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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퇴각 - 세계 경제 내 권력의 분산
수잔 스트레인지 지음, 양오석 옮김 / 푸른길 / 2001년 9월
평점 :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각국간의 간헐적인 분쟁, 무역 마찰, 그리고 투기자본의 활성화, 대조적으로 자유무역의 활성화, 전지구적인 네트워크망 등은 현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국가의 권위주의적이고 중앙통제적인 방식으로는 현 세계에 대처할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런 현 국제정세를 학자들은 글로벌 가버넌스(Global Governance)의 부재라 본다. 즉 전지구를 통치·관리할 마땅한 행위자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국방에 한해서는 아직까지는 통제력을 지니고 있지만,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은 사라진지 오래다.
수잔 스트레인지의 <국가의 퇴각>은 현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제정치의 고전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책은, 아직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국가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현실주의에 대한 비국가 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스트레인지의 도전이다. 관성에 젖어있는 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국제정치경제학자인 스트레인지는 세계 경제가 기술의 발달, 금융의 확산, 생산의 증대를 통해 국가의 권한은 상실하고 있다고 본다. 더 이상 기술이란 국가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비국가적인 행위자인 다국적 기업에 의해 전지구적으로 발달·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정보화에 힘입어 신기술의 도래로 자본의 유동성을 급격히 증대시켰다. 생산의 증대는 이로 말미 암아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국가에 의해서가 아닌 비국가적 행위자에 의해.
초국적·다국적 기업들, NGO, 거대한 투자가들에 의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권한은 끌어내려지고 있다. 국가 대 국가의 동맹 관계가 이제는 기업 대 기업, 국가 대 기업, 투자가 대 기업간의 동맹으로 전환되었다. 부의 재분배는 국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탈국가적인 기업들에 의해 더 진행되고 있고, 국가의 세금 징수 권한은 기업들의 타국의 생산 시설의 설비로 인해 무시되고 있다. 국가 기능의 가장 기본적인 조세 권한까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탈세는 많은 지구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보여주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영토에 기반한 국가의 권력은 점점 상실해 가는 대신, 생산·금융·지식에 기반한 구조적 권력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국가라는 것은 더 이상 영토에 기반해 주권을 주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생산·금융·지식의 흐름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국가의 권력은 더 이상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통제 능력 자체에 있는 것이다. 힘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통제 권한·능력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구조적 권력인 것이다.
교권이 상실해가고 있더라고 그것은 힘에 의존했던 교권이 상실해간 것 일뿐이다. 선생님이라는 권위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암묵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구조적 권력의 실체다. 시장은 바로 이런 구조적 권력에 의해 통제 받는 것이지 국가의 군사력에 통제 받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인지의 이러한 주장들은 많은 현실주의자들을 경악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더 놀라게 될 것이다. 세계는 스트레인지의 주장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신자유주의는 어쩌면 패권국들의 통제 도구라기 보다는 패권국 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 세계가 과연 국가라는 존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국가정체성은 어느 정도나 존재하는가? 세계 경제를 미국이 쥐고 있지만, 그 미국 또한 세계 경제의 나비 효과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더 이상 권력은 집중하지 않는다. 집산(集散)을 반복하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