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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그리다
박상천 지음 / 나무발전소 / 2022년 5월
평점 :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살던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면 그 허망함은 비할 바 없을 것이다.
그녀를 그리다 시집은, 저자가 급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후 10년 동안 그 그리움을
담아서 적었던 시구들을 모아서 출간했다고 한다.
그녀를 그리다 시집 안에 수록된 시는 총 40편으로
그렇게 많은 편 수는 아니지만, 아내를 그리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슬픔을 담아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홀로된 삶을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중략)...
이제 나 혼자 메모지를 손에 쥐고
거대한 마트 안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문득 앞서가던 당신이 보이지 않아
난 갑자기 멍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오른쪽으로 돌면 당신이 있을까,
물건을 고르고 있는 당신을 지나쳐 온 건 아닐까,
자꾸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지만
유기농 야채코너에도, 정육 코너에도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_P. 030
대부분의 시구 내용을 보면,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은유적인 글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문체와 어휘로 담백하게 써 내려갔기에 개인적으로는
시집이라는 느낌보다는 축소된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함께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하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그렇게 곁을 지켰던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욱 절절하게 전달이 되는 듯하다.
30년을 함께 부부로 살아온 세월 이후에 갑자기
곁은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챙겨온 저자는
그 이후 그녀의 빈자리 10년 하루하루 일상을
편지처럼 전하기도 하고 일기처럼 소탈하게 적고 있다.
평소에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언제고 내 곁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큰 공허함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함께 병원 진료도 가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늘 같이하던 평범한 일상뿐 아니라, 때로는
별것 아닌 손톱 깎는 방식이 서로 다른 모습조차
그리워지는 저자의 애달픔이 가득 보였다.
...(중략)...
그런데 이제 나는 가끔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터벅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문득 당신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멀리서 들리는 당신 발자국 소리로
오는 거 알았어.
_P. 076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지나온 10년의 세월을
마지막으로 그 슬픔을 조금은 닫아두려는 의미로,
저자는 그녀를 그리다 시집을 냈다고 밝히고 있다.
시의 말미에는 격하게 싸우면서 10년을 보내고
맘 편한 친구로 20년을 살았다면서 지내온
삶이었기에, 지금은 그냥 멀리 있는 친구처럼
안녕을 고하려 한다는 솔직한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중략)...
잘 지내.
가끔 찔레꽃, 능소화, 수국으로
당신이 보낸 소식 들으며
나도 그렇게 지내 볼게 안녕.
_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