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기의 기술 -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인생이 끝나기 전에
톰 밴더빌트 지음, 윤혜리 옮김 / 청림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그림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전혀 몰랐다.

회화를 시도할 생각은 없었는데도 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심지어 조각 수업까지 넘보고 있었다.

나는 노먼 러시가 말한 사랑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사랑이란 이 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저 방에 들어가는 일의 연속이며, 그때마다 더 커지고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에서 나와 저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저절로 그렇게 하게 된다. 새로운 문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다시 기쁨을 느낀다.”

배움이란 이런 느낌이다.

‘초보자 환영’이라고 적힌 첫 번째 문을 한 번 열고 나면 이렇게 된다. 326p


시작하기만 하면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초보자라는 멋진 일!

이 책은 50에 가까운 작가가 딸과 함께 체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취미’를 가지기 위해 ‘배우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체스, 노래, 서핑, 저글링, 그림, 바다수영을 배우며 겪었던 어려움과 성장, 자기진단을 독자들과 나눕니다.

제가 그림을 배울 때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재능도 없는데 왜 배우냐고요? 기분이 좋거든요!”

배움의 즐거움을 찾아서



이 책은 어떤 일을 처음 접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자 좌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구급상자이며, 가장 괴롭고 마음 아픈 단계를 헤쳐나가기 위한 생존 가이드다. 즉, 서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서도 짜릿함을 느끼는 단계의 초보자를 위한 책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왜 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초보 단계에서 얻은 것은 나중에 얻는 것보다 훨씬 크다.

사람들은 ‘가파른 학습곡선’이라고 하면 벅찰 정도로 어렵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일이 많다. 사실 배우기 어려울 수도 있고,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학습곡선이 가파르면 더 빨리 발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울기가 가장 큰 구간은 처음 배우자마자 금세 찾아온다. 43p



2019년 5월 1일 100일 그림 시작

그림 취미를 시작한지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그림 실력은 일천하지만

이제는 ‘초보’라는 말을 쓰면 쓸데없는 겸손이라는 눈흘김을 받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나요?”

​‘예비 초보자’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일단 시작하세요. 아무거나 그려 보세요.”

난감해 합니다.

“아니... 저는 완전 초보에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요.”

“저도 완전 초보였어요. 따로 미술을 전공하거나 학원을 배워본 적은 없거든요. 그냥 하루에 하나씩 그리고 싶은 걸 100일동안 꾸준히 그렸어요. 그렇게 100일이 지나니 그리기 근육이 조금 생겼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스스로 대견했거든요.”

“아.....”

‘아’라는 감탄사가 ‘이제야 알겠어요‘라는 뜻이 아니라

’제가 궁금해하는 건 그게 아니라.‘란 행간이 금방 읽혀집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단 몇 개월 안에 정복했는지 읽고 그 ‘비밀’을 배워서 자신에게 적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결과만 보이고 과정은 가려지는, 어려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략)

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고군분투해보고 싶었다. 발전도, 좌절도 느껴보고 싶었다.

이 과정은 비행기 여행이 아니라 발로 걷는 여행이었다.

작가 대니얼 부어스틴은 여행가가 되려면 ‘트라바유travail’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라바유는 고통스럽거나 고된 노력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이다.

이것이 없으면 그저 관광객이 된다.

다른 사람이 다리품을 대신 팔아준 것이다.

직접 손을 더럽혀가며 배우지 않고 ‘OO하는 법’ 영상만 보는 것이다. 369p

질문이 잘 못 되었습니다.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리는 것에 대해 궁금해야 합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한글을 배우기 전, 무독성 크레파스를 처음 쥔 유아시절에 이미 ‘영재’로 칭송받았을 겁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초보 단계가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마치 피부에 난 보기 싫은 잡티가 빨리 없어지길 바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다.

초보 단계란 그저 지나치는 과정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특별히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 시기는 한번 가버리면 다시 찾아오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44p

​

그래서 엉망진창인 첫 그림에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그릴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 ‘용기’라고 일컬어지는....

그리고 그 용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자기감탄’이 필요합니다.

‘오! 이 그림은 선이 괜찮네! 좋아!’

스스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감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자기 효능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100점을 추구하고, 100점만을 ‘우수한 상태‘로 정의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자기감탄‘은 ’오만‘으로 곡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기감탄’보다 ‘비교’가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로 서로의 흉금을 터놓고 공유하는 것이 미덕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좁은 땅덩어리에 ‘비교할 수많은 잣대’만 남아있기에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괴로움과 어려움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00일 글쓰기와 100권 읽기를 끝내고 자신감이 차오를 때 시작했는데도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그리는 것이 글쓰기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글쓰기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같은 대답을 듣습니다. 일단 한 문장을 쓰세요.)

글쓰기는 망해도 다시 고쳐쓰고 다듬을 수 있지만,

그림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습니다.

김효찬 선생님의 ‘망친 그림은 없어요. 끝까지 그리세요’라는 말을 꼭 쥐고 꾸역꾸역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내가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가장 몰두하게 되는 일이었다.

글쓰기보다 훨씬 더했다. 휴대폰을 꺼서 다른 방에 두니 그저 연필과 종이와 나만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 시간씩 흘렀다.

‘얻어 갈 것이 있는 명상’ 같았다.

나는 깊은 집중에 빠졌고,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은 시간과 함께 모두 날아갔다.

게다가 끝날 때는 집에 가져갈 기념품도 생겼다. 311p

​

​

그 때, 큰 도움이 된 것이 ‘자기감탄’을 훈련시키는 ‘남의감탄’이었습니다.

함께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초보들이 가득한 카카오톡 오픈채팅이었습니다.

https://open.kakao.com/o/g7vFgv9b

울프는 내가 뭔가를 잘못하면 지적해주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잘했을 때도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피드백이 실수를 고치는 진단 도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약간 다르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도전해 실패했을 때보다는 성공했을 때 피드백 받기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학습효과도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연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281p

‘아... 나는 이 그림, 이 부분이 어색했는데 오히려 이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네?’하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짓게 되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자주 생기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누적되기 시작합니다.

그 ‘감탄’을 따라 계속 그리게 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인간관계도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 중 몇몇과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욕구가 있고 바보같아 보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들의 성격을 정의하는 이른바 ‘5대 성격 요인’ 중 하나다.

(나머지 요인은 외향성, 성실성, 신경증, 우호성이다) 또 개방성이 수명과도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정확한 근거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개방성이 ‘인지 및 행동 유연성’을 수반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인지 및 행동 유연성은 인생 후반기에 맞닥뜨리는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데 유용한 성질이다. 66p

​

“그래도 그릴 시간이 없어요.”

그리는 동안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고,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누워있던 시간에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런데 뭘 그려야 할까요? 그릴 게 없네요.’

항상 그리고 싶은 욕심이 앞서고, ‘이런 소재는 이렇게 그리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단순한 소품을 그리며 하루 숙제를 마치듯 그릴 때도 있고, 무언가 의미있는 순간을 그릴 때도 있습니다.

​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이 질문들은 어느 정도 해결됩니다.

일단 움직여야 지금 머릿속의 고민과 질문이 필요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은 그것이 습관으로 바뀔 때만 유용하다 [제롬 브루너] 262p

어떤 기술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야 한다. 그래서 기술을 익힐 때 글로 된 설명이 소용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이렇게 썼다. “지식은 그것이 습관으로 바뀔 때만 유용하다”

초보자의 문제는 그들이 언제나 ‘그 일을 하는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걷기처럼 과잉 학습한 기술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더 못할 확률이 높다. 269p

​

그렇게 ‘초보’의 시절을 지나고 나니 이제 ‘아마추어’의 수준이 되었습니다.

공들여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며칠씩 손을 놓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즐겁습니다.

​

이 책이 끝난 뒤에도 내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든 것에 다 똑같은 열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는 소묘 수업을 정말 좋아했지만, 수업 시간이 아닐 때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떨칠 수 없는 욕망을 느끼지는 않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격렬하게 스케치하는 건 내 모습이 아니다.

내게 그런 욕망이 있었더라면 진작 표출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림 그리기는 여전히 내게 매우 즐거운(가끔은 힘든) 연습이다. 367p

​

‘작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저도 ‘나이 들어서, 뒤늦게 배우기 시작하는’ 40~50대 아저씨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CXKQf75PpGG/?utm_source=ig_web_copy_link

행복 자체를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행복을 찾으려면 “자신의 행복 이외의 다른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상 중 하나로 ‘예술 혹은 목적’을 꼽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묻지 말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라.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뭔가를 추구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라.

나는 여기에 한 마디만 추가하고 싶다.

얼마나 ‘잘하는지’는 걱정하지 말라.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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