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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너무나 많은 볼거리가 자정이 넘은
꼭두 새벽에도 하루 종일 쉼없이 TV 수많은 채널에서 홍수 댐 방류하듯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예전 흑백과 컬러 TV 시대를 모두 겪어본
세대로서, 공중파 몇 채널 밖에 없던 시절에...
12시 땡 자정을 알리는 종을 치면 서서히
애국가와 함께 모든 방송들은 끝을 내고, 기하학적인 도형 이미지가 볼록한 뚱땡이 브라운관 화면을 꽉 채우면서 귀청 따가운 "삐~~~~" 기계음만
내뿜었었다. TV를 절대 안끄고는 못베기게 만들려던 방송사의 고약한 친절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깜빡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전원을 끄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음악도 보는
음악' 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시대에 살면서, 귀로 느끼는 감성의 정도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듯 하다. 우리가 책을 읽듯이,
때로는 귀로도 들으며 그림을 상상하게 되는 라디오의 매력이 종종 그리워 진다.
학창 시절 늦은 시각
'별밤'을 들으며 청취자들이 옆서로 보내온 사연들에 함께 공감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노래 선물해주려고 라디오
DJ의 노래 제목 소개 목소리가 겹치지 않게 카세트 데크의 녹음 버튼 누르기를 수차례 반복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는 삼십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유명 라디오 방송들의 작가로의 활동을 해온 '김미라' 작가의 에세이 집이다.

라디오 방송으로 흘러나왔을 글들을 이번에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닌, 이렇게 책으로, 마음으로
읽으면서 그 옛날의 향수도 느껴지고,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던 조용하던 그 시절의 어두운 밤 아래 라디오 속에서 흘러나오는 삶과 사랑의 이야기에 나 혼자만이 오롯이 함께 하기에 울컥
울컥 가슴 떨리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중략...
지혜로운 노년은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준 선물이다. '노년의 수첩'에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할 목록이 적혀 있듯 청춘의 수첩에는 세월이 가기전에
가까이 해야 할 것의 목록이 적히기를 소망한다. p41
연인과의 접점이 없는 사랑, 자식과 부모님의
사랑의 시선들과 우리가 세월의 흔적을 남기면서 지나오게 되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차분한 밤의 목소리가 그려지듯이 참 정갈하고 포근하게 다가
온다.
때로는 주변의 먼 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들,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등,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주변인물들과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상념들에 대해서 강하거나
자극적인 단어 없이 소탈하게 마음을 흔드는 매력의 글들이다.

...중략...
강함과 약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젊어서는 강인함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세월이 흐르면 여리고 약해지는 것으로 당신들을 보호하신다. 자식들과
좀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부모님의 주름살은 더 깊어지고, 자식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어서 눈물이 더 많아진 건지도
모른다....p111
특별한 깨우침을 주거나 새로운 시선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여 볼 만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저 우리네 사는 이야기 그리고 마음에는 늘 담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어색한
이야기들을 등을 소주병 앞에 두고 토닥이며 함께 삶을 나누는 가슴에 남는 좋은 글들이다.
저자가 본문 중에 인용한 '다른 사람의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걸어봐야 그 사람을 안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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