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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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멘토 열풍은 힐링 트렌드란 순풍에 힘입어 광풍 수준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고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 특히 혼란스러워하는 청년들에게 이들의 강연, 책 등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모든 현상에 명과 암이 있듯이, 멘토 열풍은 기호 3번 안철수의 실망감과 더불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중고서점에선 그의 책을 매입하지 않을 정도니 인기와 비례해 실망도 제법 컸나보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란 희대의 꼰대 멘트를 남긴 김난도의 뒤를 이어 안철수도 꺾였다. '인문학'이란 새로운 소스를 벗삼아 달콤한 말로 책과 강연을 팔려는 이들도 줄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덟 단어>는 비슷한듯 비슷하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주시되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랍니다. 인생은 강의 몇 번, 책 몇 권으로 변하지 않으니까요."

<여덟 단어>는 카피라이터 박웅현의 강의 8개를 모아둔 책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팁 정도로 전달하려는 그의 인사말이 오히려 신뢰가 가더라. 그는 자신의 딸에게 알려줬듯이 "첫째가 인생에 공짜는 없다는 것, 둘째가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것, 셋째가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3가지 팁을 바탕으로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맹신하지 말고 인생에 정답과 오답이 공존한다는 걸 기억하란 메시지를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소개한다.

"오빤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나름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들의 관심을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업인 광고인도 부인에겐 타박을 듣곤 한다. 파마를 먼저 마치고 여유롭게 앉아서 이 책을 읽던 도중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했다. 어쩔 수 없는 남성과 여성이란 종족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는 점에서 한계와 발전 가능성을 엿보았다. '회의를 하기 전 커피 2잔을 마신다'란 명제를 대하는 남녀 차이의 예시를 보니 더욱 와닿더라. 여자는 시간은 오후 다섯 시라 모두 약간 시장하지만 저녁 식사를 앞두고 뭔가를 먹기 부담스러워 시키지 않은 머핀 하나를 같이 사온다. 두 사람의 허기를 채우지만 과하지 않은 분량을 '생각'해낸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남자는 정말 마실 것, '커피'만 사온다. 끝.

이런 기막힌 예시를 보면 상대를 배려하고 센스있게 행동하는 능력 자체가 여성이 뛰어나다. (반대로 남성은 일반적으로 집중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단순무식으로 치환될 수도 있지만.) 내가 상대를 답답하게 하는 일을 복기해보면 대다수가 곧이곧대로, 있는 그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보다 거듭된 실수가 더 많지만. 설거지를 부탁하면 정말 유리잔을 닦고 끝이 아니라 주변에 생긴 물때를 닦고, 마른 식기를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마무리해야한다. 샤워기 헤드를 바꾸면 기존 헤드는 버리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따가움, 녹물, 고장에 대비해 보관해두는 게 정답이다. 여전히 서툴고 어렵다. 하지만 단순히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해서는 결코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판단을 내리자.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고. 아직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나름 값비싼 대가를 주고 얻어낸 삶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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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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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헤어진 전 남편이 보낸 소설 초고. 부족한 게 뭔지 찾아내 알려달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보며 여행의 동반자로 <토니와 수잔>을 낙점했다. 톰 포드 감독의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로 각색된 이 소설은 표지가 영화 포스터였다. 미스테리한 표정의 여성 얼굴에 겹쳐진 낯선 남자의 실루엣.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의 명품 연기로 호평을 이어가는 영화처럼 책도 촘촘한 이야기 구조로 가득했다. 껍데기를 걷어내 보니 더욱 글에 어울리는 표지가 나타났다. TONY, SUSAN의 이름이 찢어진 원고더미에 적혀있는데, 이 스릴러 소설과 무척 어울리는 차가운 느낌이더라. 액자식 소설인 <토니와 수잔>은 주인공 수잔의 시점과 수잔이 읽는 소설 '녹터널 애미널스'의 토니 이야기로 이어진다. 평범한 주부로 육아에 지쳐가는 수잔은 전 남편 에드워드가 보내온 소설 초고를 틈틈이 읽는다. 그녀는 작가가 되겠다며 로스쿨을 그만둔 에드워드의 작품에 매번 신랄한 비판을 했다. 본인도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는 그녀는 읽자마자 뭔가 다른 걸 느꼈다. 제법 그럴싸한 몰입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읽으며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글에 빠져들었다. 간통으로 심장 전문의 아놀드와 재혼한 그녀는 묘한 궁금증과 두려움으로 책장을 넘긴다.

 

 

“어디 가는데?”
“메인에 가려고 하던 참이요. 그냥 메인에 가던 중이라고.”
“메인에 뭐가 있는데?”
토니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를 괴롭히는 덩치 크고 심술궂은 아이들에게 저항하는 소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가 토니를 향해 걸어왔다. “메인에 뭐가 있냐고 내가 물었잖아?”
그 남자가 바짝 다가오자 양파와 달콤한 술 냄새 같은 게 풍겼다. 그는 토니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마르긴 했지만, 이 남자가 그를 파괴할 수 있을 거라는 걸 토니는 알고 있었다.
--- p.39

 

 

소설 속 주인공은 평범한 수학과 교수 토니다.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내와 딸과 함께 별장으로 향하다가 불량배 무리와 실갱이가 벌어진다. 처음엔 사소한 보복운전, 난폭운전인줄 알았지만, 점점 일이 커졌다. 기어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납치해 가버렸고, 토니는 홀로 버려진다. 겨우 걷고 또 걸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소식은 강간, 살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단어였다. 무기력하게 제대로된 저항도 못하고 소심하게 주저앉은 토니는 자책한다. 혼자 버려진 채 불량배들을 디사 만났지만 당당하게 나서기는 커녕 몰래 숨어 그들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온몸을 지배하던 두려움, 그리고 나약함은 수치심이 되어 다시 한번 그를 괴롭혔다. 악당 레이를 붙잡기 위해 시한부 형사가 도움을 주지만 그는 여전히 폭력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슬픈 현실 속에도 새로운 사랑에 설레하며, 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결국 공권력도 포기한 레이를 눈앞에 붙잡아, 총까지 손에 쥐고 있지만 그는 긴장한 채 땀을 흘린다.

 

 

토니의 세계는 수잔의 세계와 닮았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폭력만 빼면. 그런데 그 폭력 때문에 둘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런 불운을 목격하도록 유도돼서 내가 얻는 게 뭘까? 수잔은 궁금했다. 이 소설은 토니의 인생과 내 인생 사이의 차이를 확대시키는 걸까, 아니면 우리 둘을 합치는 걸까? 이건 날 위협하는 걸까, 아니면 달래주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갔지만 잠시 독서를 중단했는데도 아무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 p.335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수잔에 빙의되어 책장을 넘겼다. 그녀는 책에 몰입할 수록 서서히 이야기에 푹 빠져든채 미묘한 감정에 휩쌓였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다는 데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고, 이런 감정의 고리를 점점 커져 현실에도 파장을 미쳤다. 잔잔하고 지루한 일상에 수잔은 남편 아놀드가 출장을 간 사이에 독서로 권태를 해소한다. 그리고 독서를 마친 순간 에드워드의 길고 긴 복수는 성공했단 걸 느꼈다. 소설 속 수잔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첫 등장에 다들 매춘부로 오해할 정도로 답답하고 싼티나는 캐릭터로 출연시킨 것만 보더라도. 상처가 곪아서 눌러붙었을 시간이 흘러서도 자신의 글을 무시하던 수잔에게 에드워드는 스릴러물로 복수한다. 나는 이만큼이나 성장했고, 당신이 무시하던 허황된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고. '그녀는 그에게 최고의 비평가'라며 비꼬는듯한 찬사를 보낸 에드워드는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수잔은 궁금증에 가득했고, 이혼한 진짜 이유가 뭐였는지 계속 곱씹게 되었으니.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자신이 쓴 비평을 봉투에 넣고 봉했다. 그때, 그가 그녀를 보러 오겠다고 전화하지 않았고, 그녀가 물어볼 수 없었던 모든 질문들, 예를 들면 왜 그녀에게 그 원고를 보냈고, 왜 그런 책을 쓰게 됐고, 그들이 이혼한 진짜 이유는 뭐였는지, 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른 그녀는 퍼뜩 꿈에서 깨어나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 p. 482
 

나는 글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타인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에는 아직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글을 온라인에 올리면서도 익명성이란 가면의 힘을 빌리고, 일기가 아닌 평범한 글도 꺼내기 멈칫거리곤 한다. 그렇기에 에드워드가 전 부인에게 소설을 보낸 건 엄청난 자신감과 확신에 가득찼던 거라고 짐작했다. 다만 그 인정의 욕구가 다른 방향으로 뿜어져 나와 복수로 결실을 맺었지만 말이다. 한편, 화를 내야할 때 내야한다는 것도 토니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폭력을 좋아하거나, 타인을 괴롭히며 쾌락을 느끼는 건 분명한 악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순종적이고 수동적으로 회피하는 자 역시 악인이다. 토니는 사고 이후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묘한 잔인함과 공격성을 드러낸다. 어찌나 찌질하고 구차해 보이던지. 힘든 상황을 탓하고 못된 상대를 탓하고 구차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건 약자의 변명일 뿐이다. 단호하고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때, 심지어 폭력을 써서라도 소중한 것을 지켜야하는 상황에서는 잔인함이 필요하다. 그건 잔인함이 아니라 용감함이라고 표현해야겠지만. 나는 힘든 상황에서 용기있게 맞서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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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 - 혼자라는 것을 잊게 해줄 쓸데없이 당돌한 생각들
김리뷰 지음, 노선경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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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김리뷰가 쓴 책을 3권째 다 읽었다. 2017 3월 현재 읽은 책 18권 중 3 16%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지분이다회사 일이 바쁘단 핑계로몸이 피곤하단 핑계로 책상 위에 앉아 책을 펼치는 시간이 줄어든 나에게는 김리뷰의 SNS 스타일 뻘글 모음집이 딱이었다페이스북을 옮겨놓은 듯한 <세상의 모든 리뷰>, 자전적인 이야기가 조금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담긴 <개구리가 우물을 기억할 때>의 딱 중간쯤 되는 이야기가 바로 <1인분의 삶>이었다기본적으로 외롭고 혼자인 것에 두렵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김리뷰의 짧은 에세이들은 '잉여로움'을 추구하는 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맞춤법에 대한 글을 쓰며 대놓고 '맛춤뻡'을 틀리는 자유분방함이나매너리즘에 빠져 '매너리즘'에 대해 휘갈겨 쓰는 건 역시 김리뷰다웠다. '의식의 흐름기법에 따라 술술혹은 맘대로 써내려간 에세이도 인상적이었지만 '불행'/'행복'을 나눠 쭉 적어둔 건 제법 흥미로웠다자기가 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모르는 세상에서 적어도 자신의 취향성격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느낀점을 쓰려다가 너무나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지금 그게 오히려 더 쉽지 않을 것 같아 나도 행복과 불행을 정리해보았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불행한 것들은 (피할 수 있다면피하고 싶어서.

 

<불행>

쌕쌕거리는 호흡에 잠 못이루는 것/메밀그리고 메밀/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속도 맞춰 먹는 일/그 자리에서 되도 않는 자랑에 비위 맞추며 리액션할 때/책임감없이 일을 떠넘기고 아몰랑하는 것/송년회 장기자랑 억지로 웃으며 할 때/당직근무를 서기 위해 나서는 현관문/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이 자꾸 늘어날 때/블루투스 연결했는데 갑자기 너무 큰 음량으로 라디오 잡음이 들릴 때/갑자기 타이어 펑크가 나서 수리를 맡기는 일/바쁘긴한데 보람이 없는 하루/이가 시리거나 이빨 사이에 낀 뭔가가 빠지지 않을 때/배가 나와서 몸이 무거워진 걸 느낄 때/내 게으름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쪘다고 시무룩할 때/발목이 돌아가서 퉁퉁 붓고 걷지 못할 때/오지랖과 참견/영어로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 때/내가 나서서 따져야하는데 자기합리화하는 일/당당할 일에 꿀먹은 벙어리가 될 때/박근혜 당선/포핸드가 자꾸 얼어붙어서 에러날 때/중요한 순간 더블폴트로 허무하게 무너질 때/오픈 찬스에서 자신없이 패스를 돌리거나 레이업 놓칠 때/땀나서 양복 셔츠가 흥건하게 젖을 때/피부트러블이 생겨서 온몸이 건조할 때/비오는날 진흙을 밟거나 양말이 젖을 때/지갑을 놓고 나온 걸 셔틀버스 타고 떠올릴 때/떨어진 펀드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상황을 모면하려 거짓말할 때/허겁지겁 허둥지둥 서두르다가 뭔가 빼먹을 때/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실망시킬 때/경기 종료 직전 수원이 동점골 혹은 역전골 먹는 걸 지켜볼 때/망언을 일삼는 꼰대들을 볼 때/곰팡이가 핀 벽지를 발견했을 때/졸리다면서 막상 침대에 누워서는 잠이 들지 않을 때/술먹고 필름이 끊겼을 때/그래서 남에게 민폐를 끼친 걸 뒤늦게 알 때/화장실 한편에 앉아서 자다가 비몽사몽 사무실로 걸어들어갈 때/퇴근 셔틀 버스를 아깝게 1분 차이로 놓치는 일/어린아이를 상대로한 범죄 뉴스를 들을 때/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그리고 내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때

 

<행복>

여행 떠나기 직전 북적거리는 공항/비오는 창가 바라보며 커피향 맡을 때/KTX 창가자리에서 바라보는 평화로운 시골/팟캐스트 들으며 반신욕/에버랜드 퍼레이드/극장골로 수원이 이길 때/승부차기 승리/(기억이 가물가물한)K리그 우승/여행 기념 레플리카와 마그넷/계란과 옥수수가 들어간 온갖 음식/어린시절 델몬트 병에 들어있던 보리차/퇴근길/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하고 찬물 샤워/호텔방의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디즈니와 픽사/NBA FINAL 시청하며 치킨 먹기/팥빙수/바쁘지만 나름 뿌듯하고 보람찬 하루/실수한 게 조용히 지나갈 때/집안 가전,가구로 채워넣기/청소하고 난 뒤 깔끔해진 집안/웰빙 먹고 하나로마트 산책 한 바퀴/엎드려서 자는 10분의 꿀잠/염기훈의 칼날 같은 크로스/얻어걸린 볼링 스트라이크/달달한 맥주/두피마사지/타이마사지/몰디브에서 모히또 하시기/서평영화감상문을 쓰고 싶게 만드는 명작/다이어리에 옮겨적고 싶은 명문/공만 깔끔하게 빼내는 나이스 태클/PS4 명작 타이틀 엔딩을 보는 순간/88쥬스 마시고 건강해지는 느낌/셔틀버스 안에서 보는 웹툰/온열매트에서 먹는 아이러브고구마/팩하고 난뒤 촉촉한 피부/당직 근무 마치고 만끽하는 오후의 여유로움/딱 적당히 취하고 집에 와서 먹는 아이스크림/사랑하는 사람과의 수다,애교사소한 일상 공유/낮잠/늦잠/밤잠/선선히 부는 봄바람/흩날리는 벚꽃/한강공원 캠핑/가족여행/첫 차 시동 거는 떨리는 순간/올블랙/소스에 찍어먹는 뜨거운 장어구이/하지만 운동복은 거의 다 파란색/아디다스/위닝하며 날리는 각종 개드립과 도발/각종 스포츠대회 출전수상/포토북 되돌려보기/어린 시절 사진 들춰보기/진전면의 푸른 하늘/적금 만기 후 붙은 약간의 이자/성과금/화성행궁의 여유로운 분위기/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며 대리여행 느끼기/막 찍었는데 잘생기게 나올 때/자전거타고 지날 때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화채 먹고 선풍기 앞에서 누워서 tv보기/테니스 코트에서 먹는 탕수육(부먹,찍먹 상관없음)/반가운 사람들만 있는 경조사 자리/우도 땅콩아이스크림/서브에이스/해리포터/셜록홈즈/생크림/오렌지에이드/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농담/아시시의 평화로운 공기/지르는 고음보다 감성적인 저음/눈길이 또 가는 광고문구/여행지에 누워서 여유롭게 읽는 책/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빨간책방/북콘서트/기발한 펀치라인으로 소름돋는 랩/(종교는 없지만대성당의 웅장함/철학/상큼미 넘치는 연예인/알콩달콩 애교/글쓰기/양꼬치와 칭따오/가족끼리 먹는 한우(직장 회식X)/칼퇴/90년대노래/김연우,성시경/백아연,악동뮤지션/이벤트/초콜릿(다크말고밀크)/온기가 전해지는 악수(땀말고)/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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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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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제목부터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책은 36세 외과의의 안타깝지만 고귀한 암투병기다. 하지만 단순한 암으로 고통받고 죽음에 굴복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희망'을 찾아 나서는 용기 있는 2년 간의 기록이다. 모든 질병, 죽음에 경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자 폴 칼라니티의 폐암 4기 판정은 너무나 아쉽고 슬프다. 그는 많은 이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의사'였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에 명예로운 직업이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 법이다. 그는 조금 덜 힘든 전공을 택하기 보다는 철저히 본인의 적성과 성취를 위해 신경외과를 택해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하루 열네 시간이 넘는 고된 일정이지만 신경외과 레지던트도 졸업을 1년 앞뒀고, 훌륭한 실력을 인정 받아 교수 자리도 고르고 있었다. 탄탄대로 장밋빛 인생은 그가 기계적인 수준으로 자주 고쳐냈던 암세포에 산산조각났다. 평범했던 일상은 엄청난 노력과 행운이 따라야하는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는 의사이자 환자였고,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는 죽음을 격렬히 거부하거나, 삶의 활력을 포기해버리지 않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섰다. 끝까지 다시 수술을 하기 위해 치료 방법을 고민 끝에 선택했고, 실제 온 힘을 다해 수술대 앞에 서기도 했다. 단순히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소명 의식'을 몸소 실천하는 그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학부시절 영문학을 전공하고 철학, 문학, 과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이과/문과로 나뉘어 철저히 다른 노선을 가는 한국과는 달리 그는 과학적으로 남은 삶을 계산하고 문학적으로 본인의 감정을 담담히 적어갔다. 삶과 죽음의 의미, 남은 자와 떠나는 자, 본인 직업에 대한 기억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또 곱씹어봤다. 그리고 그런 숭고한 결과물을  체력적인 부담이 큰 와중에도 쓰고 또 써내려갔다. 힘든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고마운 이들에 대한 표현을 잊지 않았던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에게 '글쓰기'가 희망의 증거였다면, 희망의 원천은 두말할 것 없이 '가족'이었다. 레지던트 생활을 같이 하는 아내와의 다툼으로 힘들어했지만 암 투병이 오히려 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을 선물했다. 둘 다 병에 대해 전문적으로 더욱 잘 알기에 서로를 배려하고, 조언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뿌리깊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마음은 아이를 통해 흔적을 남겼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아무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칼라니티는 죽음이 코앞에 왔다는 사실까진 이해했고 고민 끝에 새로운 생명을 낳기로 마음 먹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무척이나 이상적이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란히 서서 따뜻한 말은 전하고, 마지막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안아보고, 천천히 지나온 36년의 인생을 돌이켜 보는 순간은 감동적이고 경건했다. 출생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본인의 죽음은 조금이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만약 내 숨결이 바람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축복속에서 떠나고 싶단 욕심도 생기더라.
 
결국 그는 존엄하게 마지막 숨을 내뱉고 하늘로 떠났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마지막 챕터는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고 사랑했던 아내 수잔이 완성했다. 너무나 담담하고 결연하기에 더욱 슬픔은 극대화됐다. 슬픔의 깊이가 단순히 표현의 정도로 어림할 수 없단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남은 그를 가장 닮은 아이 XX에게 말하는 내용은 빠르게 읽을래야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을 무렵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근엄한 목소리와 푸근한 웃음을 동시에 지닌 큰 분이셨다. 신기하게도 명절 차례를 마치고 외가에 가면 덩치큰 장사들이 씨름판에서 힘을 겨루는 백두급, 한라급 경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직사각형의 'GOLDSTAR' TV에는 씨름만 나오기로 정해진 것처럼. 해가 다르게 조금씩 커가는 나를 보며 언제쯤 씨름해서 이길 수 있겠냐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외할아버지가 일어나지 못하셨다. 수척해진 볼과 어눌한 말투는 시간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 이런 거창한 수사가 떠오르지 않고 그냥 불쌍했다. 아파하는 외할아버지가 불쌍했고, 곁에서 수발하느라 고생하시는 외할머니도 불쌍했다. 매번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먼 외가에 찾아가지 못했지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큰맘먹고 내려갔다. 그리고 내 기억 속과 너무나 다른 외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리고 손을 주물러드렸다. 그게 내가 본 마지막 외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자랑스러웠고 존경스러운 분이 떠났다. 이번 설에 내려가지 않았더라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와 아쉬움만 남기지 말고 더 표현하고 다가가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에 남길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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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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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개떡같이 말해 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中, 문유석 판사




<쇼미더머니>, <힙합의 민족>, <언프리티 랩스타>. '힙합'이 가장 힙한 콘텐츠인 최근 대한민국에선 여기저기서 랩퍼가 튀어나온다. 제각기 다른 스타일로 랩을 빠르게 뱉어내면서도 단어의 끝을 맞추며 '라임'으로 서로의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되도 않는 혀를 굴리는 수많은 랩퍼 지망생보다 사법부 판사의 새해 첫 칼럼에서 무릎을 딱 쳤다.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라임. 개떡과 찰떡의 아름다운 콜라보 속에서 깊이 뿜어져 나오는 촌철살인의 메시지!  모든 꼰대들에게 날리는 의미심장한 글을 읽으며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권위적이라 상상되는 사법부의 판사라니. '글쓰기 좋아하는 부장판사'란 흥미로운 타이틀에 끌려 자연스레 그의 소설 <미스 함무라비>를 손에 쥐었다. 온갖 꼰대들이 억지로 구매를 강요하는 책들보다는 훨씬 궁금했고 기대됐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다. 그녀는 첫출근부터 지하철 성추행범을 직접 검거하고 주위 시선은 깡그리 무시하고 초미니 스커트 출근도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법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할머니의 억울한 사연에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한다. 서울중앙지법 44부 동료 임바른, 부장판사 한세상은 톡톡 튀는 그녀와 함께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일들을 우당탕탕 해쳐나간다. 제자를 성추행한 권위 있는 교수,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때리려다 흉기에 찔려 죽은 남편, 인턴사원에게 끈적한 카톡을 끊임없이 보낸 직장 상사. 실제 사건을 토대로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권위의 상징 '법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엿볼 수 있었다.

'#남혐_판사, #미스함무라비.' 주인공을 둘러싼 SNS의 유언비어를 보더라도 실제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전체가 너무나 톡톡 튀는 전형적인 캐릭터들 때문에 쉽게 빠져들진 못했다. 뭔가 2% 부족한 임바른과 박차오름 판사의 러브라인도 아쉬웠고, 극적인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이어보면 약간 심심한 맛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탄생배경을 들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 소설인듯 실화같은 실화가 아닌 이 책은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던 연작 콩트였다. 법정 영화나 드라마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법정 소설은 흔치 않은 현실에서 각 에피소드마다 들려주는 현직 판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척 흥미로웠다. 각각 독립적인 사건들을 판결해나가는 신비로운 법원의 일과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신기하고 재밌었다.

현대사가 녹아있는 법복의 역사, 60년대 이후에는 사라진 법봉(땅땅땅 치면서 판결을 내리는 건 모두 상상이었다!), 재판 기록을 넘기는 데 필수 도구인 '골무', 김영란법으로 가장 유명한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 실제 있는지 가장 궁금한 '전관예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판사'의 삶을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을 보면서는 선동에 취약한 민주주의의 허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첫 출근에 기대와 에너지로 넘치는 박차오름이 서서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은 <미생>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  대놓고 앞길을 막는 장벽이 너무나도 많은 게 헬조선 대한민국이다. 누구나 선망하고 인정하는 판사란 직업을 시작하지만 결국 조직의 경직성에 무릎꿇는 개인의 소신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소설이라기 보다는 수기라 느껴질 정도였다.

그저 돈을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 아닌 소명의식이 필요한 직업 중 하나가 판사라고 생각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과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판사라는 직업은 다름 아닌 타인의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권력'은 공정한 법의 잣대 위에 있으므로 자연스레 '책임'으로 치환된다. 요즘 사법부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나오자'는 '꼰대인 걸 알아서 꼰대가 아닌 꼰대' 문유석 판사의 말처럼 조금 더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귄위는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결국 법을 집행하는 역할인 판사의 뿌리는 그 법을 만드는 주권자인 국민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지나치는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요소들에 목소리를 높일 때 판사는 조금 더 공감이 갈만한 판결로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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