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사라졌다
미야노 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만 반복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내일이 사라졌다 루프소설이 던지는 충격의 질문"

내일이 사라졌다 ‘영원의 오늘’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지옥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일본 작가 미야노 유의 데뷔작 내일이 사라졌다는 제목부터 묵직하다.

‘내일이 사라졌다’는 선언은 시간의 끝이자,

인간 존엄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타임 루프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문명 속 인간의 도덕, 본능, 선택을 섬세하게

해부하는 문명철학적 SF다.

시간이 반복되는 ‘루프’라는 기묘한 현상,

그리고 이 루프를 인식하는 ‘루퍼’와 인식하지 못하는

‘스테이어’의 분열된 세계.

미야노 유는 이 괴이한 설정 위에, 비극을 겪은

한 어머니의 복수극을 올려놓으며

인간성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복수는 끝났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비극의 탄생

작품은 강렬한 복수극으로 시작한다.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가해자는 소년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았다.

더는 살아갈 이유도, 의미도 없어진 어머니는

차분하게 그를 죽이고 경찰에 자수한다.

이 시점에서 독자는 그녀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종결’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녀가 눈을 뜬 곳은 교도소가 아닌,

딸을 죽이러 가던 그날 아침의 침대 위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녀는 하루를 반복하는 루퍼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복수를 반복해도,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죄책감도, 안도도 아닌 무한 반복의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감염병처럼 퍼지는 인식

루퍼는 점점 늘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증가가 전염처럼 발생한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감정이 물리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의심을 받지만,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루퍼가 등장하면서

이는 단순한 SF적 설정을 넘어선다.

여기서 작가는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시간은 외부의 물리적 조건만으로 존재하는가?”

“인간의 감정, 기억, 윤리가 시간에 영향을 줄 수는 없는가?”

이 질문은 버지니아 울프가 등대로에서 시도했던 시간의 내면화,

혹은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주장한 ‘지속(durée)’이라는

심리적 시간 개념과도 맥을 같이한다.

즉, 인간의 의식이 느끼는 시간은 절대적인 선형성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에 따라 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도덕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내일이 사라졌다의 백미는 루프 사회가 30%를 넘는 루퍼의 등장 이후,

사회의 도덕 구조 자체가 붕괴하는 장면이다.

어떤 행동도 내일에 남지 않으니,

사람들은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퍼지 데이(Purge Day)'라는 표현은

바로 이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퍼지 시리즈에서 하루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되는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폭력의 만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들,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들의 선택에 집중한다.

광기 속의 윤리. 혼돈 속의 도덕.

이는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말한

“삶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을 때조차

우리는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남아 있다”는

사상과 겹친다.

감정적 SF의 실험

‘루프물’은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일본 드라마 라이어 게임 등 루프는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내일이 사라졌다는 ‘루프의 감정적 감염’이라는 참신한 가설과,

복수의 윤리를 중심축에 둔 플롯,

그리고 도덕적 붕괴의 통계적 상상력을 결합해 전에

없던 ‘사회철학적 루프물’로 탄생했다.

게다가 이 작품이 작가 미야노 유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감정선의 밀도, 세계관의 설계,

서사의 완급 조절 모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작가의 손길 같다.

루프라는 비현실 위에,

이토록 현실적인 인간의 딜레마를 정교하게 새겼다.

고통조차 반복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할까

개인적으로 내일이 사라졌다는

단순한 SF를 넘어선 윤리철학적 실험이었다.

복수를 반복해야 하는 인간,

매일을 처음처럼 살아야 하는 인간,

도덕이 사라진 세계에서 존엄을 택하는 인간들.

읽는 내내, 철학자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ehr) 개념이 떠올랐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과연 당신은 그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내일이 사라졌다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묻는다.

그리고, 차마 대답할 수 없게 만든다.

당신에게 ‘내일’은 오는가?

이 책을 덮은 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 “과연 나는 오늘을 살아냈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매일 같은 아침을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 모두에게 던지는 묵직한 철학적 물음이다.

내일이 사라졌다는 SF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윤리와 존엄에 대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경고한다.

내일이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을.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내 빛나는 선택의 가능성을.


추천 독자

- 윤리와 철학, SF를 함께 즐기고 싶은 분

- 루프물에 익숙하지만 더 깊은 감정을 원하는 분

- 죽음의 수용소에서, 타인의 고통, 사피엔스 같은 책에 감동한 독자

- ‘내가 진짜 오늘을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당신에게

#내일이사라졌다

#책추천 #미야노유 #하빌리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