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 - 나의 평생 아기 고양이
하래연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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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하고의 만남과 이별 속에는 신비로운 사랑의 열쇠가...˝고양이책이지만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진실한 만남과 감정의 영원성에 대해 말하며 삶의 무의미를 엎어버리는 책. 우리 존재와 관계의 의미에 담담하고 당당하게 답을 준다.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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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담은 캐리어
이레이다 지음 / 전기장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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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담은 캐리어.

캐리어라는 세음절을 두 음절로 줄이면 우리에게 그것은 설렘이라던가 흥분이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중화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설렘과 흥분이라는 거울 뒷면에 떠오른 단어인 불안이 된다.


이 소설 제목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렸던 것은 이 제목이, 삶의 음과 양을 한번에 아우르고 있다는 그 어떤 완전체적인면모 때문이었을 거다. 가령 제목이 신나는 캐리어였다면 그 매혹이 덜했을 것이다.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것 자체가 삶의 매혹이자 어려움이자 역동인 법이니까.


음과 양이라고 말했듯이, 제목 안에 이미 이 이야기의 얼개가 내장되어 있다.

캐리어가 삶 속의 이동혹은 삶이라는 이동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듯. 이 책 전체는 희정의 삶의 쿠루셜한 순간들의 변곡점과 이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이동은 시공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시간적으로는 관계성과 연관된다. 희정의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가족 단위에서 하나의 자아로의 떨어져나감, 그로부터 다시 반려자과 그 너머의 새로운 가족으로의 이행이라는 관계 변화성을 그려나간다.





공간적으로도 몇 개의 이동이 보인다. 아동기로부터 잉태된 불안이 파열된 청소년기의 공간에서 그림이라는 자화상과 마주하는 대학 시절의 공간, 마드리드라는 낯선 도시와의 조우를 통과한 뒤 한 번 거쳐가는 간이역같은 장례식장. 죽음이 새로운 시작점이 되듯이 희정은 여기서 과거와 한 번 맞닥뜨린 다음 반려자와의 공간 및 그 반려자가 세속적 구속의 관계처럼 보이는 결혼을 하자마자 오히려 팔을 벌려 놓아주는 더 열린 우주 같은 런던으로 향한다. 우리나라와 외국이라는 상징성 속에서 외국 속의 한인민박이라는 공간도 독특하다. 그곳의 주인과 스탭들과 이상한 이웃 및 숙박시설 이용자들 또한 캐리어의 임시성 만큼이나 임시성을 띤 채 정연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임시성은 희정이 부여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여 마주한 것이기에 자기를 수시로 바라보는 손거울 같은 시공간으로 자리매김이 됨직하다.

 





어쩌면 희정에게 캐리어의 상징은 여행의 해방감 같은 것이 아니라, 존재가 귀속할 집에 착륙하기 전의 임시적 단위로서의 집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과거와 흔들리는 미래 속에서 늘 아연한 현재의 그녀에게 집 혹은 가족이라는 안락함의 상징은 파괴된 지 오래다. 그것은 아빠가 어느 날 캐리어를 끌고 나감으로써 확실히 해체되었고, 늘 자기 생각만 하며 딸을 도구처럼 여기는 엄마를 존재의 고향처럼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친구는 세상을 떴고, 그나마 친구랍시고 하나 있는 애도 희정을 전혀 담아주지 못한다. 있답시고 보탬이 되지 못하고 내 등을 떠미는 존재들. 이 속에서 희정에게 더 넓은 세계를 살고 오라 떠미는 연인 연석의 손은 오히려 통합적 삶으로의 초대장처럼 기능한다. 참새는 비둘기로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일년 전에 읽고서 몹시 맘에 드는 작품이었지만 느낌을 정리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고 그러다 최근 다시 한번 더 읽었다.

처음 발표하는 소설이라지만, 그 설정과 전개가 너무도 매끄럽고 자연스럽고 인상적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또 자기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은 의욕마저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나도 약간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볼까 하는. 누군가 그림을 재미있고 그럴싸하게 그리는 걸 보면 나도 그리고 싶어지고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듯이.

모먼트들은 시각적이고 입체적이며, 인물 및 배경의 설정은 간결하며 상징적이다.

기본적으로 삶의 모습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는 극사실주의다. 특히 이 작품 가족의 모습은 사회가 가족주의를 강조할 때나 혹은 드라마 속에서 흔히 그러하듯 쉬 미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가족들의 맨얼굴을 더욱 드러내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분칠된, 각자의 이기성에 기반하여 관계맺음되는. 이 작품 속 자기 할 말만 딸랑 하고 전화를 끊는 엄마의 모습 같은 것은 왜 이리도 익숙한가!




한편 희정이 거쳐가는 무대 데코에는 이상한 낭만이 흐른다. 책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먹에다 와인을 따라 갈아내 그린 그림 같은 작품이다.

표지와 내지의 드로잉, 활자체 등 미적인 측면이 내용하고 아주 잘 어우러진 완전체이다. 곁들여진 소묘와 수채화로부터 감정의 독백이 기이한 농담으로 번져나는 느낌을 받았다. 미술을 하는 분들은 재료를 익숙하게 다루듯 글을 쓴다는 나만의(?) 환상과 부러움이 일렁였다.

 

이 작품을 읽은 감상을 절반도 못 이야기했다. 이 책은 불안과 친밀한 내 속의 불안과 친구 같은 책이었다. 전작 에세이 <까미노 여행 스케치>는 그림이 주라서 길지 않은 글을 통해 이를테면 고난과 통증을 유머로 치환시키는 저자의 뉘앙스 같은 것을 엿보았는데, 본격적으로 텍스트 위주인 이 작품에 이르러선 작가가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역량이 아주 적절하고 능란하게 펼쳐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적절한 비유와 감각과 상황 설정과 독백과 대화의 배치인가 싶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영악하게 자신이 예뻐보이는 각도로 단번에 찍는 셀피가 아니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음영을 찬찬히 더듬어 대화해가며 그린 청춘의 자화상이어 보인다.

이 책이 방황하는 청춘을 건너지르는 이들에게 더 읽히면 좋겠다. 아마 이 작품 속 희정에게 꽤 감정이입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캐리어 속에서 자신만의 손거울을 집어들게 될 것이다. 캐리어를 꽉꽉 채우고도 남는 이 채워지지 않는 공간은 대체 무엇인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 


발췌:

?’가 어딨어. 왜를 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 모든 질문들은 스스로를 위한 가장 좋은 척도이자 사령관이 될 텐데, 대다수는 잘 모르는 남을 사령관으로 모신다. p.46

 

사랑은 관찰이라고 했다. 그리고 관찰을 시작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p.52

 

복숭아 살에 와인 색이 물드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는가? 어떤 단단한 과육도 알코올 앞에선 무장 해제되는 게 사람이랑 같았다. (...), 나는 문득 와인을 손바닥만한 벼루에 붓고 먹을 갈고 싶어졌다. p.68

 

가열한 태양을 가려주는 얇고 긴 잎사귀가 가시 같은 나무들은 이글거리는 스페인 태양 아래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펴지 않는 듯하지만 지나가는 모든 이의 그늘이 되어주는 스페인의 가로수가 내게는 따스한 그늘이 되어줬다.(...) 지금 느끼는 이 평화는 사실 밖에서 오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길거리 화가가 그렸던 무채색엔 평화가 없었고, 뾰족한 잎사귀의 가로수 그늘에도 따스함보다는 서늘함이 묻어 있었는데, 내 마음엔 출처 모를 따스함이 피어나고 있었다.

지는 태양이 만들어준 내 그림자가 물 위로 자기를 옮기는 동안 나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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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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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불행을 겪는 이에게는 보통, 뭐라 드릴 말을 못 찾겠어요 라는 말이 그나마 할 말이다. 감정이입을 실시해본답시고 짐작 가능한, 그 밖에 있는 것이 고통 자체의 형형한 얼굴이다 보니.

 

그러니까 바로 그런 인물인 프리다 칼로를 다룬 책에 대한 리뷰 또한, 그 할 말을 못 찾겠다는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프리다 칼로의 삶의 축을 이루었던 고통을 하나하나 떠올려 상상하면서...그러나 그 상상은 스스로 오래 갈 수 없음을 안다는 듯이 어느 순간 놓아져 버렸다. 어불성설인 거다.

 

그냥 일단 다 읽고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봐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든다.

 

영혼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들에선 그렇게 이야기된다. 영혼은 인간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기 전에 자기가 살 삶의 세팅 값을 미리 정해놓고서 온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자기 영혼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드라마 요소들의 선택인 셈이다. 영혼의 학습 차원에선 꼭 세상에서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어서 도전적인 영혼들일수록 고난의 환경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설정한 삶을 잘 살아내고 나면 가산점이 붙어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혼의 차원에선,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나? 같은 말이 쓸모없는 물음이요 푸념이 될 뿐.

 

프리다 칼로의 삶을 일별하고 나니 위의 이야기가 더욱 진해진다. 극도의 고행을 통해 그녀의 영혼이 도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애초의 의지가 있었을 거라는. 아마도 그녀는 그 지난한 삶을 마친 뒤 그토록 날고 싶어하던 하늘로 돌아가 그동안 지상에서의 깨달음을 바구니에 하나하나 수납하며 미소지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조금도 아프지 않은 몸으로, 영혼 본연의 모습으로.

 

그녀는 자주 자신을 아즈텍의 제의에 바쳐지는 제물 혹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와 동일시했다. 제물로서의 삶을 실패하고 덧없고 허망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사랑하는 우주와 생명 전체에 바치는 희생이라 친다면, 그게 양분이 되어 모두의 풍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개체로서의 자아가 모든 걸 갖추고 누려야만 행복한 삶이라는 지극히 속세적인 삶의 설정이야말로 오히려, 그만그만한 삶을 연명해가고자 하는 뭇 사람들의 이기적 한계 속에 갇힌 것일 수 있다. 프리다 칼로는 피할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의 감옥에 유폐되어 평생을 지내야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하여 역설적이게도 그녀에겐 이미 포기된 이기적 삶의 설정을 벗어나고 뛰어넘을 수밖에 없었노라고, 나는 풀이하게 된다. 무엇을 통하여? 그녀의 지팡이이자 스승이었고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예술을 빌어서. 가시처럼 파고들어 언제나 피와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들었던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자양으로 오로지 예술만에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 예술가로부터 생명력이란 꼭 육체적 건강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작은 전제를 얻는다.

 






애초에 안락한 삶의 테두리와는 인연이 없는 영혼들이 있다. 숭고하고 확장적인 영혼들에게 안락이야말로 죽음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이 강렬한 생명력 그 자체인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삶에서 안락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조건들을 코웃음을 흘리며 미리 하나하나 다 삭제했을 거라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영혼의 역사에서 한 번쯤은 철저한 고통을 어떻게 다른 것으로 바꾸는지를 실현해야만 하는 그녀만의 필연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 조건일 때에는 그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만이 유일한 통로가 된다. 칼로는 가장 직설적인 상념들을 그림으로 고스란히 그려낸다. 이국적인 색채와 환상성으로 인해 얼핏 폴 고갱과 살바드로 달리가 합쳐진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그림은 영혼의 여정으로 향하는 미의 궤적이다. 도저히 위장하거나 미화할 형편이 아닌 삶을 정면에서 바라본 독백의 형태로 이어지는.

 




 

너몹시도 귀한 책이다. 그녀의 정말 많은 그림들을 세밀한 부분컷까지 모두 살려 아주 친절하고 세세하고 쉽게 풀어내 들려주는, 눈으로 읽는 도슨트였다.

 

 

너무나도 적절한 관점이 속속들이 드러난 본문들에서 몇 군데를 가져와 나의 개인적 풀이를 덧붙여 본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창문에 입김을 불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던 중, 이상한 체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많이 웃어주었고 즐거워했으며, 목소리만 듣고도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고 했습니다. (...) 그녀는 현실의 프리다 칼로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p. 94-95

 

: 그녀 그림에 숱하게 등장하는, 프리다를 위로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프리다의 존재를 나는 조금도 손상된 바 없는 그녀의 영혼 자체라고 여긴다.

 

 






그게 아니고요. 나는 그려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린 것입니다. 그림이 그나마 진통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p.165

 

: 고통의 극에 다른 이에게 예술은 퇴로가 차단된 유일한 길이요 동행자가 된다.

 

 

가장 좋은 친구에게 사랑을 다하는 그녀의 방식은 조금의 거짓도 없이 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프리다 칼로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상대방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을 배려라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p.214.

 

: 가식이란 것 또한 아직 살만한 사람에게 허용된 조건이다. 그녀에겐 이럴 여지가 없고 그럴 이유가 없다. 절박한 삶은 요만큼의 퇴로도 구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온더페이지 #사이다경제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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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 미스트랄 - 덜컥 집을 사 버린 피터 씨의 일 년 기록
피터 메일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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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침 11, <아피!미스트랄>, 이 책의 독서란 일조량이 줄어들어 세로토닌이 떨어져가는 날들에 햇빛 충전이 되었다. <나의 프로방스> 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을 때부터 해서 세 번째로 읽는다. 앞선 두 번은 피터 메일의 위트와 감각에 둘둘 말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시각과 표현에 감탄하면서. 소설보다 재미난 에세이라는 게 이런 작품일 것이다.

 

 

사실을 비추는 자기의 시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묘사할 때만이 건져다 올릴 수 있는 생동감과 뉘앙스라는 게 있다. 자신의 감각, 시각에 충실하다면 소소한 일상에 대한 묘사도 충분히 특별한것이 된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갖은 에피소드들과 인물들이 아주 예외적인 것이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그 바탕에서 보자면 지구 어디상에서도 벌어질 만한 일들이고 어디에고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현실의 자잘한 잇속들 속에서 자신만의 우선 순위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하는 인간 사회의 풍속도이다. 프로방스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인정 많아 천국같이 다정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저변에 흐르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프로방스에 정착하던 딱 그 1년의 기후와 사람의 풍속화를 그려낸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 속엔 이상한 정이 흐르고 그 전체 톤이란 이 작품에 곁들여진 수채화의 색조처럼 면면히 따듯하며 무언가 특별하다. 내가 앞서 부정한 바로 그 모든 면모를 지닌다. 여기에 마술이 도사려 있다. 이 이야기는 실생활을 근거리보다도 가까운 저자의 내면으로부터 묘사했을 뿐임에도 전체적으로 어딘가 동화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를 주체환경을 언급하여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피터 메일과 그의 이웃들, 프랑스 그 중에서도 프로방스, 이렇게 만나질 때 실실 웃는 석류처럼 뿜어나는 과즙이 발생한다는 것을!

 

 

피터 메일의 위트가 정확히 영국적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처음으로 이웃들과 함께 한 식탁에 대해서 그날 밤 우리는 영국을 대표해서 먹었다.’고 표현하였듯, 프랑스인들에 포위된 그의 입지는 영국인의 그것이 된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나도 프랑스에서 체득했다. 이국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 놓일 때 한 개인의 소속 국가 정체감은 나라 안에 있을 때의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우선은 나를 포위한 이들이 나를 한국인’,‘영국인이런 식으로 인지하고 말을 하는 것도 큰 몫이다.

 

 




그러면서 아이가 처음 태어나 이 낯선 세상을 처음 살아갈 때 모든 디테일이 커다랗고 생경하게 피부에 와닿듯, 새로운 생활에서 겪는 사사건건의 느낌이 매우 선명해진다. 여기에 조명이 가해지면 겪어가는 그 모든 게 과연 특별한 것으로 인지되고 표현된다. 저자가 환경과 마주한 입지에서 프랑스인들과는 대비되는 면모가 매 챕터마다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파티에서 영국인들은 술잔을 한 손에서 놓지 않는 반면 프랑스인들은 받자마자 테이블 위에 놓고서 나중에 자기 잔 찾기 난감해한다. 프랑스인들은 대화할 때 두 손을 다 써야만 하기에 이런 일이 생긴다. 여기에다 또 빠질 수 없는 프랑스인들의 이상한 서류 사랑과 엄청난 식도락, 기타 등등!!

 




 

프랑스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에 덧붙여 프랑스에서도 남쪽으로 오면 더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뺨에 입맞추는 비즈(bise) 또한 파리처럼 두 번에 그치지 않고 세 번이라는 것도 일례랄까? 그리고 프로방스라 하면 도무지 빠뜨릴 수 없는 일조량과 악한과도 같은 바람 미스트랄. 효형 출판의 새로운 판본 제목이 <아피! 미스트랄>인 점도 무척 특별하다. 프로방스 지역에서도 가장 암울하고 고통스런 요소로 자리 매김될 미스트랄 앞에 해피!’를 붙였다는 것이 역설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모든 게 정해놓은 듯 잘 흘러가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예측할 수 없기에 삶이 현재적으로 되며 리듬이 한껏 느긋해지는 프로방스의 기후와 인간의 풍광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이러한 삶의 조건을 처음으로 마주 대하는 그 1년 동안 필자는 프로방스에서 시간을 주나 달 단위가 아니라 계절 단위로 헤아리는 감각을 배운다. 급해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법이니까. 프로방스인들이 특별히 낙천적이고 느긋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며 체득된 방식이었으리라. 이로부터 낙천성의 정의까지 돌아볼 수 있을 듯하다. 낙천성이란 게 오로지 모든 일이 잘 되리라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닥친들 마음을 내려놓고 그것에 역행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사려일지도 모른다는. 이러한 태도를 장착하기까지의 날들을 저자는 철학자가 아닌 풍속 수채 화가로서 그려 보여준다.

 

 

그렇게 피터 메일과 그의 아내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터득해간다. 물론 여기엔 미스트랄 바람 뿐 아니라 그가 신경 안정제라 말하는 햇빛의 역할도 크다. 햇빛과 바람이 이루는 기후가 얼마나 사람을 바꾸어놓는지 나 또한 겪은 바 있다. 피터 메일이 불르 놀이 도구를 습기 많은 영국에선 처박아 두었다가 건조한 프랑스 기후에선 꺼내놓게 되듯이, 김화영 선생님이 프로방스의 햇빛을 처음 만난 느낌을 행복의 충격이라 표현하였듯, 내가 남프랑스에서 처음 만난 햇빛 또한 쳐들어오는 치유제였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남프랑스에 대한 책을 쓸 때 나역시도 햇빛 찬양을 도무지 빠뜨릴 수 없었다. 음울한 기후 속에 사는 영국인들이 이 햇빛을 얼마나 밝히는지도 겪었다.

 

 


10년 전에 읽었던 표지와 제목, 산뜻하게 리뉴얼되었다!




너무도 많다. 곱씹으며 깔깔대고 두고 또 읽게 되는 구절들이. 언급하자면 끝도 없이, 이 풍경화와 풍속화가 주는 소소한 매력은 읽어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끝으로, 피터 메일의 감각이 빛나는 수많은 표현들 대신, 저자가 수렴하는, 어쩌면 가장 수사 없이 평범한 행복의 구절을 하나 흘리며 맺으려 한다. ‘태양은 대단한 신경안정제였다. 이러한 행복감에 젖어 시간은 흘렀다.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즐거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길게 천천히, 움직이지 않는 듯이 흘러가는 나날이었다.’(p.254)

 

이런 햇살 속에서 빚어진 최상의 올리브유에 나도 토마토 소스를 바른 빵을 찍어먹고 싶다. 저자처럼 햇살 만끽, 올리브유 사냥을 하고 싶어진다. (‘그날 저녁 우리는 식사 전에 그 올리브유를 시험해보았다. 토마토 과육을 살짝 바른 빵에 올리브유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마치 햇살을 먹는 기분이었다.’ p.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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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우유 - 마음이 자주 아팠던 여자가 쓰고, 마음이 자주 아팠던 남자가 그리다
이은정 지음, 이상수 그림 / 도서출판이곳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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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시집 <자판기 우유>의 이은정 작가님의 초상화를 그려보겠습니다.

  은정 작가님은 자주배워 그린 것이 아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시지요그녀의 그림만큼이나 또렷한 선으로 그녀의 표정을 잘 나타낼 수 있을지 근심이 따릅니다.

 

  그녀의 시를 처음 접하고는 우선화폭에 한 마리의 고슴도치가 들어왔습니다곧이어 자기 혐오증에 걸린 미운 오리가 떠돌았습니다아직 우윳빛은 감돌지 않았어요.

  한없이 자기를 못나게 바라보고 미워하고 부족하다 질책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나 또한 그렇거든요.

 

  그러나 그녀는 소월의 진달래꽃에서처럼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로 가거나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 같은 희생을 자처하지도 않습니다.(그런 나무 이제 고만 할라요.p.38-39) 좀 더 비련을 밀고 나가 처연함을 가장한다면많은 이들의 동정을 받고 그로 인한 이익을 챙길 수도 있겠지만그녀는 순하기에 자기를 속일 줄을 모릅니다자기를 피해자로 만들어 동정표를 얻는 대신 도처에서 위선 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이상형의 조건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명명합니다. (p.101-102 슬픈 이상형눈화장이 얼룩져가다 이내 다 지워질 때까지, 눈물을 흘릴 만큼 다 흘린 다음엔(눈화장 p.52), 닦고서 햇살을 향해 씩씩하게 웃어 보입니다그녀 안에는 그런 소녀가 있습니다

 

  이런 에너지 때문일까요, 처음 그녀의 인스타에 우연히 들렀을 때평범한 듯 진솔한 자기소개에 눈길이 머물렀고뭔지 모를 포근함과 온당함에 끌려피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읽기도 했었어요.

  저는 항상 정직함의 냄새를 킁킁거리고 다니거든요. 정직함이란 것포장지로 마음 숨기는 법이 발달한 요즘에는 귀해진 것이지요특히 글이란 잘못 쓰면 흉기가 되고, 맑지 않으면 독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은정 작가님그녀의 글에는 상대방을 갖고 놀려는 에너지가 1도 없이 진솔하기만 합니다일상 속 난무하는 얄궂은 중의법에 몸서리치며 음흉함을 못 견뎌하는 나는. 이런 마음이 좋습니다. 그녀의 순한 시에서 휴식을 발견합니다!






 그녀 자신이 오롯이 표현된 시들 속에서여리지만 당당한 소녀는 진정한 것을 추구하며 곧지 않은 것에는 곧장 반응하여 분노합니다. (악마의 재능 p.118-119) 이상한 것을 어른스러움이나 도리 혹은 성숙이라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여자답게 p.124-125)

 

여자답게 웃어야 예뻐보이냐

여자답게 꾸며야 사랑스럽냐

여자답게 말해야 사랑할 수 있냐

 

나 사랑안할란다

그냥 너 가라

 

  “괴이한 것들을 현실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저항하려는 것”, 이것이 그녀의 '가시'입니다또한 이 '가시'는 라는 예술의 본질이자 기본기이기도 할 겁니다.

 

  이제 이 가시들은 빛나기 시작합니다바로 그 티없는 슬픔 자체인 빛나는 가시이기에, 그것으로 절규하듯 자신을 찌르고 시원하게 울 수 있는 것입니다. (가시 p.12)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던 그녀가 왜 자신의 가시는 좋아졌다 하는지너무도 알 것 같습니다자기 안의 순수함과 만나졌기 때문이겠지요!  그녀는 이미 원망을 넘어 그 순수와 계속 대화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곳곳의 구절들은 이런 그녀의 세계를 비추어냅니다.

  낙엽이 지는 현상에 붙여, ‘가슴이 내린다’(p.16) 라고 한 그녀는 심지어 사방에서 온갖 대상들을 꽃으로 보거나 꽃이라 부릅니다. (꽃같네꽃꼬마 p.32-35) 끝내 꽃이 되지 못하거나 처음부터 꽃일 수 없었던 것들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단풍눈물p.56)

   

  시간이 지나 그녀는 삶의 원근법을 터득한 나이가 되었습니다청춘의 나날들이 하나의 객체로 의인화되어 내 앞으로 오고 또한 보냅니다. (p.144) 지나고 보면 고통도 모두 행복이었다고 담담히 말합니다.(시간이 지나면 p.102.) 그러면서 동시에 그 시간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 엄마를 만납니다. ( 시장에 가면p.104-105, 아홉 살 장발장p.16-117, 자판기 우유p.136-137) 엄마란 존재는 그리움이자 따듯함그리고 나의 근원이자 감정의 본원지이기도 합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무엇보다도 은정 작가님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감정의 힘'입니다감정적이기를 애써 피하는 지금의 세태에서저는 역으로감정이야말로 가장 큰 삶의 무기라 여기고 있습니다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 없고 결국은 가슴으로 체험하고 느껴 깨우쳐야 무어든 자기 것이 되지요감정을 피하는 사람은 아무리 잘난들 겁쟁이일 뿐입니다자기 감정 앞에서 눈을 깜박이거나 돌리지 않고서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연둣빛 잎새를 자기 마음이 비추는 대로 '꽃'이라 부르는 그녀는 이미 우윳빛 백조가 되었습니다더이상 쫓겨 달아나는 아홉 살 장발장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두루 섭렵한 감정 왕국의 여왕으로서, 자신의 호수에서 눈부신 빛의 목욕을 여유로이 즐기고 있습니다.

  이제 신록의 계절이 다가오면, 잎새를 통과하는 햇빛의 송신으로부터 나는 아마도 그녀의 호수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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