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 박동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사람마다 다른 심장의 쿵쾅 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면 오롯이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과도 가늘게
꼬여 있는 전화선을 통해 반가운 음성을 들으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난 기억들을 함께 공유하고자 짧은 시간이 아쉬워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을
붙잡으려 애쓰던 모습들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었던 듯 하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아니면 컴퓨터로 클릭
한번이면, 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거나 상관없이 늘상 옆에 있듯이 이야기도 나누고 화상으로 얼굴까지 보면서 편하게 서로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종종 편지의 글로 꼭꼭 눌러 썼던 체온과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 통화를 위해 한참을 시간을 맞추어 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 것은 왜일까?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에 등장하는 가난한 미얀마의 산골에 살고 있는 소년 ' 틴 윈'은 어느날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눈 이외의 감각에 의존하면서 시력을 대신하는 법에 익숙해지는데, 우연치 않게 멀리서도 작은 소리를 분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스스로
깨치게 된다. 심지어 몸 안에서 흐르는 혈액과 심장 소리 마저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또다른 세상을 바라 보고 판단 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으로
말이다.
다소 과장된 동화 같은 이야기이고, 초현실
SF 소설과도 같은 능력이지만 전혀 허황되지 않고, 깊이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어쩌면 실제로 들을 수 는 없지만 그만큼 정말 바라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감각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내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실제로도 우리가 늘상 해오던 행위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만
너무나 많은 물질의 '문명 이기'에 밀려서 그런 우리의 원시적이고 정확한 레이더를 잊고 살고는 있지 않은지?
앞을 못보는 소년과 태어날때부터 조막발로
태어난 불구의 어여쁜 소녀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서 키우던 어리지만 애절했던 사랑의 감정들. 오히려 몸이
불편한 만큼 서로에게 더욱 충실하였고, 어려웠던 시기와 주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의 믿음을 유지하며 죽음 조차도 가로막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
시대상으로 영국의 식민지 였으나 독립을 하던
과도기의 시대와 지역적으로도 선진 문명의 진입이 어려웠던 열대 우림의 그 곳에서, 대다수 주민들이 신봉 할 수 밖에 없던 미신과 점성술로 몸이
불편했던 두 불운의 주인공들에게 모진 시선과 저주의 운명을 점지 했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거짓없이 밝은 긍정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던 모습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듯 하다. 더불어 사랑의 힘앞에 몸의 불편함은 절대 장매풀이 될 수 없는 진리
이듯.
심장 박동을 듣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가로막았던 여러 상황들 속에서도 이처럼 서로에게 어떠한 비난이나 기다림의 원망 없이 사랑을 키울수 있는 '영원한 사랑'이 오히려 대단한
초능력 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사랑의 의미에 대해 의심하고 사랑의 영원함에 대한 믿음이 퇴색해져 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