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영리한 호구
최영민 지음 / 생각의빛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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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를 나와 인턴을 하다가 10년간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다시 속세로 나온 의사

출판사의 소개처럼 아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에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신부님처럼 이야기하는 책일까?'

책 소개에 실린 문장을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일 처음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마지막으로 영리한 호구가 되는 방법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기 시작하니 처세술같은 책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차라리 심리학 책을 찾게 됩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가시덤불 같은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화를 억누르며 부들거릴 때가 많은 미숙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기대했습니다.

어느날 수도원에서 같이 살던 형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자기가 사과를 받으면 ‘나는 얘한테 죄짓게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서 오히려 부담스럽고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어요.제 딴에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나름 자존심도 버려가며 사과하는 노력을 한 건데 오히려 그게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죠. 제가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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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쉬는날, 집에서 낮맥을 한 잔 들이켜고 낮잠을 잤습니다.

한 시간이 채 못 잤지만 달게 자고 일어났습니다. 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습니다.

부재중 전화 8통,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다. 저와 통화한 업체가 날짜를 혼동하여 불쑥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업체도 어떻게든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 저를 대신할 동료에게 협조를 구하고 급한 불을 껐습니다.

계획에 없던 업무를 대신 진행해 준 동료의 클레임 전화.

먼저 감사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만날’이라며 클레임을 했습니다. 억울한 상황이지만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대신 업체에 꼭 동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등의 사과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일상에서도 상대방과 대화를 하며 스스로 주눅이 들게 하는 ‘죄송’이라는 말을 수년간 억지로 참으며 습관을 고쳤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꼭 필요하긴 하지만 듣는 사람의 기운이 좀 빠지는 느낌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다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설령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듣게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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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호구, 곰같은 여우?

처세 등에 관한 자기계발서를 예상했지만 무릎을 탁치게 하거나, 속에 꽉 막힌 것을 뚫어주는 뾰족한 부분은 없습니다.

글자를 따라 편안히 눈을 옮기다 보면 저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읽은 책입니다. 위로가 됩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게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것 같습니다. 경험이 쌓이는 거죠. 특히나 이러이러한 상황이 와도, 지금 당장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뽑혀 나갈 만큼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지나고 나면 내 인생에 그렇게 영향을 줄 만한 사거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이 쌓이는 거시죠. 그러다 보면 다시 큰 경험을 할 때 이것도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죠.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면 경험이 쌓이면서 일희일비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람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엄청나게 두려워하고 안절부절 못할 때 다가가서, 지나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담아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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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도 저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우리는 다들 대단해요. 다들 노력하면서 살고 있고, 뭔가 몇 가지씩 다른 사람들보다 중점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가 나와 다를 때는 우리는 흔히 ‘무시’하는 것 같아요. 내가 공부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춤을 연습하고, 게임을 연습하는 것을 보면 노는 거라고 무시할 겁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노력’의 범주에 있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 사람 생각에 춤과 게임은 그냥 ‘노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정말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누군가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죠. 비록 그 분야가 내가 생각하는 ‘노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앞의 사람도 지금 드러나거나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에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러다 보면 세상에 존경하고 존중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들 소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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