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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ㅣ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20여년 전 헤어진 전 남편이 보낸 소설 초고. 부족한 게 뭔지 찾아내 알려달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보며 여행의 동반자로 <토니와 수잔>을 낙점했다. 톰 포드 감독의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로 각색된 이 소설은 표지가 영화 포스터였다. 미스테리한 표정의 여성 얼굴에 겹쳐진 낯선 남자의 실루엣.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의 명품 연기로 호평을 이어가는 영화처럼 책도 촘촘한 이야기 구조로 가득했다. 껍데기를 걷어내 보니 더욱 글에 어울리는 표지가 나타났다. TONY, SUSAN의 이름이 찢어진 원고더미에 적혀있는데, 이 스릴러 소설과 무척 어울리는 차가운 느낌이더라. 액자식 소설인 <토니와 수잔>은 주인공 수잔의 시점과 수잔이 읽는 소설 '녹터널 애미널스'의 토니 이야기로 이어진다. 평범한 주부로 육아에 지쳐가는 수잔은 전 남편 에드워드가 보내온 소설 초고를 틈틈이 읽는다. 그녀는 작가가 되겠다며 로스쿨을 그만둔 에드워드의 작품에 매번 신랄한 비판을 했다. 본인도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는 그녀는 읽자마자 뭔가 다른 걸 느꼈다. 제법 그럴싸한 몰입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읽으며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글에 빠져들었다. 간통으로 심장 전문의 아놀드와 재혼한 그녀는 묘한 궁금증과 두려움으로 책장을 넘긴다.
“어디 가는데?”
“메인에 가려고 하던 참이요. 그냥 메인에 가던 중이라고.”
“메인에 뭐가 있는데?”
토니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를 괴롭히는 덩치 크고 심술궂은 아이들에게 저항하는 소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가 토니를 향해 걸어왔다. “메인에 뭐가 있냐고 내가 물었잖아?”
그 남자가 바짝 다가오자 양파와 달콤한 술 냄새 같은 게 풍겼다. 그는 토니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마르긴 했지만, 이 남자가 그를 파괴할 수 있을 거라는 걸 토니는 알고 있었다.
--- p.39
소설 속 주인공은 평범한 수학과 교수 토니다.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내와 딸과 함께 별장으로 향하다가 불량배 무리와 실갱이가 벌어진다. 처음엔 사소한 보복운전, 난폭운전인줄 알았지만, 점점 일이 커졌다. 기어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납치해 가버렸고, 토니는 홀로 버려진다. 겨우 걷고 또 걸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소식은 강간, 살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단어였다. 무기력하게 제대로된 저항도 못하고 소심하게 주저앉은 토니는 자책한다. 혼자 버려진 채 불량배들을 디사 만났지만 당당하게 나서기는 커녕 몰래 숨어 그들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온몸을 지배하던 두려움, 그리고 나약함은 수치심이 되어 다시 한번 그를 괴롭혔다. 악당 레이를 붙잡기 위해 시한부 형사가 도움을 주지만 그는 여전히 폭력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슬픈 현실 속에도 새로운 사랑에 설레하며, 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결국 공권력도 포기한 레이를 눈앞에 붙잡아, 총까지 손에 쥐고 있지만 그는 긴장한 채 땀을 흘린다.
토니의 세계는 수잔의 세계와 닮았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폭력만 빼면. 그런데 그 폭력 때문에 둘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런 불운을 목격하도록 유도돼서 내가 얻는 게 뭘까? 수잔은 궁금했다. 이 소설은 토니의 인생과 내 인생 사이의 차이를 확대시키는 걸까, 아니면 우리 둘을 합치는 걸까? 이건 날 위협하는 걸까, 아니면 달래주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갔지만 잠시 독서를 중단했는데도 아무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 p.335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수잔에 빙의되어 책장을 넘겼다. 그녀는 책에 몰입할 수록 서서히 이야기에 푹 빠져든채 미묘한 감정에 휩쌓였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다는 데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고, 이런 감정의 고리를 점점 커져 현실에도 파장을 미쳤다. 잔잔하고 지루한 일상에 수잔은 남편 아놀드가 출장을 간 사이에 독서로 권태를 해소한다. 그리고 독서를 마친 순간 에드워드의 길고 긴 복수는 성공했단 걸 느꼈다. 소설 속 수잔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첫 등장에 다들 매춘부로 오해할 정도로 답답하고 싼티나는 캐릭터로 출연시킨 것만 보더라도. 상처가 곪아서 눌러붙었을 시간이 흘러서도 자신의 글을 무시하던 수잔에게 에드워드는 스릴러물로 복수한다. 나는 이만큼이나 성장했고, 당신이 무시하던 허황된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고. '그녀는 그에게 최고의 비평가'라며 비꼬는듯한 찬사를 보낸 에드워드는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수잔은 궁금증에 가득했고, 이혼한 진짜 이유가 뭐였는지 계속 곱씹게 되었으니.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자신이 쓴 비평을 봉투에 넣고 봉했다. 그때, 그가 그녀를 보러 오겠다고 전화하지 않았고, 그녀가 물어볼 수 없었던 모든 질문들, 예를 들면 왜 그녀에게 그 원고를 보냈고, 왜 그런 책을 쓰게 됐고, 그들이 이혼한 진짜 이유는 뭐였는지, 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른 그녀는 퍼뜩 꿈에서 깨어나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 p. 482
나는 글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타인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에는 아직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글을 온라인에 올리면서도 익명성이란 가면의 힘을 빌리고, 일기가 아닌 평범한 글도 꺼내기 멈칫거리곤 한다. 그렇기에 에드워드가 전 부인에게 소설을 보낸 건 엄청난 자신감과 확신에 가득찼던 거라고 짐작했다. 다만 그 인정의 욕구가 다른 방향으로 뿜어져 나와 복수로 결실을 맺었지만 말이다. 한편, 화를 내야할 때 내야한다는 것도 토니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폭력을 좋아하거나, 타인을 괴롭히며 쾌락을 느끼는 건 분명한 악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순종적이고 수동적으로 회피하는 자 역시 악인이다. 토니는 사고 이후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묘한 잔인함과 공격성을 드러낸다. 어찌나 찌질하고 구차해 보이던지. 힘든 상황을 탓하고 못된 상대를 탓하고 구차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건 약자의 변명일 뿐이다. 단호하고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때, 심지어 폭력을 써서라도 소중한 것을 지켜야하는 상황에서는 잔인함이 필요하다. 그건 잔인함이 아니라 용감함이라고 표현해야겠지만. 나는 힘든 상황에서 용기있게 맞서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