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방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평점 :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상 수상을 안겨주었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인 이방인
학창 시절 세계 문학을 탐닉할 때 읽어보았기에,
이번에 새로 출간된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읽어 보면서 그 스토리가 어느 정도 떠올랐다.
어릴 적 읽어 보았던 이방인 소설에 대한 기억은,
한 남성이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재판에서
별다른 반박 없이 사형 선고에 억울함을
혼자 삭히는 그런 내용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야기 전개 중에서 커다란 사건은 있었지만
주인공 혼자 독백하고 사색하는 내용인데다가,
대체적으로 너무 간결하게 전개되었고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흐름조차 없었던 기억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노벨상을 받았고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소설인지는 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서 이번에 다시 한번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이방인을 읽어보면서, 어린 시절 처음 접했던
그저 이야기의 줄거리만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가 전하고 싶던 은유적인 표현과
사상에 대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나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안에는 소설뿐 아니라
알베르 카뮈에 대한 소개와 작가 연보, 그리고
저자의 작업 노트와 미국판에 붙였던 서문도 함께
수록되어 있기에 20세기 문학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방인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했던 옮긴이의 말도
서문에 소개하고 있는데, 처음 초판본을 번역했을
당시의 이야기와 6년 후에 번역 개정판을 이번에
다시 출간하면서 알베르 카뮈의 문체를 더욱 온전하게
옮기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이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아니라, 그 글을 구성하고 있는 문체와 단어 속에
담겨있는 의미 하나하나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삶과 죽음의 막막함, 고정관념과 기성 질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카뮈의 『이방인』을,
청년의 욕망과 열정, 젊음의 순수성과
염결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는 것이 좋을 성싶다."
_P. 17
수십 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과 책을 읽어오며
다시 한번 번역을 맡은 프랑스어과 전공 교수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방인의 해석과 깊이가
결코 단순하지 않기에 다른 나라의 소설을
우리 말로 옮겨서 그 감성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서문에서 카뮈라는 한 인간의 배경 스토리와
그가 전하는 해설을 들어보고 읽어보니깐
훨씬 더 이야기의 초점을 제대로 잡아 볼 수 있었다.
20세기 부조리의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칭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과연 그가 말하는
기성 질서와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고 난 후에 조금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시작을 하는 이방인 소설에서, 옮긴이는 원문에 소개된
단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서 어머니라고 표기를
해야 하나? 엄마라는 조금 소아적인 명칭으로 옮겨야
할까?부터 엄청난 고민을 하게 했다고 한다.
과연 카뮈가 전하는 문체의 의미를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만큼 단순한 이야기의 전개 과정보다도
주인공 뫼르소의 성격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심정의
변화 등을 간결한 문체 속에서 파악할 수 있기에
프랑스 원어의 문장을 조금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 본문 중에는 또다시 정황상 엄마가 아닌
어머니라는 명칭으로 쓰면서 조금 더 상황에 맞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세세한 번역이 돋보였다.
그리고 조금 그 뜻이 복합적인 부분인 경우에는
역자가 본문 아래에 주석을 달아 놓았기에,
다시 한번 그 해석을 적절히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이방인의 기본 줄거리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드리고 혼자서 생활 중이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고 마렝고에 도착을
해서 홀로 남은 자식으로 장례 절차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시종일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모습 없이 무심하게 그녀를 보내고,
그다음 날에는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처럼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의 아파트 이웃인 레몽과 친구들의 모임에서
우발적인 권총 발사로 아랍인을 살해하게 되고
그는 감옥에 갇힌 채 살인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방인 소설은 170여 페이지 정도로 그렇게
긴 장편 소설은 아니었는데, 뫼로소가 사람을 살해한
커다란 사건 역시 크게 격정적인 표현 없이
하늘과 태양 바다의 자연 묘사와 함께 바람이
흘러가듯이 부드럽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살인이라는 사건 모두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과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흔치 않은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새겨놓은 잣대와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표현을 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가 이 소설에서의 쟁점인 듯싶다.
더구나 종교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사제의
시선에서는, 너무나 강압적인 세뇌에 대해서
직접적인 반발을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가 싶다.
내가 믿고 있고 주변의 다수가 따르고 있는
하나의 규칙이 과연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는 그에 반하는 사람을 적대시할 수 있는
권리마저 내가 행사할 수 있을지는 다시 한번
곰곰하게 생각해 볼 문제일 듯싶다.
사실 어려운 정치 문제나 혹은 사회 문제에서도
이렇게 일반화의 오류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방인으로 부조리에 대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저자의 의지를 대신하고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종종 민주주의 의사 결정 중에서,
다수의 공감과 표를 획득해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 역시 종종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던
과학적 사실도 나중에 그 오류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사회 구성원 속에서 이루어진 관습과 생활 속에서
어느 하나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알베르 카위의
이방인은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사색과 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모습과의 괴리감을 문장 하나하나에서
비교해 보면서 그 의미를 쫓아가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문장들을 해석하기가 때로는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에서는 접속사 하나까지 고심해서
번역을 했다고 하기에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주인공의 바라보는 세상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본문 중간중간 태양의 이글거림이 느껴지는
화려한 컬러의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기에,
훨씬 더 입체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역자의 해제 설명을
달아 놓아서 조금 더 카뮈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데
문학 개론 수업을 듣는 듯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