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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링을 목에 걸게 되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형벌인 '소실형'.
우리가 어릴적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어서 아무도 모르게
가보지 못했던 곳도 들여다보고 작은 일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즐거운 상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에게 보이지 않으면 남모르게 그동안 도덕과 법에
억눌러왔던 체제와 속박에서 벗어나 오히려 범죄로도 쓰이기 쉬울테고, 누구에게도 잘보이거나 외향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자유로운
일 일텐데 이 것이 형벌이라니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일본 SF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 작가 중 한명인 '가지오
신지'의 신작인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실형]
은 1년 미만의 무겁지 않은 징역 살이를 해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소실형'이라는 실험적인 가상의 형벌을 선택하도록 한다.
죄인들을 수감하기 위한 시설의 부족과 관리 비용의 절감의
차원에서 실제 시행 되기 이전 시범 운용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일부 감형 혜택과 교도소가 아닌 본인의 집에서 아무런 감시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선택적 형벌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조건이 붙어 있는데, 입 밖으로
목소리 조차 낼 수 없고 누구에게도 존재를 알리는 행위나 어떠한 의사 소통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TV,라디오,신문 등 정보 매체도 볼
수 없고 세상과 소통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금지된다. 만일 이를 어기려는 생각이나 의도만 가지려 해도 남에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기인 목에
걸려있는 '베니싱 링'이 뇌파를 감지해서 목이 죄어지면서 숨이 막히는 고통을 주게 된다고 한다.
미 작가 '로버트 실버버그'의 작품 속에 범죄자로 낙인
찍힌 사람을 못본체 무시하는 <무시형>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다고 하는데, 추가적으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옭아매고 있는 머리링의
소재도 차용해 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가상의 형벌과 기기이지만, 매력적인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서 더이상 개의치 않게되는 그저 하나의 배경 장치 설정 그 이상도 아니게 된다.
평소에도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찾아보고,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힐링을 해보고자 하는 요즘 바쁜 도시인들의 일상이라면 그정도 쯤이야 감수 할 수 있는 편한 형벌일 듯 싶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었을까? 간간히 혼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만한 게임이라도 할 만한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더구나
날짜가 지나가는 걸 확인하는 캘린더조차 볼 수 없다면 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가쓰노리'는 사랑하게 된 한 여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녀를 돕기 위한 우발적인 범죄로 실형을 선고 받게 된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는 악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함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 되고 있다. 사람과 일정 거리 이상 가깝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 집이나 개인 공간에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무인도에 혼자 남겨져서 생활하는 '로빈슨 크루소' 생존기 같다고도 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고립된 '톰
행크스'는 배구공 하나에 얼굴을 그려놓고 친구처럼 혼잣말이라도 대화를 하면서 세상과의 단절된 고통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데 목소리 조차
낼 수 없고 손짓 발짓의 소통조차 할 수 없다면 얼마나 괴로운 형벌인지 상상조차 안된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보이지 않으니 달려오는 차가
멈추기를 기대할 수도 없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선 거리 확보가 안되니 목이 죄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하게 되는 감시작의 역할도 해야하는 더 큰 고통일
것이다.
'소실형'이라는 독특한 설정의 전개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여러 사회적 문제와 직면 하게 된다. 도시 괴담과도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주인공이 헤쳐나가는 과정도
함께 그려지면서 사건의 해결을 위한 추리 소설과도 깉은 긴장감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애틋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은 한 순간도 눈을 못떼게
만든다.
'대중 속의 고독'이라는 용어가 낯설지만은 않은 현대인의
고립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갈수록 팽배해지는 개인주의적 성향 속에서 주변인과의 소통의 제한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모두 이미
이러한 '소실형' 형벌을 받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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