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SF의 실험
‘루프물’은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일본 드라마 라이어 게임 등 루프는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내일이 사라졌다는 ‘루프의 감정적 감염’이라는 참신한 가설과,
복수의 윤리를 중심축에 둔 플롯,
그리고 도덕적 붕괴의 통계적 상상력을 결합해 전에
없던 ‘사회철학적 루프물’로 탄생했다.
게다가 이 작품이 작가 미야노 유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감정선의 밀도, 세계관의 설계,
서사의 완급 조절 모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작가의 손길 같다.
루프라는 비현실 위에,
이토록 현실적인 인간의 딜레마를 정교하게 새겼다.
고통조차 반복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할까
개인적으로 내일이 사라졌다는
단순한 SF를 넘어선 윤리철학적 실험이었다.
복수를 반복해야 하는 인간,
매일을 처음처럼 살아야 하는 인간,
도덕이 사라진 세계에서 존엄을 택하는 인간들.
읽는 내내, 철학자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ehr) 개념이 떠올랐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과연 당신은 그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내일이 사라졌다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묻는다.
그리고, 차마 대답할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