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출근합니다 소원라이트나우 7
김선희 외 지음 / 소원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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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알바에 대한 에세이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각각 색다르며,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스타일과 내용이 담긴, 아찔하며 흥미진진한 단편소설이다. 다 읽고 난 지금, 이 다섯꼭지를 묶어 ‘오후에는 출근합니다’로 묶인 제목에게 조차 박수를 보낸다. 표지에도 잘 드러나듯이 오후에 출근하는 청소년 다섯명의 아르바이트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첫 번째 단편 <인형 탈을 쓰면>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가 주인공이다. 일상에서 엄마에게 느끼는 서운함과 가족들의 고충은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헤어질 텐데 인간관계를 맺으면 뭐 하나, 나중에 헤어질 때 괴로울 뿐이지,”(p.37)로 이어져 세상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우물을 파게 한다. 하지만 절친, 단아가 하던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대신하게 된 주인공 ‘나’는 여러 인형탈을 써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편견에 대해 생각한다. 이 객관화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뭐랄까, 더 넓어지고 깊어졌달까. 예전에는 평면으로 보이던 것들이 이제 입체적으로 보이게 됐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싶어.”(p.37)로 이어진다. “아무튼 탈을 쓰고 있으니까 없던 용기도 막 생기네. 아니지. 없던 용기가 생길 리는 없지. 원래 용기는 있었는데 내가 꺼내지 못했던 거잖아. 용기 말고 또 어떤 것들이 내 안에 숨어 있을까? 앞으로는 꺼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p.37)라고 소심하게,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상으로는 매우 대범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사실 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친구, 단아가 요새 아이들처럼 매우 쿨했다는 것과 친구인 이단아, 최주우도 이름이 있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동생도 은우라는 이름이 있는데 주인공 ‘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게 인상적이었다. 여러 인형탈을 쓰듯 우리도 인생에서 여러 이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의 이름을 대입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마법소녀 계약주의보>는 알바할때는 계약서를 자세히 읽으라는 메시지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핑키에게 속는 주인공들을 본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이들은 주로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비싼 임대료 때문이라는 핑계에 청소년들의 임금을 파묻는 주인들 말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보기에 사장님들이 나빠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겉모습에 속아 임금이 체불되는 등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들을 생각해볼 때, 작가의 핑크색 쥐, 핑키는 정말 잘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 알바라는 소재에 판타지 장르를 녹아낸 작가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기도 했다.

요새 독서동아리 분들이 정해연 작가님의 <홍학의 자리>에 열광 중이다. 세 번째 이야기, <그 아이>를 읽으며 같은 작가님이구나 싶어 놀랬다. 그리고 들은 바와 너무 달라 또 한번 놀랬다. <그 아이>는 픽션인 데 논픽션인 듯 느껴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 정도로 홍구와 민준이는 내 주변에도 있는 아이 같기도 했고, 그런데 그렇게 신고까지 해서 챙겨줄 아이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런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 문학적으로 다가온 신기한 소설이었다. 따뜻함은 덤.

<역방향으로 원 스텝!>은 AI의 상담자 역할을 하는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AI가 인간 지적능력을 보조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근미래를 담은 SF소설이다. “우리를 아르바이트로 소모한다는 말, 그리고 보완재의 보완 아르바이트라는 말, 우리가 일종의 도구라는 표현까지,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뿐이지, 존재 자체가 아르바이트일 수 없으므로. 말 그대로 임시로 일을 하는거지 임시로 살고자 하는 게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임시로 하는 일이 나의 정체성의 근간을 흔든다면 관둬야 한다. 난 도구로서 삶을 살 수도 없고 부정한 도구로 쓰이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pp.187~188)
아르바이트라는 도구에 불과한 쓰임이라 해도 결코 나의 주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청소년들을 향한 좋은 어른의 글이 아이들에게 닿기를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호 탐정의 조수가 되고 싶어> 미다스의 딸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의 전개 역시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분이 우리 아파트에 사셨던 분이실까, 내 이웃이었을까 추리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난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벌레를 잘 잡는 편이라..

몇 년 전 들었던 김누리 교수님의 강연 중 ”우리나라 교육은 아이들 모두 대기업의 관리자가 될 것을 가정하는 수업들로 이루어져있다“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동자가 될텐데 어째서 관리자 수업만을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에 도전한다. 그 아르바이트가 프리즘이 되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색을 보여준다. 이 다섯 가지 단편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자라서 관리자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나는 확실하다.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응원한다. 이 책 주인공들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을. 미래에 당당한 노동자 혹은 삶의 주인이 되어 있을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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