 초월이며

이것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최고의 봉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누구를 위한 봉사인가?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또 누가 소외되는가?


 

"우리는 '미래의 침팬지'가 될 것인가?"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영국의 사이버네틱스 학자

케빈 워릭이 제시한 ‘미래의 침팬지’ 개념이다.

돈이 없어 기술을 접목하지 못한 사람들, 증강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생물학적 열등종으로 분류될 위험에 놓인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을 통한 진화가 아니라 기술을 통한

새로운 ‘인종 계급’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 본성의 미래에서 생명공학과 기술이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 개념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케르델랑의 이 책은 후쿠야마의 경고 이후 다시 한 번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민주주의는 왜 이들을 막지 못했는가?

정치권은 더 이상 이들의 행보를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가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저자는 이를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도래와 연결 짓는다.

진실은 더 이상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되는 것이다.

각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우리의 감정과

투표, 소비, 나아가 삶의 목적까지 설계하는 시대.

언론은 디지털 광고 수익의 70~80%를 페이스북과 구글에 빼앗겼고

시민들은 이들의 콘텐츠 설계에 따라 여론을 형성한다.

민주주의는 이제 플랫폼의 기획 상품이 되어버렸다.


중국 모델을 바라보는 양면적 시선

책은 중국이 보여준 ‘억만장자 규제’의 사례도 다룬다.

마윈, 바오판, 샤오젠화 등의 실종과 처벌은

중국식 통제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저자는 "백색 고문"과 같은 비민주적 방식은

결코 우리가 따를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시민적 감시와 국제적 공조를 통한

법적 규제, 특히 글로벌 조세 공조와 디지털 주권의 확립이다.


책이 개인적으로 주는 울림 ‘무력감’이 아닌

‘대담함’의 감정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무력감과 동시에 분노,

모종의 각성이 뒤섞였다.

마치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붕괴’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무력함에 빠질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들처럼

‘대담함’을 가져야 한다고.

기술이 선한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민주주의를 압도할 만큼 강력해졌을 때는

반드시 견제되어야 한다.

"좋아요" 중독과 짧은 영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청소년에게

진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아이에게는

전자기기를 제한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억만장자들’에 대한 새로운 문해력

크리스틴 케르델랑은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가 테크 리더들의 화려한 혁신 뒤에

감춰진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어떤 구조적 영향을 미칠지를 통찰하게 해준다.

책은 철저히 미시사적이며 철학적이며

동시에 구조적이다.

정독과 재독이 필요하며 이 시대의 시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기술을 가진 자가 신이 되려는 시대,

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준비되어 있는가?"

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독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지금,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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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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