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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걸작일 것이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에 필독서 처럼 읽었던 도서
이고, 이야기의 내용 또한 청소년들의 성장기가 함께 그려지기에 어린 나이에도 마치 나의 이야기 처럼 공감을 크게 느꼇던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
였다.
[데미안]
하면 지금도 가장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단어 <아브락사스>. 명확한 어원과 뜻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치 무슨 요술의 주문처럼 자동 반사로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다."
학창 시절 읽었던 기억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질풍노도 시기인 사춘기 시절을 겪는 '싱클레어'의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기로만 보였는데, 어느덧 성인이 되서 다시 읽어보는 이야기에서는 한 젊은
청년의 성장기 뿐만 아니라, 인간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작게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어리고 미숙한
모습에서 성인으로의 탈바꿈이 되고 있는 성장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독일의 전쟁과도 맞물려 이야기 속에서도 세상의 변혁에 대한
장면이 표현되고 있다. 실제 유럽의 전쟁 속에서 이야기 속 세상을 깨고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 전쟁을 미화하고
지원하는 듯 다분히 파괴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기도 하기에 독일의 유럽과 세계를 화염에 휘말리게 하는 전쟁의 정당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야기 끝에 별지로 첨부된
<헤르만 헤세> 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보면, 오히려 반전론자로 현실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기에 자국으로 부터 심한 질타와 오명까지 받았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해설 속 에서도 세상을 파괴하고 세상을
갱생한다는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정당성이 아닌, 자아를 깨치고 내면의 자가 인식을 설립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직접적으로 표현 되는 폭력적인 표현과 내용에 대해서는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깊은 은유적 모습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사춘기 시절의 '싱클레어'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서, 악의 근원이라 여겼던 불량 학생에게 시달림도 당하고 또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탈의 행위들을 하면서 그 일탈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했기에, 어린 시절에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의 갇혀진 도덕성 안에서 대리 만족을 꾀하지 않았나 싶다.
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성과 세상을 알고 나서 다시 읽게 되는 이야기에서 또다른 감흥과 울림을 받는 이야기는 역시 다시 읽어도 명작은 여전히 명작임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친절한 해설과 주석들로 다시 읽는
[데미안]의 새로운 해석과 이해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기회 였었다. 다만, 페이지 하단에 놓인 주석들은 너무
작고 얇은 폰트로 쓰여져 있어서 한 눈에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지만, 단순한 뜻 설명 외헤 의미의 해석과 자세한 주변 배경까지 설명을 하고 있기에
전보다 더 읽기 수월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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