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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3월
평점 :
사사기 완벽한 정의의 신화를 해체하는 고발문,
혹은 새로운 사사기의 예언서
디스토피아를 관통하는 AI 정의 시스템과 인간 감각의 부활
정의의 신으로 숭배된 저스티스-44,
사법이 신이 될 때 벌어지는 일들
사사기는 제목부터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히브리 민족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사들—판관이자 지도자—에게 통치를 위임했던 역사의 기록이자,
인공지능 판사 '저스티스-44'를 숭배하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도시국가 ‘뉴소울시티’의 이야기다.
이기원 작가는 사사기를 통해 철저히 통제된 완벽한 유토피아,
그러나 진실은 폐쇄된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는 인간성을 파고든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나, 이사야 벌린이 경고했던
'긍정적 자유의 폭력성'을 현대적 기술언어로
재현한 듯한 이 작품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신격화하고,
그 신이 인간을 심판하는 시대가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묻는다.
법과 감정, 알고리즘과 직감 사이에서
이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 하나다.
"AI는 진정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가?"
사사기에서 AI판사 저스티스-44는 사람들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며 ‘신성한 존재’로 군림한다.
그러나 이기원 작가는 교묘히 그 정의가 단 하나의 결함,
오작동이라는 균열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때 페이스북의 AI 윤리 책임자였던 케이트 크로퍼드가 말한 바 있다.
“AI는 중립적이지 않다. 인간이 만든 데이터는
언제나 인간의 편견과 역사적 결함을 반영한다.”
법이 데이터가 되었을 때, 감정과 맥락은 지워진다.
인간의 촉, 심증, 분위기라는 비정량적 요소는
단지 '오류의 가능성'으로만 치부된다.
하지만 사사기는 이렇게 묻는다.
“그 오류야말로 진실로 가는 유일한 단서가 아니었는가?”
이 작품의 통치조직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과
그 수장 ‘아바리치아’는 이름부터가 경고다.
라틴어로 탐욕(Greed)을 의미하는 아바리치아는,
‘완벽한 도시’라는 이름 아래 모든 권력을 AI와 자본,
기업이 독점하게 만든다.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분노와 용서에서 주장했던 바와도 연결된다.
그녀는 말했다.
“정의는 분노가 아니라,
연민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사사기의 세계에서 연민은 제거되고,
이성화된 판결만이 남아 인간을 냉철히 재단한다.
완벽해 보이는 AI 시스템의 이면에는
결국 권력 독점과 감정 제거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조사관 우종은 AI의 판결을 믿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을 근거가 필요하다.
이 양가감정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기자 재민의 죽음을 계기로 분열된다.
“진실이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사람들은 진실 속에 살고 싶어 한다.”
이 문장은 사사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을 드러낸다.
AI가 완벽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서,
인간의 몫으로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진실을 감지하는 능력’, ‘의심하는 용기’,
그리고 ‘직관이라는 비정형의 가치’다.
“사유는 인간이 전체주의를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사사기는 단순한 SF소설도,
디스토피아 서사도 아니다.
그것은 ‘정의의 알고리즘화’에 대한 철학적 경고이며,
‘기술 숭배 시대의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역설적 기도문이다.
이기원 작가는 쥐독에서 이미 인간 삶에
깊숙이 파고든 기술의 그림자를 조명한 바 있다.
이번 사사기는 그 문제의식을 한층 더 확장시켜,
AI 시대에 인간이 붙들어야 할 마지막 감각이 무엇인지를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마치 AI 시대의 '판사 유다'와
'예언자 사무엘'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문제적 서사처럼 느껴졌다.
냉혹한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 정의인가를 묻는 그 질문은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아름답다.
지금 이 시대의 저스티스-44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알고리즘에 판단받고 있으며,
또 어떤 정의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가?
유토피아는 언제나 디스토피아의 전조였다.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진정한 정의는, 오직 인간이 지켜야 할 감각 속에 있다.
추천 독자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싶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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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