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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박조건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김비, 박조건형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 / 일자 : 초판 1쇄 2020년 7월 22일
읽은기간 2020년 8월 19일~20일 정리한날 2020년 8월 20일
[소감]
1년이 넘게 긴 우기(우울증 기간)를 거치며 뜸했던 박조건형 작가님의 소식을 책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다. 무탈하셨구나'
작년 5월, 100일 그리기를 할 때 제 그림생활의 넘치는 자양분을 주셨던 #박조건형 작가님과 그의 #짝지 김비작가님이 함께 쓴 세번째 책입니다.

박조작가님 부부의 그림이 없는 첫번째 책입니다.
여전히 김비작가님의 문장은 저릿해지는 아픔과 희망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힙니다.
마치 깊은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아 쨍하게 산란하는 태양을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선만큼이나 읽는 맛이 좋아진 박조작가님의 단정한 문장도 좋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지만,
그 한 권을 둘러싼 서로 다른 세계를 만날 때마다
온 마음이 저릿저릿해진다.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손짓하고 불러주고 응답하는 마음들은
다시 또 다른 형태와 이름의 작품이 되어
우리 삶에 한 줄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또 다시 책 한 권이 된다.
두 분의 작가님께서 활동하시던 (지금은 없어진) 부산의 생각다방을 그렸습니다.
박조건형 작가님께서 그려주신 저와 아들의 모습입니다.

@ 고독한 게 아니라 평화로운 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이따금 그 믿음의 주름이 만져진다. 가족은 여전히 나에겐 그리운 것이 아니라 두렵고 난감한 무언가인데, 스쳐가는 타인이 아니라 갖고의 이름으로 내 삶 옆에 놓인 그 얼굴들이 궁금해진다. 타인이지만 타인은 아니며, 가족이지만 또 가족이지 않은.
@ 수술을 한 지 어느새 20여 년이 흘렀다. 누군가 “쉰이 되었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어요? 하고 묻는다. 나도 가볍게 대꾸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아니면 그런 고민할 필요 없는 당신이 하는 말이야말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걸 아느냐고 소리쳐야 하는데, 그 또한 생각만 할 뿐이다. 그들이 내 편에 선 고마운 사람들임을 알기에 최소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나는 여기 이 세상의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살지만, 그럼에도 다행히 나답게 살고 있다.
@ 언제나 답을 찾는 일은 내 몫이다. 이 사회가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들을 씹어 삼킨다. 어떤 말이든 꾸역꾸역 씹어 배 속에 밀어 넣는다
@ 애초부터 신랑은 제 3자로서의 나와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의도였겠지만, 나는 제 3자일 수 없으니 결국 글을 쓰는 발밑이 붕 뜬다.
@ 왜라는 물음을 포기하고 나면 사는 일은 쉬워지지만, 그러고 나면 멀리 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 삶이란 포기해버리면 정말 그 순간 끝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 하나만 붙들고 있어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그 마음을 스물네 시간 아등바등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 어떤 때는 힘을 뺐다가, 장난감처럼 굴렸다가, 뒹굴뒹굴 끌어안고 늘어졌다가, 그렇게 지내면 된다.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어떤 꼴이더라도 어떤 형편없는 나 자신이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삶이 된다. 그 누구의 삶보다 더욱 귀한 삶이 된다.
@ 그러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 삶의 수면으로 올라와 가까스로 숨 한 번 들이쉬고, 또 다시 꼬르륵 곤두박질치고 말았겠지.
@ 처음 내 글이 포털사이트에 기록된 때가 1997년으로 어느새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여전히 쏟아내는 글을 쓰고, 그걸 단정하게 늘어놓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다. 누군가 이건 좋은 문장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제야 너저분한 글자를 몇 개 지운다. 그러면 너무 단정해진 문장 앞에서 ‘이건 아닌데.....’하며 지워진 자리에 한참 동안 붙들리고 만다.
@ 희망이나 절망은 섣불리 규정하지 말아야 하는 단어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순리의 얼굴은 한 가지 표정만 가진 건 아닌 걸까? 나는 그 순간 신랑에게 내질러버렸던 내 화에, 그즈음 최악으로 치달았던 신랑의 우울증에 모종의 감사를 전했다. 별것 아닌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삶으로 이끌었던 그 마법으로 신기해하며 말이다.
@ 한 권의 책이지만, 그 한 권을 둘러싼 서로 다른 세계를 만날 때마다 온 마음이 저릿저릿해진다.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손짓하고 불러주고 응답하는 마음들은 다시 또 다른 형태와 이름의 작품이 되어 우리 삶에 한 줄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또 다시 책 한 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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