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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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분해졌다. 한층 담담해졌다. 웃음기는 살짝 빠졌고, 진지한 흐름이 천천히, 하지만 강력하게 밀려들어왔다. 마치 바깥에서 지켜볼 땐 잠잠해보이지만, 막상 올라서면 강력하게 몰아치는 여름철 파도처럼. 상실의 아픔을 다룬 소설들이 많아서일까?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20대의 삶을 함께 자라온 김애란이 5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깥은 여름>은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총 7개의 단편을 모은 신간이다. 수록작 가운데 제목을 골랐던 예전(<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과 달리 이번에는 본문 중 표현을 빌려왔다. 홀수를 참 좋아하는 작가는 묘하게 리듬감을 품고 있는 '바깥은 여름'이란 단어를 고심끝에 골랐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풍경의 쓸모」 中

편의점, 고시원 등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세상을 그렸던 작가에게 상실의 아픔을 그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목울대에 머문듯 입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기 쉽지 않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월호 사고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학생을 구하려다 물에 빠진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52개월된 아이 영우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입동>), 휴게소에서 처음 만난 정든 노견을과 이별하는 아이(<노찬성과 에반>), 흔히 볼 수 있는 이별하는 남녀(<건너편>). 많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상실'이다. 가까운 이들과 갑작스레, 혹은 천천히 멀어지는 사람들,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보며 너무나 낯선 감정을 느끼는 우리.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속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에 머무는데, 그들의 바깥에 위치한 타인은 여름에 서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의 선의를 가장한 대책없는 위로는 폭력처럼 후텁지근한 격려를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中

단편제목 <입동>처럼 피해자 부부는 너무나 차갑고 시리도록 괴로운 겨울에 위태롭게 서있다. 아이를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입에 담지 못할 소문에 처절하게 괴로워한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은 그만하면 아픈 건 됐다고 함부로 제단한다. 마치 '꽃매'를 맞듯 피해자와 주변인의 온도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수는 이별을 고하는 도화 앞에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괜히 다른 이유와 변명거리만 찾는다.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한다면, 전세금만 갚는다면.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어느순간 식어버린 상대의 마음인데도 말이다. 물론 편견이란 요소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 중 제법 큰 역할을 한다. 노인을 죽인 비행청소년들 사이에서 다문화 학생이란 '편견'때문에 억울하게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몰린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미역국을 먹는다. 하지만 '틀딱충'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를 보며 화자는 어쩌면 가족이란 이유로 '편견'을 갖고 단정지은 걸수도 있단 걸 깨닫는다. 온전히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면 한걸음 뒤에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게 오히려 응원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호의란 이유로, 혹은 내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타인이 느끼는 아픔의 강도를 결정짓는 건 과한 오지랖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머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 <가리는 손> 中

확실히 김애란의 단편은 정말 매력적이고, 공감도 많이 된다.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인지 첫 장을 넘기자마자 순식간에 작가의 말까지 넘어가버렸다. 번뜩이는 표현, 재치있는 상황 묘사에 놀라던 예전 작품과 달리 이번 <바깥은 여름>은 어느 순간 훅 먹먹함이 밀려들어왔다. 차마 이름을 끝까지 적지 못한 죽은 아이의 낙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면 최소한의 예의, 인간이 가장 잊고 지내는 덕목을 느끼게 해준 시리.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너무나 평범하고 가까이서 벌어져서 더욱 슬프고 참혹한 법이다. <노찬성과 에반>은 가장 예전 느낌이 나는 유머러스한 단편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말을 짧은 인생 속에서 처음 내뱉은 아이는 노견의 안락사와 소비의 욕망에서 고뇌하고 합리화한다. 어쩜 아이라면 할법한 당연한 고민과 결과지만,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후회하고 성장하는 과정일거라 생각하니 유쾌하고 재밌었다. 김애란의 소설처럼 나도 자연스레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다. 많은 독자들이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공감과 이해 속에서 피어나는 독서의 묘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진한 여운을 준다. 분량은 단편이지만, 여운은 대하소설마냥 길고 오래 그리고 깊숙이 파고든다. 타인의 고통에 시차, 온도차를 이해하는 게 가장 힘이 되는 첫 단추라고 명심하며 김애란 작가의 새 소설을 기다려본다.

결국 책을 읽는 일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조용한 공간에서만 가능하고요. 이전과 달리 책을 쓰는 입장에서의 물질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거주 공간이 불안정한 분이 많잖아요. 책을 사고 갖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떠나, 자기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잠잘 공간이든 쉴 공간이든 양보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더라고요. 물론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요. 그때마다 살아남는 책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 김애란 작가 인터뷰 中
│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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