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김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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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모음 서평단에 당첨되어 운좋게 신간 도서를 읽었다. 김재영 작가의 소설집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이다. 나의 첫 김재영 작가 책이었다.


 김재영 작가는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그리는 작품을 많이 썼다고 한다. 작가의 그러한 색깔은 목차의 첫번째 소설이자, 이 소설집의 표제작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서도 드러난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는 재건축에 반대하다가 불길에 휩싸인 주민들과 외국으로 도피하는 청춘들이 등장하며, 그들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정부와 사회가 등장한다. 그밖에도 계약직으로 머무르는 청춘들과, 남아선호사상에 태어날 때부터 성장을 거세당하는 여성, 야근과 과도한 일에 치이는 사람들이 다른 단편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쉰다.


 이 소설집의 독특한 점은 답답할만큼 삶에 치이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신화적인 상상과 엮고 비유하는 작가의 방식에서 느껴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수많은 책과 영화를 언급하고, 신화와 우주적 차원의 이야기를 좋아하며, 그와 관계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기를 즐긴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의 '우주'가 원자와 천체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미로]의 희가 정신을 잃고 일어났을 때 만난 인디언 할머니가 모하비 사막의 전설을 이야기 하는 것, [모기]의 주인공이 어릴 적 봤던 영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가 그녀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 [특별한 만찬]의 주인공이 금성 신화에 사로잡히는 것 등속이 그렇다. 주인공들은 전형적일 정도로 자본주의에 매여 있고, 마치 90년대 소설을 보는 듯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 혹은 창조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앞서 언급한 속성이 무색할만큼 주인공들은 한계 있는 인생에 자꾸만 끊임없이 부딪칠 뿐이다. 전형적인 캐릭터의 이상이 신화 없는 현실에 막혀 좌절되면서 역설적으로 슬픔이 배가되는 것이다. 그 와중,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주고 현실을 버텨내게끔 도와주는 유일한 방안이 '신화'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구절들은 마지막 단편 [더 리브렛]에서 나왔다. [더 리브렛]이라는 제목은 주인공이 학사조교로 일하며 마음을 주고 길렀던 더 리브렛 품종 망아지 '알렙'에게서 따온 제목이다. 연애도, 일도, 어떤 생명에 마음 주는 일도 변변찮은 주인공은 학교로 가기 위해 터미널을 향해 힘껏 달리면서 말의 진화처럼 인간도 언젠간 속도전에 중요한 가운뎃발가락만 성장하는 진화를 겪지 않을까 상상한다. 학교를 떠나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식용으로 팔려가게 된 알렙의 거처를 듣게 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흐느껴 우는 일밖에 없고, 바쁜 삶 속에서 장거리 연애같던 사랑도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간다. 글의 마지막 "길고 단단해진 세번째 발굽이 이상하게도, 갑자기, 견디기 힘들만큼 몹시 가렵다."는 문장은, 나의 존재 의미가 타인에게 타자화되는 사회와 스펙쌓기 경쟁 속에 부풀어 무뎌진 나의 가운뎃발가락을 상기시키는 대목이었다.


 첨부한 사진의 구절들도 [더 리브렛] 속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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