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길들로부터의 위안 - 서울 한양도성을 따라 걷고 그려낸 나의 옛길, 옛 동네 답사기
이호정 지음 / 해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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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위가 막 시작되던 2017년 6월 3일, 아이들과 첫 답사를 다녀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란 다분히 예술의 영역이겠으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고된 육체노동과 다르지 않음을 절절히 깨닫던 시간이었지요 새롭지도, 결코 독창적이지도 않은 이 그림들을 그리며 저는 아티스트였다면 개척해야 할 세계관 대신 충실한 관찰자로서, 어떻게 하면 제가 보았던 장면들을 그림 속으로 옮겨올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안에 서울의 오래된 풍경들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8p



제 기억으로는 몇 년전 이호정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던 계정이 따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작가님의 이름도 몰랐고, 남자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성곽을 돌며 나들이하고 그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남기셔서 감탄의 댓글도 남겼던 것 같은데요. 지금 계정의 그림을 다시 둘러보니 제 댓글이 없네요. 아마도 새로 계정을 만드셨거나 혹은 제가 뭔가 혼동을 하고 있는 거겠죠?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작가님이 출간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서평단에 응모하고 선정되었습니다.

이런 귀한 책은 직접 사서 보고, 동네 도서관에 신청하면서 응원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서평단으로 책을 보는 게 염치없다 느껴질만큼 귀한 책이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들인 작가의 노고가 책에 온전히 배어있기에 그 염치없음이 더해졌습니다.

간절하게 느끼기 위해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름 모를 산나무에 달린 주홍빛 잔열매가 꽃보다 곱다는 사실을 우리도 알게 될 테지요.

그렇게 보다 보면 애쓰고, 마음을 다하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태도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어서, 모든 것들이, 돌확 하나조차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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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5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서울 성곽을 순성 (巡城 성을 돌며 구경함)하며 그린 그림과 생각으로 채운 책입니다.

옛날에는 서울성곽 순성이 새벽 일찍부터 저녁 나절까지 부지런히 걸어야 마칠 수 있는 유람의 한 형태라고 하지만, 작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씩 나누어 걸었습니다. 성곽은 18km 정도이지만 아이들과 오고 가는 길에 마주치는 동네와 골목길의 이야기가 더해졌습니다.

도시공학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의 약력은 조선의 ‘한양’으로부터 600년간 가진 서울의 과거를 볕좋은 마당에 고추를 널어놓듯 독자들에게 반짝거리며 알싸한 내음과 함께 펼쳐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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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동을 주는 유적과 유구 앞에서 자주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과거로의 여행도 찬란했거나, 자랑스러웠거나, 대단했기를 기대하기에 우리의 시선은 위대한 문화재 앞에 먼저 가닿지만, 길을 걷다 보면 다른 방식으로 한 도시를 의미 있게 해주는 공간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비록 탄성을 자아내지 못할지라도.... 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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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와~!‘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세밀화로 그린 서울의 풍경이 눈에 가득찹니다. 멋진 그림에 놀라고 세세하게 그려낸 저자의 정성에 놀랍니다.

‘성곽 돌담을 하나하나 다 그리넣으셨네?’

‘저 풀은 어떻게 그리신걸까?’

‘얼마나 큰 종이에 그리신거지?’

작가님께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실린 70여점의 그림을 꼭 실화로 보고 싶습니다.

펜드로잉을 하시는 분들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감상할 때는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오랜 시간동안 허리와 시력, 손목을 치료해가며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작가의 실력이 아니라 체력과 근력, 정신력을 모두 갈아넣어 그린 그림이란 셈이죠. 수채화는 좀 더 큰 면적을 한 번의 붓칠로 채울 수 있기에 얇은 펜보다는 시간을 덜 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그림은 펜드로잉이 가득한 수채화입니다. 채색하기 이전의 스케치 그림도 보고 싶습니다.

2017년 6월 3일, 저는 이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첫 답사에 나섰습니다. 큰아이는 2학년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그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겨우 혼자서 등하교를 하던 무렵이었지요. 초여름의 볕이 쨍하게 내리쬐던 토요일 오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남산골 한옥 마을과 남산 정상, 개장된 지 얼마 안 된 ‘서울로7017’까지 무사히 첫 답사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17p



흔히 글은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고 합니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오랜 시간 고민하며 써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 책은 작가의 엉덩이나 책상 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쓴 책입니다.

이호정 작가님의 단단히 묶은 신발끈, 그리고 해를 지날수록 야물어졌을 작가님 아이들의 종아리에서 태어난 책입니다.

저자의 해박한 옛 이야기가 마치 기형도 시대의 글맛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덕분에 새하얀 책의 그림마저 오래되어 빛바랜 갱지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아이들과 하는 답사에서도 그랬습니다. 훌륭한 역사유적에 대한 지식을 쌓고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함께 걷지 않았다면 결코 해볼 수 없었을 크고 작은 경험들을 아이들과 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중요했씁니다. 물론 경험 중에는 ”엄만 왜 엄마 가고 싶은 데만 가“하며 따져 묻는 아이에게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129p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 풍경부터 성곽 암문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골목, 아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옛 선조들의 모습까지 모두 감탄하며 감상했습니다.

정연석 작가님의 서울들 걷다, 기억이 머무는 풍경, 그리고 건축 전공의 이종욱 작가님이 쓰신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그리고 이시우 작가님의 궁을 걷는 법까지 모든 걷고 그린 책에 더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엄마의 시선까지 담긴 책이어서 더 사랑스럽습니다.

어쩌면 개인의 미래도 마찬가지 아닐까. 곧게 뻗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 처음 섰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 마주한 나의 모습이 기대했던 것과 다를지라도, 한 손에는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바로 응시할 아주 조금의 용기를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73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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