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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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작가다. 국내에서 어린이책 작가를 논할 때 로알드 달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겨레 출판편집학교 과정에서 수업을 들을 때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일에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을 본 적이 있느냐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간략하게 소개한 줄거리가 인상 깊었고 언젠가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부지런히 등교하는 학생이다. 그런 존에게 하수구에서 나타난 악어가 책가방을 덥석 물거나, 덤불 속에서 나타난 사자가 바지를 물어뜯거나,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난간에 버티는 등 괴이한 일이 일어나고, 존은 자꾸만 학교에 지각을 한다. 선생님은 존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그의 말을 묵살한 뒤 늘 심한 벌을 준다. 종국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존은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여 지각을 면하지만, 선생님 앞에 털복숭이 고릴라가 나타난다.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잡혀 천장에 매달린 선생님이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존은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라는 말로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며 동화는 끝이 난다.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랬듯 똑같이 되갚아주는 존의 모습을 보면 통쾌하기도 하고 씁쓸해지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존을 혼낼 때마다 길길이 날뛰는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괴물처럼 그려져 있다. 답답한 검은색의 상의와 직선이 그어진 바지, 그리고 상체만큼 기다란 회초리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선생님의 특성을 보여준다. 존은 직접 일을 겪은 당사자임에도 보수적인 선생님에 의해 진실을 억압당하면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몸집이 작아지고 색깔이 없는 사람처럼 표현된다. 결국에는 고릴라를 목격해도, 그 일마저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지각대장 존》은 억압하고 묵살하는 교육이 아닌 이해하고 포용하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어릴 적에 이 책을 읽었다면, 고릴라에게 붙잡힌 선생님을 보며 쌤통이다 쾌재를 불렀을 듯하다. 지금은 페이지 한 가득 그려진 웃음 가득한 고릴라와 겁에 질린 선생님보다, 한 구석에 조그맣게 그려진 존이 먼저 보인다.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걸어가는 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력도, 기쁨도 없는 소년이 되어버린 걸까. 존이 소년 시절에 좋은 선생님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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