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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기린 편지 - 아동문학가 이수경의 동화 같은 일상 이야기
이수경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1월
평점 :
꽃기린 편지 에세이는 아동문학가인 이수경 작가가
가족과 주변 이웃들과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마음과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랑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저자의 이름이었는데,
2002년서울이야기 수필공모에 최우수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아동문학상을 받은 만큼 작품집도 꽤 많았다.
이번 꽃기린 편지 에세이를 접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쉽고 가벼운 문체로 쓰인 편한 글로만 알았었다.
처음 예상했던 기대와는 달리 중년의 엄마이자 평범한
아파트 주민으로 살면서, 도심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정감 어린 따뜻한 울림으로 풀어놓고 있었다.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우리 일상이 점점 더 각박해져가고 있는 현실인데,
작은 선행이 점점 더 커지면서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선순환의 모습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곳도
여전히 살만하고 정이 넘칠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며
만나게 된 어르신의 사연, 아파트 상가 앞에서
작은 좌판을 깔아 놓고 나물을 파는 할머니의 이야기,
잘못 배달된 택배 기사와의 일화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정말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특별할 일 없는 뻔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작은 선행이 이렇게나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훈훈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조금은 낯설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곳곳에 사용해서 마치 시구를 보듯이
문장들이 수려하고 훨씬 깊이 있는 모습이었다.
책의 제목인 꽃기린 편지 역시 여러 에피 중 이웃이
공동 현관에 내놓은 화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따뜻한 울림을 주는 여러 에피소드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본인의 몸도 편치 않은 상황에서 마치
동네 홍반장이나 원더우먼처럼 손을 걷고 옳은 일에
나서는 저자의 오지랖 같은 모습에 응원을 건네게 된다.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면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지만, 누구라도 쉽게 먼저
나서기란 참 쉽지 않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듯싶다.
특별한 의무감이나 직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그저 내 이웃, 내 자식 같은 사람, 내 부모님 같은
모습에 크지는 않지만 작은 손길 하나를 내밀었더니
나에게도 긍정의 힘이 돌아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말 용어를 넣어서 소개하는
여러 내용 중에, '나이 먹은 소년'이라는
에피소드에서 가장 먼저 진지리꼽재기라는
처음 보는 단어가 등장을 하고, 이어서 '거위영장'
역시 낯선 용어라서 쉽게 알 수는 없었다.
책의 말미에 '본문에 쓰인 우리말 모음'이라는
색인을 담아 놓고 있어서, *가 붙어있는
우리말 풀이를 상세하게 담아 놓고 있었다.
전체 문장의 문맥을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다시 한번 우리말의 뜻을
제대로 찾아보면서 읽다 보면 조금 더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입듯이 정겹게 다가오는 글이었다~!
저자처럼 이웃의 불편함을 먼저 살피고 도움을
주려는 선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더 큰소리를 내는 빌런들도 있을 것이다.
산책을 나섰던 저자는 정강이 부근에서 대형견의
으르렁 거림에 깜짝 놀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견주는
오히려 자기 개가 더 겁먹었다면서 험한 말까지
내뱉었다고 하는데, 며칠 뒤에는 자신도 더 큰 개에게
똑같이 두려움을 느꼈다면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대부분 자기 입장에서만 상황을 인지하게 되지만,
한 번만 다시 상대방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조금씩 양보와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꽃기린 편지 속 이야기들은 그렇게 남에게
해코지를 당해서 힘들었다는 내용보다는,
내가 건넨 작은 선행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서로의 담장을 무너뜨리는 훈훈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파트 아래층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러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산재로 일을 못 하게 된 남편 대신에
아파트 청소를 하러 온 새댁의 작업 소리였기에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오해는 풀렸다고 한다.
그 이후에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서로의 아픔을
조금씩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만으로도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저자의 친정 엄마 역시 동네에서 소문난 오지랖
아줌마였다고 한다. 그렇게 옳은 일을 바르게 찾고
선행을 해왔기에 자식들에게도 억지 훈화를 하지
않아도 바로 산교육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저자의 자녀 역시, 병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아빠 병간호를 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그렇게 아끼던 레고 블록을 모두 선물했다고 한다.
꽃기린 편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라
더욱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저자처럼 억울하거나 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나누어 주고 선뜻 내 자리를 내줄 수 있을까?
한 번쯤은 고민도 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을 직접 보았듯이, 내가
건넨 작은 선의는 다시 내게 돌아오고 또 그렇게
연결되면서 점점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어 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