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90년대생 10명과의 대화
유선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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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은 2019년 3월호 <마리끌레르 코리아>에서 3.8 세계 여성의 날 특집 '90년생 여자 사람'으로 기획한 기사가 바탕이 되었다. 다양한 직업을 지닌, 젠더 감수성의 정도가 각기 다른 33명의 1990년대생 여성들과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성으로 사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기사였다.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문명특급>의 간판 인터뷰어이자 담당 PD인 재재의 팬이라 이 책을 사게 되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분야의 다른 여성들도 알게 되어 뜻깊었다. 예지, 정다운, 김원경, 박서희 이 네 분은 이름도 처음 들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고, 접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많은 여성들이 각자 열심히 뛰고 있고, 역사적 족적을 남기고 있고, 신념을 관철하고 있구나 느꼈던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았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 밀도와 농도로 삶을 꾸려왔을까' 대단하게 보이고 부럽기도 해서 시기와 열등감,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들에게 던져진 공통 질문들 중 하나는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면?"이었다. 그들의 이상향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자 이들에게도 경외하는 롤모델이 있구나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인생 방향 설정을 도와주는 나침반이 된 질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성들은 어떤 모습인가 고민해 보기도 했다. 난 뚜렷한 신념을 직접 실천하고 관철해나가는, 다정한(싸우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자를 보듬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을 좋아한다.


백래시를 제대로 맞고 있어 유독 무기력한 요즘, 우리의 행동에 따라 미래 사회의 진보와 퇴보가 결정된다는 김초엽 작가의 말이 참 공감이 됐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만이 여성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자주 깨우치기 위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쓰고 말하고 퍼뜨리는 창작물을 더욱 열심히 보자고 다짐했다. 또한, 내게 이 책을 사게 만든 사람, 재재의 인터뷰도 좋았다. 유튜브에서 <문명특급>만 볼 때도 참 재치 센스 지식 있고 순발력이 빠른 능력자라고 느꼈지만 인터뷰도 멋있게 한다!  <문명특급>이라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맡기 전까지 카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컨텐츠를 만들었다는 그. 원래는 sns도 잘하지 않았지만 기획과 이슈 파악을 위해 팔로업 한 덕에 오히려 일을 시작하기 전보다 젊어지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팔로업을 하는 일은 지금 내 직무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한데, 아무도 봐주지 않는 콘텐츠를 뚝심 있게 지속해나갔던 재재가 '겪어보니 그게 절 채워줬다'고 하는 말해주어서 내게 참 위로가 됐고 희망이 됐다.


기억해두고 싶은 인터뷰이를 두 사람만 더 꼽자면, 한 명은 정다운 감독이다. 그는 비주얼 아트 크루 다다이즘 클럽 멤버로, 오랫동안 밴드 혁오와 협업해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그렇지만, 정다운 감독은 특히 '부딪쳐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환경 덕분도 있지만, 그 환경 안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우선 해보고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바로 손을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키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명예욕이 있어서 반장을 하고 싶으면 반장을 하고, 모델을 하고 싶으면 모델학과에 입학해 모델 일을 해보고. 스무 살에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길을 향해 방향을 틀어 금세 몰입하곤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와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유독, 그가 말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나도 오늘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엄마와의 순간을, 친구들과의 순간을, 내 주변의 순간을 기록해 놓아야지.


나머지 한 명은 이슬아 작가. 내게 이슬아 작가는 참 부러운 사람이다. 우선 그가 쓰는 글이 부럽고, 그 글이 불러온 명예와 자본도 부럽고, 글을 쓰게 만든 경험, 용기, 자유로운 성장 환경, 개척자 정신, 부지런함도 부럽다. 그리고 이처럼 그가 깃든 글을 보고 나면, 역시 이 부러움은 타당한 것이라고 자연히 납득하게 된다. 종국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안에 우선으로 새겨진 문장이라 한다면, 나 또한 이슬아 작가의 아래 문장이었다. 우울할 때마다 화병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할 때마다 꺼내서 들여다 보아야지.

언젠가 제자들에게 ‘너를 진짜로 상처 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종적으로 네가 너를 상처 내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 말을 한 건데 저 역시 저에 대해서 그렇게 믿고 싶거 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고 말이에요. 회복의 힘이 내게 있으니까. 일단 잘 살아보고 싶어요.

Q. 지금보다 더 크기 위해 재재 개인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유연함. 유연함이라는 말 안에 많은 게 포함되겠지만, 일단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 같아요.

Q. 오늘을 떨치고 내일로 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A. 이상한 대답일 수 있는데요. (웃음) 저는 힘들게 뭔가를 하거나 일을 한 뒤에 먹는 걸로 치유를 많이 받거든요. 되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날 하루가 너무 힘들었어도 맛있는 거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 사라지더라고요. 사람이 참 원초적인. (웃음)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계속 만들어지고 제가 치아만 튼튼하게 유지한다면 매번 치유받고 회복하며 살지 않을까요?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다 최면이에요. ‘너는 그런 사람이잖아‘ ‘원래 네 성격은 안 그렇잖아‘ 하는 말들이 결국 내게 거는 최면 같아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만든 최면의 총합을 자기라고 착각하기 쉽잖아요. 바깥으로부터의 최면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같아요. 각자 가지고 있는 힘을 충분히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잠재력을 찾겠다고 뭘 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떤 때 즐겁고 어떤 때 슬프고 화가 나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써서 주는 역사, 그걸 통해 배우는 역사 말고 자기 이야기를요. 저는 제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책으로 쓰고 영화로도 만드는 거예요.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왜 나만 알아야 하나, 모두 다 같이 듣자 하고요. 그렇게 각자 자기 이야기를 역사로 만들고 신나게 보여주고 떠들 때 다양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봐요. 요즘 독립영화 신에서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있었잖아요. 저는 그분들이 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자기 이야기를요. 그 이야기를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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