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경의 치유의 말들
박주경 지음 / 부크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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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펴기 전에 먼저 저자 ‘박주경’ 아나운서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75년생, 기자출신 아나운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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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뉴스에서 뵙던 분입니다. 이미 지난해 [따뜻한 냉정]이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입니다.

20년전 기자로부터 시작한 그는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쳐 앵커로 근무했습니다.

취미로 종합격투기를 할 정도로 마초적인 근성을 가졌으면서도, 새벽 3시에 출근하면서도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는 ‘텐션’이 온유함으로 표현되는 분이리라 생각됩니다.

잘 사용치 않는 ‘대저’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경쾌하진 않지만 가볍지 않은 말투가 아나운서의 그것이 바로 연상되지만 딱딱하여 부러질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팔순을 목전에 둔, 당신 자신도 환자인 어머니가 보호자 격으로 구급차에 같이 타고 또 다른 보호자인 나는 내 차를 몰아 구급차를 뒤쫓는다. 교통 신호와 차선을 무시하며 내달리는 응급차를 나는 잘 따라잡지 못한다. 나의 차는 어느 시점에서 아버지를 놓치고 덩그러니 빨간불 앞에 서 있거나 좌회전으로 꺾이어 멀어지는 차 뒤에서 물끄러미 꽁무니만 바라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중환자인 아버지가 멀어지고 중환자에 준하는 어머니도 함께 멀어진다. 두 환자가 나란히 앞서간다. 나는 그분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다.... [지키지 못한 약속]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때마다 영화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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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맛은 여느 책들과 전혀 다릅니다. 슴슴한 나물반찬에 오곡밥을 꼭꼭 씹듯 책을 읽었습니다.

다만, 유머가 조금 부족하니 구도자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쩌면 꼰대의 말투처럼 곡해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필사를 하며 흉내내고픈 글맛입니다.

40대 중반, 너무 긴장할 것도, 여유롭지도 않은 나이

비슷한 연배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생과 삶, 잘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해

저자의 문자로 정리하고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성’이라는 말보다는 ‘항상성’이라는 말로 표현을 대체하고 싶다. 좋은 관계의 핵심 조건으로 말이다. 촌각에도 수없이 바뀌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지만 사람 대 사람의 관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어떤 일관된 기류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 기류에 기복이 적고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신뢰로 이어지고 서러 간의 친밀도를 높인다. “이 사람은 참 변함없어.”라는 말이 얼마나 훌륭한 평가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정성 말고 항상성]

끊어지지 않고 오래 가는 친구 관계의 핵심은 덤덤함이다. 널뛰지 않는 덤덤함. 사소한 감정에 관계가 휘둘리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됐다고 여기는 진득함. 그렇게 우직하게 접착된 사이는 향초처럼 은은한 향기를 머금어 오래도록 이어진다. 독한 향수는 금세 기회되고 그 전에 이미 물리기 십상이다. [오래 가는 친구]

‘데이트 폭력’, ‘원조 교제’, ‘조건 만남’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그 말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만남이라는 말 자체가 억지다. ‘만남’이란, 사람 대 사람이 대등한 관계로 접촉하는 걸 본질로 삼아야 하는데 어찌 이런 착취 고나계에 그 용어를 쓸 수 있는가. 또한 ‘조건’이라는 말에도 함정이 있다. 성을 돈으로 갈취하는 행위를 마치 정상적인 조건 가치의 교환인 것처럼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용어에 무감각해지면, 그 용어가 가리키는 행위의 본질에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

나약한 인간에게 똑같이 나약한 인간이 감히 영향을 미치려 드느 것이니 글 쓰는 이는 늘 겸손해야겠습니다. 제 잘난 맛에 취해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논하는 데 있어, 작가라고 뭐 대단한 자격을 따로 갖추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잘났건 못났건, 무슨 일을 하건, 인생 요약본은 대저 비슷한 법입니다. 나고 자라고, 힘들고 견디고, 그러다 죽는다는 삶의 숙명적 굴레... 이것은, 쓰는 자든 읽는 자든 대문호든 시정잡배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러니, 너와 내가 다를 바 없고 우리는 다같이 가련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쓰기건 읽기건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요약]

잘 산다는 게 뭐 별거 있나요?

내가 좀 ‘덜 한심해 보이는’ 하루,

‘덜 못 뙜던’ 하루,

어쩌다 한 번씩 ‘괜찮아 보이는’하루,

그 하루가 그런대로 잘 산 하루겠죠. 뭐.

그런 날들이 모이고 모이면 또 인생 전체도 그런대로 잘 산 인생이 될 테고 말이죠.

저는 소박하게나마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러니 잡아라.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잡아야 한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머물 수 있을 때 더 머물러야 한다. 현실의 속박과 고충은 현실공간 안에서 마주하면 된다. 여행은 그걸 잊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여행의 공간에서는 감동 외엔 그 어느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하루라도 빨리, 한 번이라도 더 떠나고, 거기서 모든 소박한 행복을 누려라. [여행은 젊었을 때]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이 3개의 문을 통과하게 하라

첫 번째 문 : 그 말이 사실인가?

두 번째 문 : 그 말이 필요한가?

세 번째 문 : 그 말이 따뜻한가?

[이슬람 수피 속담]

또 하나, 이 일을 하다 보면 세상 험한 것들을 자꾸 보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고 차가 부딪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해하는 수많은 일들..... (중략) 투신 자살이 벌어진 지하철 선로에는 사망자 몸의 일부가 눌러 붙습니다. 열차 바퀴와 레일의 마찰, 그 기계적 열기 아래 사람이 끼었기 때문입니다. 제보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던 20년 전의 사회부 기자는 그 ‘몸’의 일부를 손으로 긁어 떼어내던 경찰관에게 태연하게 ‘몸’의 신원을 물었습니다. 그게 접니다. 저는 그때 이미 그렇게 죽음 앞에 무감각해져 있었습니다.[나를 바꾼 SNS]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오만한 사람은 그 자체로 불쌍한 사람이다. 그의 곁에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있어 보이려고’ 허세를 부리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로 있어 보이는’부류는 찾기 힘들었으니 결국 오만한 자는 ‘없는’자이다. ‘없어 보이는’자이다. 이때 ‘없다’라는 것은 꼭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건 아니고, 정신적인 여유, 영혼의 내공, 마음의 덕같은 것들일 수도 있다. 또한 친구가 없다는 뜻도 첨언 가능하겠다. [오만은 도마뱀의 목도리]

중국 속담은 말합니다.

“누군가 이유없이 당신을 괴롭혀 못 견디도록 그가 밉다면,

굳이 복수하려 들지 말고 강에 나가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라.

그럼 틀림없이 언젠가 그의 시체가 둥둥 떠내려오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복수하고 싶은 당신께]

걱정은 미래에서 당겨쓰는 불행이다. 현존하지 않는 것을 소환하는 일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을 것들을 굳이 지금 이곳으로 불러들여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쓰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걱정하는 게 걱정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그 얘기다. 너무 많이 함녀 행복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탈이 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려고 성공을 추구하고 성공하려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건데,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인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성공한다 한들 건강을 잃거나 가족, 친구를 잃거나 주변에 적만 많이 생겨난다면 그건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적당한 성공]

사람 관계에서도 그런 측면을 지나치게 많이 신경 쓰다 보면 결국 모든 사람을 ‘득이 되는 사람’, ‘득이 안 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관계에 제약을 둘지 모릅니다. 그냥 오는 대로, 가는 대로, 지금 만나서 좋은 사람은 최대한으로 좋아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멀리하고, 그렇게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지 않고 일일이 재고 따지고 훗날의 가치를 깐깐히 계산하고 사는 것은 외롭고 피곤한, 지치는 생이 되고 맙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무 책이나 무턱대고 모으기만 하는 것은 하나의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권수만큼 읽은 이의 머리와 가슴이 채워졌다고도 장담하기 어렵다. 책의 권수만큼 읽은 이의 머리와 가슴이 채워졌다고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서고라든가 책장의 크기가 그 주인의 됨됨이나 그릇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읽은 책의 수량이라는 것이 ‘지식’의 양과 비례할지는 몰라도 ‘지혜’의 깊이와 비례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영혼의 탑]

“제가 국민 정서를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략) 이 ‘국민정서’를 들먹이는 속뜻은 크게 두 가지라 하겠다.

하나는, 본인이 진짜 잘못한 건 ‘없다’는 뜻이다. 법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국민들이 하도 ‘기분나빠 하니끼ㅏ’단지 거기 대해서는 내가 좀 유감이라는 것이다. 위의 첫 문장에서 “정서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는 표현은, ‘나와 여러분의 의식 수준이 맞질 않아 내가 본의 아니게 여러분 기분을 좀 나쁘게 했네?’정도의 속내를 에두르는 걸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본인의 정서는 그 국민의 정서와 ‘지금도 여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자기 정서가 ‘틀린’게 아니고 그저 ‘달랐을’뿐이라는 얘기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끝까지 대중에게 완벽히 공감하지는 못하겠다는 말이다.

[국민 정서 유감]

지나치지 않지만 현 정치에 대한 아쉬움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것들은 추상적인 고민 축에 속했고, 실질적으로는 더 사소하고 꾀죄죄한 고민들이 주를 이뤘다. 오늘 내가 빼먹은 보고는 없나, 내 구역에서 낙종한 기사는 없을까, 내일은 또 뭘 취재하겠다고 보고할까.... 그렇게 ‘사소하게’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건조한 나날이었지만 그만큼 또 무덤덤했다. 청춘이 그렇게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일 고민’이 세상 고민 중에 제일 만만하더라.... 순간의 ‘텐션’은 높아도 그 깊이가 아득하지는 않다. 지금의 나에겐 그 시절의 청춘은 없지만 고민의 질량은 몇 곱절이다. 일 바깥의 고민이 실존의 고뇌에 더 가까운 법이다.

[양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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