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 선생님의 아버지인 작곡가 금수현 선생님이 쓰신 100편의 컬럼 중 75개를 고쳐 쓰고, 25개는 금난새 선생님의 글로 채워져있습니다.
따뜻하고 다정한 글,
투박한 내표지의 색감
빠닥빠닥 만져지는 종이질감까지
푹 빠져 들었습니다
1919년 생 금수현 선생님의 짧은 수필은 교과서에서 읽던 피천득, 현진건의 글처럼 오래전에 쓰여진 덕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요즘 글들처럼 남들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풀어놓는 글의 흐름은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금난새님이야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클래식에 문외한인 저는 정명훈님과 혼동했다는 사실은 비밀입니다) 금수현 선생님의 프로필을 살펴보니, 당시 표현으로 ‘팔방미인’이셨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 극장장으로, 문교부 편수관(사전적 의미는 역사기록 사관인 것 같습니다), 중앙정보부 행정이사관 시사정보실장, 국제신보 고문, 영필하모닉 관혁악단 이사장, 대학교 교수까지...
인텔리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시대라지만 5년 이내로 변경되는 그의 약력이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선생은 능력을 넘어선 취향이 업(業)으로 계속 확장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글에 뒤이어지는 아들 금난새 선생님의 글은 아버지의 문장과 그 결이 똑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조금 맥이 빠지듯 본인의 감정과 느낌을 위주로 단순하고 평이하게 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꼬아서보자면 당신 주위의 인맥으로 후학과 제자들을 성장시키는 모습을 자랑하는 글이 대부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연 10분전 무대 셋팅을 위해 의자를 나르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데리고 해외공연을 하는 그의 열정은 곱씹게 됩니다.
거기에 음악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항상 감사하도록 교육하는 그의 모습이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몇 십년전부터 TV화면에서 보는 그의 맑은 얼굴처럼 그의 글도 맑고 순수하게 느껴집니다.
제 짧은 안목으로는 고생없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을 듯한 인상을 가진 그가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어버립니다.
금난새 선생님을 보면 유럽의 어느 멋진 고성(古城)의 매끈하고 늠름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음악에만 열중하고 치열하게 살아왔을 그가 가진 여유와 풍모는, 성을 쌓기 위해 벽돌을 한장 한장 쌓듯 오랜 시간 견뎌온 세월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