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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꽤 오래전에 <생각이 나서>라는 에세이를 처음
접했었는데, 꽤나 독특한 문체로 우리 일상의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냈었던
내용들이 꽤 오래도록 가슴과 기억에 남아있었다.
저자의 신작인 달 위의 낱말들 에세이는. 조금 다른
두 가지 콘셉트로 나뉘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기도 하고, 주변의 사물들과의
애틋한 추억과 대담을 나누는 색다른 구성이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 장르라고 하면, 저자의
생각을 마치 일기를 쓰듯이 편하게 써 내려간 글로
독자들도 편하게 공감을 하는 스타일의 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그런 도서가 대부분이었다.
'황경신의 이야기노트'라는 부제의 내용처럼,
마치 시와 에세이 혹은 산문 이렇게 장르를
오가는 듯 장르에 구애받지 않게 다양한 전개로,
조금 색다른 진행 방식의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달 위의 낱말들 1장은 <단어의 중력>이라는
소주제로, 내리다, 찾다, 고치다, 미래, 행복 등
동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낱말까지,
우리 주변에 익숙한 단어를 이용해서 저자가 느꼈던
감성과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해당 낱말에 대한
의미도 해석하면서 깊이 있는 사색의 장을 만들어 준다.
'쫓다'라는 주제의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15년 전 만났던 인연을 추억으로 남기면서
다시금 여름의 기억을 쫓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백하면서도 사색 넘치는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중략)...
완벽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너는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익숙한 연인의
눈빛이 까마득하게 낯설어지는 순간, 타인의
존재에 반응하는 너의 세포들이 두려워지는 순간이
문득문득 너를 찾아왔다. 너는 자주 체했고
그때마다 시간의 바늘은 힘차게 전진했다.
그 또한 지나갈 것임을 네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_P 31
특히나 독자에게 저자의 이야기를 감정이입하듯이,
본인의 스토리를 '너'라는 2인칭으로 지칭하면서
객관화해서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에세이의 본질과는 사뭇 다른 듯 더욱 독특했다.
룸메이트와 지내던 원룸에서의 이야기며,
방콕, 스페인 등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작은 일상의 모습에서 서있는 저자의
모습을 멀리서 함께 지켜보는 듯 담담하게 읽게 된다.
무언가 깊은 속내를 강하게 어필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렇게 2인칭으로 너에게 하는 말로 한 발자국 뒤에서
물러나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지나치게
감정에만 빠지지는 않고 조금은 차분해지는 듯했다.

달 위의 낱말들 1장에서는 저자가 주제로 삼은
단어의 한자 뜻풀이 속에 담겨있는 의미와,
또는 동일 단어의 언어적 유희도 섞어가면서
그저 경험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접근도 꽤 흥미롭게 연결되는 감성 에세이였다.
그리고 2장에 들어서는 또 한차례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문체 역시 전혀 다르게 바뀌었기에
마치 2권의 서로 다른 에세이를 읽는 듯했다.
낱말의 의미를 토대로 진행했던 1장에서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서술하면서, 단어의
뜻에 맞추어 가는 나의 모습도 비교해 보고 나름 사색을
많이 하게 되고 조금은 되새김질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달 위의 낱말들 2장에서는 <사물의 노력>이라는
소주제로, 저자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의
물건들과 기억에 남는 생활 속 사물들 속에서 함께
웃고, 울고, 지인들과 나누었던 단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시점 역시 저자 본인이 '나'가 되어서,
따뜻한 느낌의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친숙한 일기 에세이 스타일로 진행되고 있다.
집에 전화가 없던 어린 시절에서 지금은 아이폰을
그래도 몇 번씩 바꾸어 가며 손에 쥐고 살아가야 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낱 사물에 불과한 물건이었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애틋함을 소소하게 들어 볼 수 있었다.
저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집에 피아노가 없기에 바이엘 교재에 들어있던
종이 피아노 위에서 손가락 연습했던 이야기에 정말 깊이
공감이 가면서 그 시절로 타임머신 여행을 떠난 듯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기형도 시인과의
선후배 사이로, 재미있던 일화를 소개하던 내용도
너무 반갑게 들어 볼 수 있는 감성 넘치는 에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