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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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은 김연수의 세 번째 장편 소설.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장편이라기보단 중편에 가까우므로, 따지자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두 번째 장편인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기준 최고로 좋았던 김연수 작가의 작품 순위가 바뀐 건 아니지만, 김연수는 역시 섬세하고 현학적인 문체로 원더보이의 세계 안에 나를 푹 빠지게 만들었다.


 정훈은 간첩과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순식간에 열다섯 고아가 된다. 정훈은 프로파간다에 의해 '원더보이'라는 별명을 얻는데, 이 과정에는 더 큰 진실이 있었다. 정훈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진짜 '원더보이'가 됐다는 것. 정훈을 출세 도구로 사용하려는 권대령의 휘하 정훈은 고문 받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일에 투입되지만, 엄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정부기관에서 탈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정훈은 초능력 소년 이만기, 강토 형, 무공 아저씨, 선재 형, 재진 아저씨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 사이에서 엄마의 행방과 아버지를 잃은 고통, 자신의 삶을 마주하면서 성장하고, 점차 원더보이가 아닌 진짜 정훈이 되어간다.


 <원더보이>의 독특한 점은 단순 판타지 성장 소설처럼 끌고 가던 소설의 전개를 군사 독재, 언론 탄압, 상계동 철거, 광주항쟁, 남북 분단 등의 실제 역사적 사건과 엮어 원더보이가 살던 80년대의 슬픔을 상기시키고 현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시선을 선사하는 것에 있다. 강토 '형'으로 분장했던 인물 희선 씨가 정부에 의해 잃은 연인 이수형의 사연을 말해줄 때와, 기억력이 뛰어났던 수형이 고문으로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광주에서 투쟁할 때, 정훈이 발견한 엄마의 편지에서 엄마가 북에 있을 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목소리를 보게 될 때가 그러하다.


 와중에 김연수 특유의 현학적 우주론은 뜬금없이 사진이란 비주얼로 등장해 '우리의 1초가 별빛으로 가득하다'는 것과 '아직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밤이 어둡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독자들의 가치관을 재정립한다. 더욱이, '미친'과 '엉?' 소리를 달고 다니던 이만기가 양복 쌍둥이 누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설정 등 곳곳에 흩뿌려진 유머로 슬그머니 짓게 만드는 웃음까지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희선 씨를 좋아하게 됐던 정훈에게는 가혹하지만) 분신을 하겠다는 다짐을 접고 현실의 빛을 받아들이기로 한 희선과 맹렬히 사회과학서에 매진하는 재진 둘의 결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돌고래쇼를 감상하게 된 정훈까지 그림 같이 행복한 결말도 참 마음에 든다.


아 이래서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층 충만해진 기분이다. 책 속의 수없이 많은 문장들이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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