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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ㅣ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도서는,
스위스 출신의 현대 시인이자 대표 작가인
로베르트 발저의 시와 소설 단편, 에세이 중에서
'숲'을 테마로 한 글을 모아서 새롭게 엮은 산문 선집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으로, 무더운 여름에
여행 가는 어느 곳이나 가볍게 배낭에 넣고 가면서
시원한 숲속 푸르른 여행을 하기 쉬운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현대 문학에 크게 영향을 준
섬세하고 실험적인 문체로 유명한 작가라고 들었다.
이번에 새롭게 발매한 도서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 중
'숲'이라는 모티브를 모았을 정도로, 유독 숲을 바라보는
그 만의 시선이 무척 다채로운 점도 흥미로웠다.
각 챕터 말미에는 해당 작품이 발표되었던 연도가
표기가 되어 있었는데, 1900년도 초기에 대부분
쓰인 작품으로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다.
해당 문장들 옆으로 삽화나 책 표지 같기도 하고
자연을 그린 유화 같은 아름다운 그림도 삽입이
되어 있었는데, 작품 연도와 함께 화가의 이름이
'카를 발저'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로베르트 발저의 형으로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연극 무대를 비롯해서 다양한
시각 예술 분야에서 작업을 했고, 동생의 글에 책 표지나
삽화 등 그림을 그려준 예술가 집안임을 알 수 있었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서의 산책길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기분 좋고 마음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저자는 그러한 모습을 어쩜 이렇게 공감 가득하게
글로서 표현을 할 수 있었는지 너무나 신기하기도 했다.
커다란 숲의 공간뿐 아니라, 숲을 지탱하고
그 안에서 꼬물거리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을
하나하나 감성적으로 소개하고 공감을 하고 있었다.
'바위는 뻣뻣하게 굳어 있지만, 숲은 살아 있다.
숲은 숨 쉬고, 빨아들이고, 흐른다.
숲은 깊이 흐르는 호수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흐르는 강이다. 숲은 실체다. 전체를 이루는
요소보다는 실체에 한층 가깝다.... '
_P. 18
우리 삶을 감싸안으며 생명력 넘치는 숲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고, 척박한 땅으로 변모하면서도
바위가 되고 쉼 없이 순환되는 모습들도 그리면서
마치 나무숲 사이를 누비는 요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핏 그냥 스쳐 지나갈 법한 작고 사소한 것들도,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서 감성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묘한 매력이 넘치는 숲속 산책길과 같은 청량한 글이었다.
스위스도 뚜렷한 사계절이 있고, 특히 자연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라기이게, 로베르트 발저의
숲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채롭게 표현이 되고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때별로 각기 다르게 보이는
풍경의 모습뿐 아니라, 계절별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인 문장들은 서정적인 문체를 한껏 끌어올렸다.
어쩌면 황량하고 쓸쓸하게만 여길 수 있는 겨울의
풍경조차도, 백발노인의 멋스러움으로 강조하여
그 의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기에 더욱 신선했다!
그저 한가롭고 힐링이 되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만
여길 수 있던 하나의 풍경을, 생명을 지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상생의 모습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는 로베르트 발저의 글에 대해서 엮은이가
간단하게 평론을 달고, 각 문장의 해석을 달아 두었다.
굳이 그 해설을 읽지 않고도, 저자가 살아 있는 문체로
표현한 숲에 대한 다양한 얼굴과 그 숨결을 그저
마음으로 공유하고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