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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제목에 처음에는 우주 여행에 관련한 미래 SF 소설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 내용 중에 현실에서의 삶이 버겁다면,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화성이라도 가서 사는 것이 가능 할 것인지 빗대어 물어 보는 내용으로 살짝 비꼬는 문장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가상의
평화경찰이 공권력 위에 군림하면서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마녀사냥을 하면서 공포정치를 하는 설정을 하고 있다.
평화경찰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감시와 서로를 신고
하게 만드는 체제를 유지 하고 있다. 그리고 위험인물로 지정한 사람들을 가혹한 고문과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면서 마치 암울했던 중세 시대처럼 광장에서 공개
처형도 감행한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에서
보여지는 무차별적으로 강압적인 치안 유지가 결코 안정적인 평화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 안에서 더더욱 자신만의 안위만을 위해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변하는 인간성의 한계도 엿보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독재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과 중세 유럽의 단두대 처형처럼 군중 심리에 휘말려 환호 하며 이성적인 자의 조차 무감각해져버리는 무서운 배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그렇게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해 버릴만한 상황이
지금도 내 주변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아무 이유 없이 집단 따돌림이나 왕따로 특정인을 소외 시키면서 공개 처형과도 다름없는
일도 자향하고 있고, 나의 승진이나 이익을 위해서는 악의적인 행위에 눈을 감고 순응해버리는 모습들도 흔히 보고 있지 않나
싶다.
난세 속에 영웅이 등장 하듯이, 이야기 속에는 강제 연행되어
처형 되는 평범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에일에 감싸있는 정의의 영웅이 등장을 한다.
영웅들이 모든 사람을 다 구해 낼 수 있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그 대상자를 선택을 해야 하나? 한번쯤은 의문을 품어 보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웅 역시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기에 어떻게 그
들을 선택해야 하나 라는 문제에 직면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더 큰 의문을 제시한다.

누군가에게 선의를 대했을 때에, 그 선의를 오도하여 수많은
구원의 손길을 요구 하는 사람들이 다가 오게 되는데 그들을 외면 하는 것은 결국 위선이 아닌가? 그들 모두를 도울 수 없어서 외면 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위선자로 보여질 수 밖에 없으니 아예 선의를 행하지 않는게 옳은 일이 아닐까?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다소 이분법적인 논리이기는 하지만 선의자의 난감한 입장이나
대다수 수혜를 바라는 입장의 모두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도 물리적인 행위는 아니더라도 선의자나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고는 질투의 눈으로 인터넷 악성 댓글을 달거나 근거 없는 악성 여론 몰이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정의를 위한 선택의 의미와 철저하게 이기적일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극 중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하물며 시민들을 옥죄고 있는 형사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 구현에 대한 생각을 엿 볼 수 있다.
나란히 마주하는 자석이 큰 힘을 낼 수는 있지만 그만큼
반발도 클 수 밖에 없으니 결국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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