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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평점 :
4차 산업 혁명, AI 자동화 등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흐름으로 미래를 예측했다. 빅데이터의 홍수 시대에서 살면서도 복고 열풍이 여러 분야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21세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진짜 디지털이 정답이고, 자연스런 진보의 과정인가? 여전히 이북리더기보다는 종이책을 넘기는 게 편하고, 스마트폰 뉴스 링크는 실제 신문보다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위험'을 부제로 한 <로봇의 부상>을 읽고난 뒤 선택한 책은 당연히 <아날로그의 반격>이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구매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교실은 가상공간에 존재할 것이었다.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일자리였다. 프로그램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비트와 바이트로 전환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반격은 그와는 다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혁신의 과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 「프롤로그」중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의 홍수가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기억하며 다양한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을 주목한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무거운 LP레코드,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 아이패드가 아닌 몰스킨 종이 노트. 이밖에도 보드게임, 잡지,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노동, 교육 시장까지 아날로그의 우세를 분석하며 절대 디지털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디지털 중심의 21세기에서 아날로그적 아이디어가 가진 혁신의 잠재력, 파괴적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사장화될거라던 아날로그의 역습은 단순히 유행처럼 번지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제법 많은 이들의 충성도를 얻고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VS아날로그의 극단적 대결 구도로 디지털 이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찾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나을 수 있는 공존의 기회를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 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 -「5장 인쇄물」중
지인 집들이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LP는 매력적이었다. 직접 주사위를 굴려가며 가족과 함께 웃으며 했던 추억의 부루마블은 흥미로웠다. 여전히 주변에는 '스마트'란 딱지를 붙인 최첨단 디지털 기기가 많지만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매일 0.38 시그노 볼펜으로 일기를 적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휴대폰, 노트북, 카메라 등은 최신제품이 나와도 무덤덤하다. 그런 나에게 오히려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다. 이북보다 실제 종이책은 비효율적이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책값도 더 비싸고 관리 과정에서 손도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실제 이북리더기도 공짜로 얻었지만 영 정이 가지 않았다. 훨씬 가볍고, 보기도 편하지만 디지털에서는 '비효율의 매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계로 현실에 가까이 다가갈 가장 편리한 방법일 뿐이지요." 샤피로가 말했다.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이동은 언제나 뭔가를 포기하는 과정이고 완전하지 않게 적당히 만족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아날로그가 항상 원본이고 항상 진실이지요. 현실은 아날로그잖아요. 디지털은 현재의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이고요. 우습게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요." 그가 말했다. - 「9장 실리콘밸리」 중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히 지식 전달이라면 수단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이라는 입장과 중요한 성장 단계인 사회화를 돕는 곳이란 시각 차이는 제법 크다.) 하지만 대부분 독서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다. 그래서 E-BOOK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정체 수준이다. 표지를 보며 내용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책장을 손가락으로 직접 넘기며 나는 소리와 촉감, 인상적인 구절에 형광펜을 칠하거나 접는 과정 모두가 '독서의 즐거움'에 포함된다. 종이책을 고르는 이들에게 아날로그는 단순히 향수에 기댄 일탈이 아니라 당당히 '물리적 접촉'을 무기로 디지털과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다. 이렇듯 아날로그는 여전히 디지털 시대에서도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익숙한 이들을 매우 쉽게 유혹한다.
그리고 비효율이라고 낙인찍힌 아날로그의 장점은 놀랍게도 이윤이다. 승자독식, 소득 격차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의 폭주와 달리 아날로그는 분배적 이윤에 조금 더 활력을 불어넣는다. 저자는 디트로이트를 예로 들며 테크 기업보다 작은 레코드점이나 시계 공장이 오히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디지털의 선두 주자로 불리는 애플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며 이익을 훌륭하게 올리는 것만 보더라도 아날로그는 어지 보면 디지털의 훌륭한 보충제일지 모른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통해 더욱 독창적이고 유익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처럼. 한편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요즘 시대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지도 모를 월든 캠프도 소개한다.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를 외치는 요즘 이런 의미있는 도전은 재충전은 물론 잊고 지내던 오감을 깨울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이 PC방 앞에서 오밀조밀 앉아있는 것보다 흙모래를 먹어가며 운동장을 뛰노는 게 훨씬 보기 좋은 걸 보면, 나도 <아날로그의 반격>에 한표를 던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