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 버려서 얻고 비워서 채우는 무위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노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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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 이름 지어질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_1장


 서평단에 당첨되어 줄곧 이름만 들어왔던 《노자 도덕경》을 읽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엔 내가 과연 도덕경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읽고보니 새로운 일과 새로운 목적을 찾는 현재 나의 상황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책이었고 큰 깨달음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최근 <알쓸신잡3>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언급하며 진정한 고전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느끼게 하는 책이라고 했다. 내가 《노자 도덕경》을 읽을 때 물밀듯 느꼈던 감정이다. 《노자 도덕경》은 나처럼 '길을 헤매는迷'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고전이다.


 《노자 도덕경》은 도가의 시조로 알려진 노자의 어록을 모은 책이다. 초기에는 정확한 명칭이 없어 《노자》로 불렸다가, "우주의 본질이 '도道'이며 천지만물이 '도'에서 탄생한다"는 '도'의 이론과 기둥을 다루는 상편 <도경>과 '도'의 작용이자 '도'의 드러냄이 '덕德'이고 그 운용을 말하는 하편 <덕경>의 앞 자를 따서 지금까지 《도덕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자 도덕경》은 5,000여 자의 비교적 짧은 글 속에 우주론, 인생론, 정치론, 통치론, 병법론 다방면의 철학을 간단명료하게 담은 고전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처음 쓰인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의 장에서 정치와 도덕을 회복하려 노력했던 군주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평범한 우리도 쉬 '자기계발서'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고통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 그만큼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롭게 하고 다툼이 없고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먼저 처하는 물의 속성을 강조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너무 분별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현덕玄德', 유有의 집착을 비판하고 없음無의 역할과 효용의 강조(11장), 인간의 허례이자 겉치레인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비판, 실속 중시(12장), 자신이 아는 것을 어떤 지식의 틀로 끌여들어 생각하지 않는 '부지不知' 비판 같은 문장들이 바로 내가 바라던 해법에 해당했다.


 물론, 도가도 '완전한 철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연(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도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했으나, 삶의 정도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이 별 탈 없이 살기도 하는 불공정한 세태를 바라보면 하늘의 이치가 과연 오른 것인지 의심이 간다.(79장, 사마천) 게다가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는 '소국과민'으로 인위적인 문화와 문명이 없고 소박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융화되어 욕심없이 인위없이 살아가는 세계였다. '소국과민'의 기틀 위에 세워진 정치론은 현대 정치에 적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우민정책'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허나, 공자의 유가 사상에 익숙하고 그렇게 가르침 받아온 내겐 낯설고 새로운 가르침이 많았다. 이를테면, 유가에서는 인仁을 기본 개념으로 삼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기초로 하여, '효孝'와 '제悌' '충忠' '서書' '예禮' '악樂'을 실천 방법으로 말했다. 허나, 노자는 인仁을 '치우침'이자 '편애'라고 부정한다. 가족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별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니 편견이 있게 되고 천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인仁과 의義를 인위적이고 일탈된 가치라고 보는 점, 여성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언급하고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긴다'고 높이면서 남성 못지않게 긍정하는 점, (학문이 입신양명의 수단이므로 그에 따른 보상과 제약에 철저한 유가와는 달리) 앎은 순간적으로 얻어지며 학문은 인간의 본성과는 멀어지게 만든다고 판단하는 점, (개인의 덕을 천하의 덕으로 확장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가와 달리) 저마다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국가와 사회 혹은 가족보다 자신의 몸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점(54장), 세속의 시선으로 대립항을 설정하면 획일적으로 사유하게 되니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공존하여 조화로 다루는 점, (유가의 덕치와는 달리) '백성이 통치자의 존재만 알 뿐 그가 무엇을 하든 관심도 없고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무위無爲의 정치를 최고의 정치로 일컫는 점, (겉과 속 모두 중시하는 유가의 물질빈빈과 달리) 속만을 강조하는 점 따위의 확연히 배치되는 가치 설정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유가와 도가를 비교해서 보면 《노자 도덕경》의 독서가 더욱 즐겁게 다가오리라고 장담한다. 내가 여태껏 세상의 신념이자 진실이라고 여겼던 철학이 부정 당하고 깨부수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색다른 사상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철학을 세우는 재미가 있다.


《도덕경》에 최초로 주석을 단 사람은 한비자라고 한다. 때문에 이 책에서도 설명이 부족한 문장이나 이해가 어려운 문장에서 종종 한비자의 주석이 인용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 김원중 교수의 친절한 해설에는 그러한 인용과 다양한 판본과의 비교, 관련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어 《노자 도덕경》을 이해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역자의 능력에 이토록 감탄한 경우는 드물었는데  《노자 도덕경》을 읽고 나서 김원중 교수의 번역이 너무 좋아서 다른 번역서도 더 볼 수 있을까 싶어 따로 찾아보았다. 이 책 《노자 도덕경》이 포함된 휴머니스트의 명역 고전 시리즈에서 《한비자》나 《손자병법》, 《논어》 등을 이어서 읽어볼 예정이다. 이렇게 보면, 《노자 도덕경》은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 시각이 전환되는 계기를 선사해주었다. 동양 철학에 대해 갖고 있던 '무작정 어렵고 심오한 사상'이란 편견을 버리고, 이제는 '세대를 뛰어넘는 삶의 정수'라고 먼저 주창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노자 도덕경》을 읽는 내내 어쩌면 도가 사상은 '미니멀리즘'의 원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리즘'은 익히 알려진 대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을 가리켜 칭하는 용어다. 《노자 도덕경》에서는 언어가 존재의 파악을 가로막고 왜곡한다고 여겨 '침묵'을 권유하고, 교묘한 지식이 날로 더해지므로 학문을 끊으라고 하며, 감각적인 향락이나 물질생활을 멀리하고 소박하고 욕심 없이 생활하고, 일거리를 제거하고, 자연처럼 물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함에 따르라고 가르친다. 이 모습은 마치 최대한 짐을 줄이고 덜어내고 '심플'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 비슷하지 않은가. 패션과 유행이 시대를 넘어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 철학도 돌고 도는 모양이다. 역시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득찰 때 답은 미니멀리즘, 무위無爲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고 있으므로 도에 가깝다.
(……)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게 된다.
_8장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어, 그 없음으로 해서 수레의 쓰임이 있다.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면, 그 없음으로 해서 그릇의 쓰임이 있다.
창과 문을 뚫어 집을 지으면, 그 없음으로 해서 집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은, 없음이 [그들에게] 쓰이기 때문이다.
_11장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이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지만, 힘써 행하는 사람이 뜻을 얻는다.
그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지만, 죽더라도 [도가] 없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
_33장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쉬운데도,
천하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종지宗旨가 있고, 일에는 중심 되는 것이 있으나 [저들은 무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것은 [곧] 내가 귀한 것이니,
이 때문에 성인은 베옷을 걸치고도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
_70장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그가 죽게 되면 딱딱하고 굳어버린다.
만물이나 초목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여리지만 그들이 죽게 되면 마르고 시들게 된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굳어버린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이 때문에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게 되고, 나무가 강하기만 하면 부러진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거처하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위에 거처한다.
_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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