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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현대사 - 드라마처럼 읽는 이웃들의 이야기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9월
평점 :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삶도 있고 죽어도 영혼이 숨 쉬는 죽음도 있나 봐.”
<이웃집 현대사> 중에서
'좀비로 살 것인가? 영혼으로 살 것인가?'
이 책은 한편으론 이런 질문을 안겨주기도 했다
서언에서부터 느껴지는 저자의 삶의 태도가 가슴에 울림을 준다.
"나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이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모래이고 싶다.
땅인지 바다인지 모를 모래이고 싶다.
파도에 맞서고 싶지 않다.
파도에 휩쓸리고 싶다.
누군가 밟은 자국도
금세 사라지는 모래이고 싶다.
파도에 산산이 부서져도
무너지지 않는 모래이고 싶다."
***
'따듯함이 결여된 지적 능력은
결코 지성이 아니다.'
어디서 들은 말이 아니고
작가님의 책들을 읽다보면
마음 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말이다.
이 세상엔 지성이 결여된 차가운 지적 능력이 난무하기에
작가님의 책이 더욱 빛이 난다.
작가님의 책들은
이웃 혹은 사회에 대한 시각이 첨예하고 분명하다.
자기 혼자 잘 살아남고 성공하는 법을 설파하는
책들과 주의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음의 온정을 갖고서
보살핌과 연대 등,
우리사회에 필수불가결하지만 결여된 무엇을 통찰하는 시각은
귀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보살핌이나 연대는
마음이 유독 따듯한 몇몇만의 삶의 지향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 공기나 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주소지는
'정신 없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속 하루와 하루 사이엔
그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몇 십 년의 세월을 두고 돌아봤을 때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말이 안 될 정도로 역동적으로 흘러온 사회였다.
그리고 각 세대는
이 변화의 도가니 속에서도
자기가 가장 영향받았던 특정 시대의
가치관을 내장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추출된 진실이
그대로 지팡이 같은 진리가 되어버린 채.
그래서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도
각 세대가 간직한 모습들이 어울려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식민지와 전쟁의 여파를 끼고 출발했기에
사회의 진보에 많은 진통이 따른 한국 사회
그 속에서 주춤대며 갈등하며 때론 곪기도 했던
민주화, 돈, 교육, 성평등의 문제들
이런 것들이 이 한 권의
대하드라마 같은 책으로 육화되어
한꺼번에 일별하게 되니 감회가 몹시 새로웠다.
이미 익숙하다 여겼던 현상과 문제들이 다시 보였다.
드라마처럼 읽히니
책 속 수많은 인물들의 내면에 각각 공감되면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동시에 우리 사회 전체가
대단히 입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드러난 병폐나 현상만 보고서
헬조선이니 진상이니 하면서 비판적 시각을 가해 왔지만
각각의 입장에 귀기울기고 또 전체의 입체로 다시 느끼게 되면
모든 무조리한 현상들의 앞뒤와 인과가 보다 선명해진다.
물론 그 속엔 미담과 선인도 있고
심술궂은 행태나 진상도 있다.
우리나라가 수많은 잡초를 끼고
억세게 성장한 나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을 그려가는 작가님의 시점이 흥미롭고 공감되었다.
필요한 거리감을 잘 유지한 채
이 전체 드라마 속의 누구를 딱히 비난하거나 편 들지도 않으면서
현실의 현상에 대하여 그렇게 된 인과와 배경을 확실히 설명하면서
전체적으로 담담하고도 탄력있게 끌어가고 있었다.
무어든 드러난 것만 가지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 내역을 이해해보려는 것은
깊이와 인내와 온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걸 또 그물처럼 엮어 그 속 물고기들의 비늘의 파닥임들을
하나하나 생동감 넘치게 묘사해 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쩜 이렇게, 바로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상들을
이리도 그럴듯하게 그려냈을까?
vraisemblence(사실임직함, 있음직함)가 장난 아니다 싶었다.
인물상들 그리고 그들이 얽혀 만들어지는 얼개를 다루어가는 작가님의 능력이
수많은 실로 연결된 다수의 마리오네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움직여 맛깔나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란한 마리오네티스트를 보는 것만 같았다.
작가님의 다른 두 권의 책들과 더불어 이 책까지
배진시 작가님은 우리사회의 여러 주제에 대해
가장 쟁점이 되는 것, 가장 소외된 것, 각종 현상의 사각지대를 말함에 있어
'누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싶은 걸 해내는
그 '누구'가 되신 것 같다.
그냥 좋다는 말 가지고 부족하다.
#이웃집현대사
#배진시작가님 의 다른 두 책처럼
이 책도 필독서가 되어야 할 책이다.
- 책속으로
그래서 우리는 승자 중심으로 잘 살아왔지만, 불안이라는 동반자를 얻게 되었다. 이긴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이긴 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고, 진 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배워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113
돈으로 가난을 벗어나 본 사람은 ‘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공부로 환경을 극복해 본 세대에게 공부는 권력이다. 117
노예를 인간인 줄 몰랐던 것처럼 동물도 동물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학습이 되어야 했다. 우리나라에 ‘동물보호법’은 1991년에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144
이처럼 인간은 늘 다소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일을 그만두자’고 외치면 수십 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문화가 바뀐다. 145
우리 뇌는 생존을 향해 발달한다. 살면서 ‘슬픔’은 생존에 왜 필요한지 궁금했다. 슬픈 감정은 사는 데 방해가 될 뿐 도대체 왜 있는 것인가. 슬픔은 공감을 블러일으키고 인간은 공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神)은 인간에게 슬픔을 주었다. 슬픔을 통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서로 돕고 살라고. 331
“죽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라짐’이 아닌 것 같아.”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삶도 있고 죽어도 영혼이 숨 쉬는 죽음도 있나 봐.”
“엄마라는 나무가 베어지고 그 생명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뿌리로 더 이상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잎으로 햇빛도 받지 못하고 땅에 서 있지도 못하는 그 나무가, 전기톱에 잘리고 죽은 것이 아니라 여기 다른 모습으로 테이블이 되어 와 있어. 참 이상하지? 나무라는 생명은 죽었는데 다른 모습으로 살아 있네.” 335
나무꾼을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준 나무는 죽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머물 뿐이다. 사람은 죽어도 그 영혼이 기억된다. 내 육신이 아니라 정신이 남는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가꾸어야 하는가. 죽음을 잊고 삶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인간이다. 336
지금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학교에서 정의는 언제 가르칠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통로는 ‘알아주
는 대학’ 하나뿐인가. ‘정의’로 가는 통로는 소수의 희생자들의 몫인가. 지금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일까. 338
나는 이미 부족한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군사독재보다 무서운 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
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339
#이웃집현대사 #배진시작가님 #삶의태도 #교육 #정치 #현대사 #한국현대사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삶도 있고 죽어도 영혼이 숨 쉬는 죽음도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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