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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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행책을 읽는 이유는 두가지다. 곧 떠날 여행지에 대한 생생한 후기나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훌륭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 혹은 절대 가보지 못할 곳, 아니면 여행이 너무나 아른거리지만 물리적으로 떠날 수 없을 때 대리만족을 하기 위해서. 씨네21 기자이자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맛깔나는 진행자 이다혜 작가의 <여이가 아니면 어디라도>는 그 둘을 함께 만족시키는 훌륭한 에세이였다. 시인 보들레르의 시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라는 시에서 채택한 책 제목이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기 위해 떠날 뿐이다.'라는 표지 밑부분의 짧은 한마디처럼 여행에 대한 태도, 그리고 여행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참 마음에 들고 공감이 가서 짧은 한강 여행 중에 순식간에 읽었다. 텐트를 치고 누워서 마음껏 여유를 즐기며, 블루투스에서 흘러나오는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를 BGM 삼아 책장을 넘겼다. 아무런 목적 없이, 실제 구글맵을 켜서 저자처럼 전세계 방방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2~3시간 남짓한 여행책 독서는 제법 탁월한 선택, 짧은 여행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졸리지 않으면 자지 않는다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바람을 느끼며 걷는다. … 고작 이런 걸 하기 위해 날 찾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지낸다바다를 보고 있거나 정원을 보고 있거나 그냥 잠만 자거나.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없이 살아본다. ‘혼자’ 여행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시간이 내게 소중해서다시간을 그냥 보내기 위해서. ---「목적이 없어서」중에서"

 

사실 여행책은 요즘 통 손이 가지 않았다올해만 싱가폴태국 등 뭐에 홀린듯 해외를 부쩍 많이 다니기도 했기에 크게 여행에 대한 기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최근 읽은 여행책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불평쟁이 할아버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제외하면.)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크게 유익하지 않는 출입국 팁이 담겨있는 딱딱한 여행 정보책혹은 아날로그 필터감성에 푹 빠진 아련한 사진이 잔뜩 담겨 있는 여행 사진 에세이 등이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게다가 묘하게 여행에 대한 자기 자랑과 마치 위험을 무릎쓰고 지도밖을 행군해야 진정한 의미의 여행나아가 자아성찰에 성공한다는 거창한 포부는 내 철학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돈 주고 여행 위험지를 가라고해도 가지 않을 것이다해외 여행 기준의 첫째도 안전둘째도 안전셋째는 축구인 (?) 내게는 위험 지역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여행기는 도저히 이해 못할 객기일 뿐이었다.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매일의 삶에서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 힘으로 돌파가 불가능하다하지만 여행지에서라면 더 부드럽고 가볍게여러 가지 변수를 받아들인다아마도 나는평상시에 대충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을 해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떠나는 찰나의 중독성에 대하여’ 14)

 

호주를 첫 해외여행으로 다녀오고일본 여행에는 도가 튼 이다혜 작가의 여행 목적은 무척 와닿았다뭔가 대단한 경험이나 자아 찾기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게 여행이다작가는 여행 중 실패와 실수를 전제에 두고 온전히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한다그녀의 여행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게 목적인 경우도 있고무언가 꽂힌 물건을 사기 위해맛있는 음식(예를 들면 내장요리라든가혹은 내장요리라든가.)을 먹기 위한 설레는 과정이다핫플레이스 어디는 꼭 가서 메뉴 A를 먹어야한다야경이 예쁘니깐 어디 스팟에서 꼭 몇시에 사진을 찍어야한다이런 류의 부담감은 오히려 여행을 스트레스로 변질되게 만들 수 있다당연히 낯선 곳이기에 예정대로 일이 되지 않더라도 평소보다 더 유연하고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여행의 매력이다.

 

 

"그냥 떠나고 싶어서 핑계를 만든다나는 너무 지쳤어잠깐 여기서 끊어갈 타이밍이라고 느낀다좋은 것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하고 싶어졌어아주 멀리까지 내다보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

신발이 발에 너무 잘 맞아서여권에 빈 칸이 많아서경주에 가본 지 오래되어서나이 들기 전에 뭐든 더 해보고 싶어서핸드폰 사진첩에 매일 먹는같은 음식 사진만 한가득이라서.

그냥 그러고 싶어서.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중에서"

 

중국에서 겨우 찾아낸 북한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묘한 분위기에 먹은 에피소드,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내장 요리 매니아를 위한 가이드, 헌책방, 서점, 옷 등 쇼핑에 관한 소소한 팁, 여행지에 빠질 수 없는 책에 대한 이야기, 출장은 여행으로 삼아야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등 짧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에 가득했다. 그중에도 특히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문'은 특히나 유용했다. '가족여행은 가족이 다함께 고립되는 과정'임을 밝히며 가족여행은 필연적으로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며 차분하게 조언한다. 화장실은 일단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라, 피곤해하는 사람이 생기면 무조건 커피숍이든 호텔이든 들어가서 쉬게 하라, 그리고 부모님의 다음 여행 질문에 영리하게 대답하는 법까지 마치 전수해져 내려오는 비기처럼 실려있다. (얹혀 있기의 기술 역시 유용했다. 호의가 계속되어 권리인줄 아는 민폐 손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심해야한다.)

 

구어체가 절묘하게 섞여있는 이다혜 작가의 에세이는 일단 읽기 쉽고 재밌다. 곳곳에 차분한 유머가 숨어있고, 여행에 대한 고민과 기대가 글에 묻어난다. (물론, 차분하지 않은 적나라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음란마귀들 같으니. 성당 제단 뒤편 벽에 그려졌다 해도 뭘 보고 있는가 말이다. '남자☆나체★대폭주☆꺄핫★모두가☆벗고★있다☆여기도★페니스☆저기도★페니스'같은 생각을 한 모양." 처럼.) 무엇보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에는 '떠남'의 소중함만큼이나 '돌아옴'에 대한 감사함이 섞여있는 여행책이다. 책 초반에 밝혔듯이 저자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주말여행이고 체류형 여행이나 세계일주와는 명확히 다른 색깔이다. 떠났을 때만 진정한 나를 찾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를 추구하는 모습에 대공감했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자를 무시하거나, 특이한 경험이 없으면 은연중에 무시하는 다른 종족으로 느껴지는 여행자와 달리 저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겸손한 태도다. 결국 작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여행의 소중함을 알고, 더욱 부지런히 또 열심히 낯선 곳으로, 혹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과 마주치는 곳으로 떠난다. 

 

지금도 두달 후에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 가깝지만 이국적이고 색다른 경험이 넘칠 것만 같은 곳이다. 겨우 크리스마스를 껴서 ('매우'라고 믿고싶지만) 제법 합리적인 가격에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하는 순간부터 설렘이 시작됐다. 사실 지금은 그리 와닿지가 않는 게 사실이다. 꼬박꼬박 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 출근 준비를 하고, 땀에 쩔어 만원 지하철에 낑겨서 퇴근을 하고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뻥 뚫린 도로에서 140km로 달리며 당직을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기에 흐뭇하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틈틈이 맛집이나 추천 여행지를 둘러보며 상상속의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여행을 많이 가면 사치스럽다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욕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해외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점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세다. 여행가는데 돈을 보태주지 않을 거면 비아냥과 충고는 그저 꼰대질, 훈장질에 불과하기에 쿨하게 씹어버리자. 내 돈, 내 시간을 들여서 하는 건데 눈치보지 말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설렘으로, 돌아온 후에는 여운을 안고 살아가는 게 일상이다. 그렇기에 여행에서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말고 하루하루 맞이하는 일상을 여행처럼 행복하게 보내야겠다. ''기가 ''복하기 위해 떠나는 게 바로 여행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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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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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분해졌다. 한층 담담해졌다. 웃음기는 살짝 빠졌고, 진지한 흐름이 천천히, 하지만 강력하게 밀려들어왔다. 마치 바깥에서 지켜볼 땐 잠잠해보이지만, 막상 올라서면 강력하게 몰아치는 여름철 파도처럼. 상실의 아픔을 다룬 소설들이 많아서일까?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20대의 삶을 함께 자라온 김애란이 5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깥은 여름>은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총 7개의 단편을 모은 신간이다. 수록작 가운데 제목을 골랐던 예전(<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과 달리 이번에는 본문 중 표현을 빌려왔다. 홀수를 참 좋아하는 작가는 묘하게 리듬감을 품고 있는 '바깥은 여름'이란 단어를 고심끝에 골랐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풍경의 쓸모」 中


편의점, 고시원 등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세상을 그렸던 작가에게 상실의 아픔을 그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목울대에 머문듯 입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기 쉽지 않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월호 사고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학생을 구하려다 물에 빠진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52개월된 아이 영우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입동>), 휴게소에서 처음 만난 정든 노견을과 이별하는 아이(<노찬성과 에반>), 흔히 볼 수 있는 이별하는 남녀(<건너편>). 많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상실'이다. 가까운 이들과 갑작스레, 혹은 천천히 멀어지는 사람들,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보며 너무나 낯선 감정을 느끼는 우리.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속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에 머무는데, 그들의 바깥에 위치한 타인은 여름에 서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의 선의를 가장한 대책없는 위로는 폭력처럼 후텁지근한 격려를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中


단편제목 <입동>처럼 피해자 부부는 너무나 차갑고 시리도록 괴로운 겨울에 위태롭게 서있다. 아이를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입에 담지 못할 소문에 처절하게 괴로워한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은 그만하면 아픈 건 됐다고 함부로 제단한다. 마치 '꽃매'를 맞듯 피해자와 주변인의 온도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수는 이별을 고하는 도화 앞에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괜히 다른 이유와 변명거리만 찾는다.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한다면, 전세금만 갚는다면.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어느순간 식어버린 상대의 마음인데도 말이다. 물론 편견이란 요소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 중 제법 큰 역할을 한다. 노인을 죽인 비행청소년들 사이에서 다문화 학생이란 '편견'때문에 억울하게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몰린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미역국을 먹는다. 하지만 '틀딱충'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를 보며 화자는 어쩌면 가족이란 이유로 '편견'을 갖고 단정지은 걸수도 있단 걸 깨닫는다. 온전히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면 한걸음 뒤에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게 오히려 응원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호의란 이유로, 혹은 내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타인이 느끼는 아픔의 강도를 결정짓는 건 과한 오지랖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머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 <가리는 손> 中


확실히 김애란의 단편은 정말 매력적이고, 공감도 많이 된다.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인지 첫 장을 넘기자마자 순식간에 작가의 말까지 넘어가버렸다. 번뜩이는 표현, 재치있는 상황 묘사에 놀라던 예전 작품과 달리 이번 <바깥은 여름>은 어느 순간 훅 먹먹함이 밀려들어왔다. 차마 이름을 끝까지 적지 못한 죽은 아이의 낙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면 최소한의 예의, 인간이 가장 잊고 지내는 덕목을 느끼게 해준 시리.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너무나 평범하고 가까이서 벌어져서 더욱 슬프고 참혹한 법이다. <노찬성과 에반>은 가장 예전 느낌이 나는 유머러스한 단편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말을 짧은 인생 속에서 처음 내뱉은 아이는 노견의 안락사와 소비의 욕망에서 고뇌하고 합리화한다. 어쩜 아이라면 할법한 당연한 고민과 결과지만,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후회하고 성장하는 과정일거라 생각하니 유쾌하고 재밌었다. 김애란의 소설처럼 나도 자연스레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다. 많은 독자들이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공감과 이해 속에서 피어나는 독서의 묘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진한 여운을 준다. 분량은 단편이지만, 여운은 대하소설마냥 길고 오래 그리고 깊숙이 파고든다. 타인의 고통에 시차, 온도차를 이해하는 게 가장 힘이 되는 첫 단추라고 명심하며 김애란 작가의 새 소설을 기다려본다.


결국 책을 읽는 일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조용한 공간에서만 가능하고요. 이전과 달리 책을 쓰는 입장에서의 물질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거주 공간이 불안정한 분이 많잖아요. 책을 사고 갖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떠나, 자기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잠잘 공간이든 쉴 공간이든 양보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더라고요. 물론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요. 그때마다 살아남는 책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 김애란 작가 인터뷰 中


│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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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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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분해졌다. 한층 담담해졌다. 웃음기는 살짝 빠졌고, 진지한 흐름이 천천히, 하지만 강력하게 밀려들어왔다. 마치 바깥에서 지켜볼 땐 잠잠해보이지만, 막상 올라서면 강력하게 몰아치는 여름철 파도처럼. 상실의 아픔을 다룬 소설들이 많아서일까?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20대의 삶을 함께 자라온 김애란이 5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깥은 여름>은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총 7개의 단편을 모은 신간이다. 수록작 가운데 제목을 골랐던 예전(<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과 달리 이번에는 본문 중 표현을 빌려왔다. 홀수를 참 좋아하는 작가는 묘하게 리듬감을 품고 있는 '바깥은 여름'이란 단어를 고심끝에 골랐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풍경의 쓸모」 中

편의점, 고시원 등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세상을 그렸던 작가에게 상실의 아픔을 그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목울대에 머문듯 입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기 쉽지 않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월호 사고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학생을 구하려다 물에 빠진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52개월된 아이 영우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입동>), 휴게소에서 처음 만난 정든 노견을과 이별하는 아이(<노찬성과 에반>), 흔히 볼 수 있는 이별하는 남녀(<건너편>). 많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상실'이다. 가까운 이들과 갑작스레, 혹은 천천히 멀어지는 사람들,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보며 너무나 낯선 감정을 느끼는 우리.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속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에 머무는데, 그들의 바깥에 위치한 타인은 여름에 서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의 선의를 가장한 대책없는 위로는 폭력처럼 후텁지근한 격려를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中

단편제목 <입동>처럼 피해자 부부는 너무나 차갑고 시리도록 괴로운 겨울에 위태롭게 서있다. 아이를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입에 담지 못할 소문에 처절하게 괴로워한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은 그만하면 아픈 건 됐다고 함부로 제단한다. 마치 '꽃매'를 맞듯 피해자와 주변인의 온도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수는 이별을 고하는 도화 앞에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괜히 다른 이유와 변명거리만 찾는다.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한다면, 전세금만 갚는다면.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어느순간 식어버린 상대의 마음인데도 말이다. 물론 편견이란 요소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 중 제법 큰 역할을 한다. 노인을 죽인 비행청소년들 사이에서 다문화 학생이란 '편견'때문에 억울하게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몰린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미역국을 먹는다. 하지만 '틀딱충'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를 보며 화자는 어쩌면 가족이란 이유로 '편견'을 갖고 단정지은 걸수도 있단 걸 깨닫는다. 온전히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면 한걸음 뒤에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게 오히려 응원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호의란 이유로, 혹은 내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타인이 느끼는 아픔의 강도를 결정짓는 건 과한 오지랖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머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 <가리는 손> 中

확실히 김애란의 단편은 정말 매력적이고, 공감도 많이 된다.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인지 첫 장을 넘기자마자 순식간에 작가의 말까지 넘어가버렸다. 번뜩이는 표현, 재치있는 상황 묘사에 놀라던 예전 작품과 달리 이번 <바깥은 여름>은 어느 순간 훅 먹먹함이 밀려들어왔다. 차마 이름을 끝까지 적지 못한 죽은 아이의 낙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면 최소한의 예의, 인간이 가장 잊고 지내는 덕목을 느끼게 해준 시리.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너무나 평범하고 가까이서 벌어져서 더욱 슬프고 참혹한 법이다. <노찬성과 에반>은 가장 예전 느낌이 나는 유머러스한 단편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말을 짧은 인생 속에서 처음 내뱉은 아이는 노견의 안락사와 소비의 욕망에서 고뇌하고 합리화한다. 어쩜 아이라면 할법한 당연한 고민과 결과지만,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후회하고 성장하는 과정일거라 생각하니 유쾌하고 재밌었다. 김애란의 소설처럼 나도 자연스레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다. 많은 독자들이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공감과 이해 속에서 피어나는 독서의 묘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진한 여운을 준다. 분량은 단편이지만, 여운은 대하소설마냥 길고 오래 그리고 깊숙이 파고든다. 타인의 고통에 시차, 온도차를 이해하는 게 가장 힘이 되는 첫 단추라고 명심하며 김애란 작가의 새 소설을 기다려본다.

결국 책을 읽는 일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조용한 공간에서만 가능하고요. 이전과 달리 책을 쓰는 입장에서의 물질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거주 공간이 불안정한 분이 많잖아요. 책을 사고 갖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떠나, 자기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잠잘 공간이든 쉴 공간이든 양보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더라고요. 물론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요. 그때마다 살아남는 책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 김애란 작가 인터뷰 中
│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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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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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 AI 자동화 등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흐름으로 미래를 예측했다빅데이터의 홍수 시대에서 살면서도 복고 열풍이 여러 분야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21세에 살고 있다어린 시절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긴가민가했다진짜 디지털이 정답이고자연스런 진보의 과정인가여전히 이북리더기보다는 종이책을 넘기는 게 편하고스마트폰 뉴스 링크는 실제 신문보다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그런 내가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위험'을 부제로 한 <로봇의 부상>을 읽고난 뒤 선택한 책은 당연히 <아날로그의 반격>이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모든 구매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교실은 가상공간에 존재할 것이었다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일자리였다프로그램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비트와 바이트로 전환될 것이고그 결과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에 도달하거나아니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반격은 그와는 다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혁신의 과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프롤로그」중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의 홍수가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기억하며 다양한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을 주목한다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무거운 LP레코드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아이패드가 아닌 몰스킨 종이 노트이밖에도 보드게임잡지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노동교육 시장까지 아날로그의 우세를 분석하며 절대 디지털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디지털 중심의 21세기에서 아날로그적 아이디어가 가진 혁신의 잠재력파괴적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사장화될거라던 아날로그의 역습은 단순히 유행처럼 번지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제법 많은 이들의 충성도를 얻고 있다그렇다고 '디지털VS아날로그의 극단적 대결 구도로 디지털 이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둘 사이의 균형을 찾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나을 수 있는 공존의 기회를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 -5장 인쇄물」중

 

지인 집들이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LP는 매력적이었다직접 주사위를 굴려가며 가족과 함께 웃으며 했던 추억의 부루마블은 흥미로웠다여전히 주변에는 '스마트'란 딱지를 붙인 최첨단 디지털 기기가 많지만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매일 0.38 시그노 볼펜으로 일기를 적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휴대폰노트북카메라 등은 최신제품이 나와도 무덤덤하다그런 나에게 오히려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다이북보다 실제 종이책은 비효율적이다많은 공간을 차지하고책값도 더 비싸고 관리 과정에서 손도 많이 갈 수밖에 없다실제 이북리더기도 공짜로 얻었지만 영 정이 가지 않았다훨씬 가볍고보기도 편하지만 디지털에서는 '비효율의 매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현실이 아닙니다우리가 갖고 있는 기계로 현실에 가까이 다가갈 가장 편리한 방법일 뿐이지요." 샤피로가 말했다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이동은 언제나 뭔가를 포기하는 과정이고 완전하지 않게 적당히 만족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아날로그가 항상 원본이고 항상 진실이지요현실은 아날로그잖아요디지털은 현재의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이고요우습게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요." 그가 말했다. - 9장 실리콘밸리」 중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히 지식 전달이라면 수단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는 교육도 마찬가지다학교가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이라는 입장과 중요한 성장 단계인 사회화를 돕는 곳이란 시각 차이는 제법 크다.) 하지만 대부분 독서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다그래서 E-BOOK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정체 수준이다표지를 보며 내용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책장을 손가락으로 직접 넘기며 나는 소리와 촉감인상적인 구절에 형광펜을 칠하거나 접는 과정 모두가 '독서의 즐거움'에 포함된다종이책을 고르는 이들에게 아날로그는 단순히 향수에 기댄 일탈이 아니라 당당히 '물리적 접촉'을 무기로 디지털과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다이렇듯 아날로그는 여전히 디지털 시대에서도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익숙한 이들을 매우 쉽게 유혹한다.

 

그리고 비효율이라고 낙인찍힌 아날로그의 장점은 놀랍게도 이윤이다승자독식소득 격차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의 폭주와 달리 아날로그는 분배적 이윤에 조금 더 활력을 불어넣는다저자는 디트로이트를 예로 들며 테크 기업보다 작은 레코드점이나 시계 공장이 오히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게다가 디지털의 선두 주자로 불리는 애플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며 이익을 훌륭하게 올리는 것만 보더라도 아날로그는 어지 보면 디지털의 훌륭한 보충제일지 모른다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통해 더욱 독창적이고 유익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처럼한편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요즘 시대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지도 모를 월든 캠프도 소개한다. '더 빠르게더 저렴하게!'를 외치는 요즘 이런 의미있는 도전은 재충전은 물론 잊고 지내던 오감을 깨울지도 모른다적어도 아이들이 PC방 앞에서 오밀조밀 앉아있는 것보다 흙모래를 먹어가며 운동장을 뛰노는 게 훨씬 보기 좋은 걸 보면나도 <아날로그의 반격>에 한표를 던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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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부상 -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
마틴 포드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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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이 불법인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올 것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언급한 자율주행차의 미래가 그리 허황된 꿈이 아닌 걸 직접 느꼈다강원도 인제 서킷에서 아반떼가 트랙 위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며 2바퀴를 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대학생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1등은 42748을 기록한 계명대가 차지했다그리 빠르지 않은 기록이라 시시할지 몰라도트랙 위 차량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차에는 운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운전자 없이 레이더카메라와 같은 주행환경 인식장치와 GPS와 같은 자동 항법 장치를 기반으로 조향변속가속제동을 스스로 제어하는 자율주행자동차이는 상상 속이 아닌실제 눈앞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고 있다이미 지금 타고 있는 자동차에도 운전자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율주행 관련 옵션이 달려있고에러의 걱정보다는 운전의 편안함때문에 종종 페달을 밟지 않는다차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건 SF영화의 무리한 설정이 아닌 실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 "AlphaGo resigns."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인간계 최강자 이세돌이 알파고에 첫 승을 거뒀다연거푸 3판을 지고이미 전체 대국의 승패는 갈렸지만 이세돌이 기계를 꺾으며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바둑의 기본적인 룰조차 몰랐지만 TV와 인터넷에 가득한 알파고 대국 이야기에 직접 중계도 지켜보기도 했다그리고 신의 한수라 불리는 78수를 두고 기어이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을 때는 정체모를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옛날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습격을 하도 많이 봐서일까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우리 인간을 꺾는 모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나보다숱한 화제를 낳은 딥마인드가 자연스레 잊혀졌고, 1년이 흐른 2017 5월 또 다시 뉴스에서 알파고를 만났다알파고가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커제를 압도적인 30으로 이겼으며페어전/단체전 모두 깔끔히 마무리했다여전히 인공지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스스로 진화하고 있었다.

 

4차 산업 혁명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급변하는 현재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산업계는 미래 먹거리 찾기에 열중이다이는 수익을 효율적으로 창출해야하는 기업에게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당장 로봇이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칠 엄청난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역시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로봇은 지치지도 않고불평도 없으며 훨씬 더 효율적이므로 이론상으론 인간을 뛰어넘는 훌륭한 노동'기계'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 마틴 포드는 미래 사회에 닥칠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이에 대한 본인만의 대안을 <로봇의 부상>에 담았다대다수의 일이 자동화가 되는 세상은 과연 편리하고 능률적인 멋진 신세계일지아니면 대량 실업을 유발해 빈부격차의 악몽이 판치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독자는 물론 저자도심지어 미래학자도 아무도 모르는 게 미래다하지만 최소한의 관심과 독서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제법 의미있다.

 

<로봇의 부상>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은 화이트칼라도 위기의 예외안전지대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흔히 로봇 자동화는 진입장벽이 낮은 반복 업무에 치명적일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저숙련 노동자는 물론이고소프트웨어 자동화와 예측 알고리즘의의 진화로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은 인상적이었다실제 인공지능이 쓴 스포츠 기사를 읽는데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심지어 인간만이 창의성감수성으로 빚어낼거라 굳게 믿었던 예술까지도 로봇의 영역으로 들어왔다이러한 기술은 영상에서 암세포를 가려내는 전문의는 물론 법률 조항을 해석하는 법률가나아가 IT 업계 전문가조차 급변하는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무인자동차나 약국 등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연관이 있는 분야는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결국 자동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책임 소재다그리고 로봇의 실수가 책임져야할 영역이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이 되었다면 더욱 쉽사리 상용화하기 어려울 것이다자동차가 난폭운전을 하는 차량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면데이터 오류로 항암치료제가 아닌 감기약을 처방받아 병세가 악화된다면인간의 목숨이 걸린 사고에 대한 책임은 결국 기계가 아닌 누군가가 져야한다.

 

다양한 분야에 퍼진 인공지능의 화려한 업적과 달리 책의 뒷부분은 약간 성격이 다른 경제경영학 서적 느낌이었다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최상위층 세율을 조정해 소득 불균형을 해소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친다지나친 과세는 투자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불평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는 애플을 예로 들며 반론을 제기한다.

 

"최상위 소득계층에 대한 세율이 70퍼센트였던 1970년대 중반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두 창업되었다는 사실은 기업가들이 최고세율 때문에 골머리를 않느라 시간 낭비를 하지는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그는 로봇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가올 미래의 양극화를 걱정한다초반에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날카로웠지만 이에 대한 해답인 기본소득은 다소 힘이 딸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기본소득제는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 사회적 공황을 막겠다는 의견이다사람들의 게으름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결국 소득이 있어야 소비를 하고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이루어진다는 게 기본 논리다최고소득층에 대한 누진세자산세 강화만으로는 너무 유토피아적인 기대가 아닌가 싶다하지만 단순히 로봇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사회적 불평등까지 고민해볼 화두를 던져준 흥미롭고시의적절한 책인 것 같다나도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그런 전문적인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물론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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