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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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상실'이란 감정을 누구보다 재치있고 맛깔스럽게 그려내는 작가다. 그녀의 글은 담담하게 이어지며 상실의 아픔, 슬픔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끌어안는다. 그녀는 기발한 문장을 윤활유 삼아 불안한 처지의 인생을 다시 살펴보는 데 매우 탁월하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재수생, '침이 고인다'의 학원 강사, '칼자국'의 딸. 다들 무언가의 부재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슬픔을 폭발하거나, 펑펑 우는 쪽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후배가 건네준 껌을 씹거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칼로 사과를 깎아 먹으며 그리움을 삭힐 뿐이다. 8편의 단편 모두 처절하게 외로운 2013년 대한민국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물론 사물을 3차원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을 더해 4차원으로 보는 그녀의 표현,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 탁월하고 놀라울 정도다.

 

"K-59. 오래전 내 책상 번호.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 <자오선을 지나갈 때> 中


2007년. 수원 선경도서관 3층 열람실. 나의 재수생 혹은 죄수생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남문, 화성행궁의 시간은 21세기가 아닌 조선 시대처럼 느릿느릿하게 흘렀다. 걸을 시간은 많았고, 화창한 날씨는 유독 잦았다. 그때 당시에는 불안한 내 신분에 초조하고 답답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불안했다. 그럴 때면 1,500원짜리 조미료 덩어리 떡볶이를 후딱 먹어치우고 무작정 걸었다. 점집, 철학관이 2열 종대로 쭉 늘어진 생경한 거리, 한옥 돌담으로 둘러싸인 행궁초등학교. 공짜로 볼 수 있던 수많은 잡지와 신문과 함께 그때 그 공간, 시간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다. 무작정 대학생이 되어서 마음껏 술도 먹고 장기자랑 때 부를 노래나 걱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밝았던 순간이 바로 둥둥 떠다니던 재수생 시절 같았다. 민식이와의 풋풋하지만, 끝이 보이는 로맨스만 없었을 뿐이다. 사람들 틈에 끼어 모두가 '지나가고 있는 중'인 노량진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먼지 낀 유리병 속의 마늘장아찌나 숨 죽은 파김치, 복수심을 안고 포복해 있는 간장 게장과 독 안에서 꿈처럼 출렁이며 익어가는 물김치를 볼 때면, 내가 아주 옛날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먼지 낀 환풍기는 느릿느릿 돌아갔다. 어머니는 바닥에 구부정히 앉아 칼을 갈았다. 나는 숫돌 앞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어머니를 보며 웅얼거렸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이다.'라고."
- <칼자국> 中

<칼자국>에서 상실의 대상은 멀고도 가까운 어머니다. 대한민국 어머니의 전형으로 나타난 주인공의 어머니는 칼을 쥔 여자였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로 기억된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골치투성이 남편를 욕하면서도 퉁명스럽게 밥을 지어 준다. 커다란 개 앞에서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으름장을 놓는 일도 불사하는 어머니.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주방 앞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모든 어머니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내 기억 속 어머니도 항상 그랬다. 평생을 칼을 쥐고 음식을 하며 우리를 먹여 살려온 62년생 꿈 많은 문학소녀. 그녀는 시집과 편지지를 책상 속에 고이 넣어두고, 도마와 칼자루를 쥐고 뜨거운 불길 앞에 섰다. 잊을만하면 뒤통수를 치는 자식, 아닌 무심한 새끼들을 위해서. '맛나당'의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순간이 내게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응, 된장 넣고 그냥 끓이면 돼."
이런 만병통치약의 처방을 내려준 어머니가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집안이란 우주의 이치를 통달한 그녀가 없다면 아마 나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만 같다. 물론 서서히 적응하고 내 방식대로 소우주를 운행해나갈 테지만 그래도 '어머니'란 어미가 주는 먹먹한 사랑의 마음은 절대 잊지 않겠다.

<달려라, 아비>가 아버지, 편의점으로 치환되는 시대를 그렸다면, <침이 고인다>는 어머니, 단칸방으로 대표된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의 주인공은 블랙박스를 어머니라 생각하며 두 손으로 차가운 볼을 만졌다. '칼자국'에서 1,500원을 주고 특수 스댕 칼을 산 것도 바로 어머니다. '도도한 생활'에서도 만두집을 하는 엄마는 '보통'의 기준에 따라 피아노를 사줬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자식에게 걸었다. 지금의 고통과 슬픔은 미래에 아이들이 얻을 행복의 밑거름이란 생각을 굳게 믿고 그저 버텼다. 자꾸 어머니의 퉁퉁 부은 발목과 소녀 같은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울적해졌지만 나는 그녀에게 '자부심'이란 생각과 함께 묘한 사명감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 그녀가 챙겨준 고추장소고기 볶음을 밥에 비벼 먹었다. 물론 곰팡이와 정체 모른 벌레와 함께 사는 허름한 42-1번지 좌측 자취방에서 말이다. '성탄특선'에서 12월 25일 모텔, 여관, 혹은 여인숙까지 돌아다니며 그들만의 공간을 갈구하던 커플, 층층이 내려앉은 고시원과 겨울나무가 보이는 공간에서 바삭 말라가는 신림동 고시생.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 속에서 그들은 모두 무섭도록 차가운 사회적 상황을 대변한다. 그리고 '침이 고인다'에서 하기 싫은 꼭짓점 댄스에 의식을 맡기는 주인공을 보며 예감했다. 대학생 꼬리표를 끊고 회사원이란 ID카드를 목에 걸면 무한대의 스트레스가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말처럼 아마 이렇게 버티겠지?

"아울러 '그만둘까'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월급날은 번번이 용서를 비는 애인처럼 돌아왔다."

그녀는 점심시간마다 학원 옥상에 올라가 ‘꼭짓점 댄스‘를 춰야 했다. 팔과 다리를 벌린 후 하나 둘 셋 전진, 찍고, 다시 하나 둘 셋 틀고. 거기, 박선생님, 45도! 45도 몰라요? 확성기 소리에 다급히 목을 꺾고 반대로 갔다가 옆 사람과 부딪힌 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강약약. 한여름, 그늘 한 점 없는 옥상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안무를 따라 하는 동안 그녀는 줄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단체 기합‘과 ‘장기 자랑‘이었는데, 꼭짓점 댄스는 그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마블링처럼 엷게 번져가는 핏물을 바라본다. 오늘, 학원 가지 말까? 그녀는 고민한다. 그녀가 뭔가 선택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후다닥 찬물에 머리를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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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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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임자 작가 김중혁은 야구로 치면 8번 타자쯤 되는 고만고만한 선수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고교 동창 김연수가 4번 타자 슬러거라면 자신은 쉬어가는 타순 정도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김중혁은 5툴 플레이어(정확성, 파워, 수비ㆍ송구ㆍ주루 능력을 갖춘 선수) 3번 타자가 제격이다. 그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효석문학상, 젊은 작가상 대상 등을 받으며 검증받은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흑임자역할로 깨알 같은 입담을 과시하고, 표지의 그림을 그리거나 인터넷 방송의 연출까지 한다. 이렇듯 팔방미인 김중혁은 자신의 재기 발랄한 상상을 여러 분야에서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최대 장점은 말랑말랑한 단편 소설이다.

 

 

“2021394200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2021394199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발음해보았다.

삼십구만사천백구십구

단번에 세 개의 숫자가 바뀐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숫자로 된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한 시간에 1씩 숫자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이유 때문에 숫자로 된 이름을 싫어하지만 2021394199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지워지는 듯한, 옅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얼음을 가득 채운 위스키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자신이 좀 더 부드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中

 

 

그의 단편집은 하나의 테마가 있다. <펭귄 뉴스>에서 아날로그적 사물,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악기와 소리에 주목했다면 <1F/B1>의 키워드는 현대인이 가장 친숙한 공간인 ‘도시’다. 'C1+y=:[8]‘, ’냇가로 나와‘. ’바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1F/B1', ‘유리의 도시’, ‘크리샤’ 총 일곱 가지 단편이 묶여 있는데 묘하게 일관성을 보인다. 미래 도시의 레옹과 마틸다가 떠오르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금 당장 현관문을 열고 몇 걸음만 옮기면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주인공 이름이 달라지는 소설이라니! 한 시간에 1씩 줄어드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과 몽환적인 세계를 단편으로만 끝내기는 아쉽다.)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한 숨은 골목길, 전설이 시작된 나루터, 까맣게 정전이 되어버린 아파트 단지, 대형 유리로 빼곡하게 가득 찬 대형 빌딩, 작은 공터가 보이는 낡은 건물, 도시로부터 밀려난 어두운 덤불. 그가 창조한 도시는 익숙하면서도 참신한 신비로운 이야기의 토양이다.

 

 

“이윤찬은 고은진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는 장면을 떠올렸다. 약이 올라서 정수리가 뜨끈뜨끈했다. 이윤찬은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흐릿한 빌딩들을 노려보았다. 유리가 너무 많았다.

“손님, 시트 다 젖습니다.”

택시기사가 거울로 이윤찬을 노려보았다. 이윤찬의 오른쪽 어깨와 팔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이윤찬은 버튼을 눌러 택시 창문을 닫았다. 창을 닫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몰려드는 생물체처럼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 '유리의 도시' 中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유리의 도시’였다. 소설 속 도시는 연쇄 유리 자살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차가운 곳이다. 아무 이유 없이 유리가 건물 밖으로 떨어져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데 이윤찬과 정남중은 이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그들은 특정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루미노코바륨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범인 고은진을 체포하며 순조롭게 사건 종결을 앞두고 있지만 다시 가로 사 미터 세로 삼 미터 크기의 유리가 떨어진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의 빗방울 묘사는 매우 공감되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빌딩 ‘숲’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체감한 기억, 3007번을 타고 빌딩 숲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마지막 발악처럼 창문으로 뛰어드는 빗방울. 이제는 익숙해진 도시의 유리들이 나를 겁먹게 했던 순간이 어렴풋이 기억났고, 그때의 내 모습도 추억할 수 있었다.

 

 

C1+y=:[8]: 는 그해 가을 발표한 내 논문의 제목이다. 상교동의 골목에서 발견한 낙서였는데,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라는 뜻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두 개의 발, 도시와 스케이트보드 사이에 있는 ‘=’의 속도감이 보기 좋았다.

C1+y=:[8]: 中 

 

 

그의 이야기는 뻥이다. 하지만 허황되거나 유치하지 않다. 왜냐하면, 세부적인 묘사가 생생하고 매끈해서 마치 진짜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알루미노코바륨, 광찬구 미온동, 건물관리자연합, 슬래쉬 매니저. 내가 모를 뿐 당연히 존재할 법한 이름이다. 그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한 소재를 맛깔나게 그려낸다. 스케이트보드를 수식화하고, 1F/B1에서 FBI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김중혁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기이한 사건의 연속이지만 마지막 작가의 말처럼 그는 도시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는 이 속된 도시가 좋다. 여기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의 말처럼 복잡하고 긴박한 도시라는 공간은 결국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 속의 일부로서 속도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여유를 찾는 것 역시 결국 도시인의 숙명이다. 그리고 나에게 여유를 갖는 최고의 방법은 김중혁 작가의 소설처럼 기발하고 신선한 활자들을 음미하는 독서일 것이다.



"윤정우의 눈에 들어온 1F/B1이라는 문자와 숫자와 기호의 조합은 마치 신의 계시 같았다. 윤정우는 잠시 계단참에 서서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신의 계시라면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지판 속에서 ‘FBI‘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럼 이 모든 사건이 FBI의 음모였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윤정우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윤정우는 계단을 마저 내려가 관리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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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아홉 가지 단어 - 권력에서 문명까지 세계를 바꾼 인문학 키워드 세상을 밝히는 지식교양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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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진보, 민족, 전통, 소비, 합리성, 오리엔탈리즘, 환경, 문명. 9가지 단어로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의 변화가 설명될 수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삶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각 키워드별로 개론적인 설명과 실제 원문을 실어두어서 맛보기 수준의 상식을 습득하기에 유익했다. 하지만 진지한 고찰과 오래가는 지혜로 고스란히 기억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추천한 책들을 탐독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저자가 평생을 바쳐 노력한 학문의 참 뜻을 알려는 시도는 오만할 뿐이다. 전반적으로 7가지 대부분 ‘근대화’라는 사건 속에서 실타래가 엉켜있었다. 민주주의로 권력이 ‘이양’되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진보’가 일어나고, 고정불변할 것만 같았던 ‘민족’, ‘환경’, ‘문명’도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사회에서는 인간의 지위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혹은 기득권이 요구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특히 ‘소비’ 부분에 관련된 르페브르와 보드리야르의 성찰에 관심이 갔다. 21세기를 아우르는 가장 뜨거운 단어는 결국 ‘돈’이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명품에 미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공간 속에서 소비는 결코 필요한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소비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나의 욕망인양 착각하며 시작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CF 속 연예인의 고급스러운 자태는 결국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부러워하지 말고 지갑을 열어!” 과연 내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사용가치 때문일까? 아니면 과시하고 싶어서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일까? 지금도 TV를 켜보니 가장의 죽음마저 가족의 행복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만 같은 보험 광고가 흘러나온다. 세계를 바꾼 9가지 키워드의 방향과 목적지를 깨달을 정도의 내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세태 자체는 분명 위험하다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를 내 방식대로 이해하거나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대 상대에게 나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진심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지배권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다. 역사는 힘의 권위와 관습이 되어버린 윤리에 항거함으로써 창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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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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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창작에 몰두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간질병으로 인한 병적인 집착, 인생 전체를 물들인 도박병, 충격으로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 뚜렷하게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그의 기구한 인생을 들여다보면 <죄와 벌>은 물론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가난과 구원을 함께 손에 쥐었던 그는 <죄와 벌>의 공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두운 도시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냈다. 톨스토이와는 또 다른 고통과 좌절의 매력을 지닌 그의 소설은 무섭도록 현실적이고 냉혹하다. 특히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마치 내가 공범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가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이렇게 생생하고 참혹한 범죄자의 심리를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충격적인 첫인상이 길고 긴 소설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타인은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 ‘비범한 사람’이 다수인가요? 저는 물론 그들을 인정합니다만, 그러한 사람들이 무한정으로 많으면 기분이 좀 두려우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대체로 신사상을 주장하는 사람, 아니 어떤 ‘새로운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히리만큼 극소수이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부류와 그 밑의 세부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 탄생할 비율은 어떤 자연법칙에 의해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초인 사상’에 심취한 병약한 대학생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악한 소수를 처단할 권리이자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그는 전당포를 찾아간다. 전당포 노파 이바노브나는 동생 리자베타까지 착취하며 돈에만 빠져 사는 백해무익한 인물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대, 착한 두냐의 희생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는 스스로 도끼로 악을 처단하면서 선을 실행하는 역할을 하는 비범한 인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피가 솟구치는 노파의 정수리를 바라보면서 그는 극심한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 그 역시 결국 평범한 인물에 불과했다. 타인의 가치를 결정하고 처단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나약한 인물이었다. 

 

소설에서는 특히 ‘문턱’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문턱에 서서 극단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그는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악을 처단한 후에 극악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고 환각 증세를 보이던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냉철한 예심판사 포르피리에게 자수를 하고 만다. 그가 믿는 초인이라면 냉정하게 선을 행한 것에 보람을 느껴야 했지만, 그는 결국 인간이었다. 역설적으로 라스콜리니코프의 아픔 속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대지를 상징하는 소냐의 도움 때문이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창녀라는 직업을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그녀는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라스콜리니코프를 따라온다. 땅에 입을 맞추고 죄를 고백하라고 주인공에 권유하는 자도 바로 사랑을 상징하는 소냐다. 과연 누가 혼란스러운 살인자의 눈물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겠는가? 결국 선을 지키는 이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생각한 단 하나의 ‘초인’이 아니라 소냐처럼 사랑의 가치를 나누는 ‘일반인’이다.

 

 

칙칙한 방과 음울한 뒷골목 술집의 묘사를 보며 이질감을 받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일상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나도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대학생이 되고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하루하루 비좁은 자취방에 벌레와 함께 살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심각한 수준의 몽상과 피해 의식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 예전보다 상당히 냉소적이고 주변에 무덤덤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새삼 라스콜리니코프는 복에 겨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냅다 성질만 내고 나가버리는 친구를 이해하고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라주미힌, 헌신적이고 이해심 많은 동생 두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손길을 아끼지 않는 소냐까지. 그에게 필요한 건 영웅이 아니라 이런 따뜻한 주변의 손길이었다. 그랬다면 노파를 죽이고 뉘우치는 과정의 괴로움을 생략하고 조금 더 일찍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었겠지?

이젠 잠시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도끼를 빼내 거의 무의식적으로 양손으로 들어올려 아무렇게나, 도끼 등으로 노파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 순간 마치 온몽의 힘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번 도끼로 내리친 후부터 다시 힘이 확 솟았다.

노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었다. 평소처럼 기름으로 싹 빗어 붙이고 백발이 섞인 연한 빛깔의 머리를 쥐꼬리처럼 닿아서 그것을 똘똘 뭉쳐 부러진 빗으로 꽂고 있었다. 일격이 가해진 부분은 노파의 정수리였다. 상대방의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노파는 ‘악!’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으나 그것도 아주 미약할 뿐 몸은 허물어지듯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그대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긴 했으나 한쪽 손에는 아직도 저당물을 쥐고 있었다. 이때 청년은 있는 힘을 다해 역시 도끼 등으로 정수리를 향해 한 번, 두 번 도끼 날을 내리쳤다. 피는 물 담긴 컵이 뒤집어진 것처럼 콸콸 흘러나오더니, 노파는 몸을 젖히며 위를 보고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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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K리그다 - 아시아 축구의 꼭짓점, 열정 스토리 가득한 K리그의 초정밀 보고서
김현회 지음 / 이른아침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은 축구팬에게 최악의 장소다. 2002년 월드컵 4강, 2012년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이룬 아시아의 맹주 한국이 대체 왜? 학교, 군대, 동네 어디에서나 축구공을 차는 22명의 한국인을 찾아보기 쉬운 현실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K리그 팬으로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미없고 수준 낮은 축구를 본다는 조소를 들어가면서도 묵묵히 경기장을 찾는다. 글로벌 시대를 대비하라는 배려인지 우리 팀 경기를 힘겹게 아랍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마치 도청하듯이 경기를 관람해야 한다.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하는 K리그는 출범 30년이 넘었다. 열정의 축구 놀이터 K리그 클래식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전대미문의 승부조작 파문과 서포터 폭력 사태, 그라운드 난입 등 축구장 사건 사고는 K리그를 대표하는 주홍글씨였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K리그는 언제나 매주 주말이면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모두가 스토리가 없는 재미없는 축구라고 욕하는 K리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칼럼니스트 김현회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아마 엠파스 시절이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칼럼이라면, 특히 축구 칼럼이라면 전문적인 선수 출신이나 해설자들이 날카롭게 특정 경기나 선수를 분석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현회는 달랐다. 분명 엠파스 스포츠 코너에 실리는 글인데 마치 말빨 좋은 동네 축빠 형이 막걸리를 마시며 푸는 유쾌한 ‘썰’같았다. 일단 글 자체가 정말 재밌었고 통통 튀며 신선했다. 게다가 처음 느꼈던 신선함은 탄탄한 내용과 구성에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는 직접 경기장을 찾고 모두가 관심 두지 않는 숨은 곳을 재조명하는 일에 능하다. 그는 소위 말하는 ‘꼴통 짓’에 특화된 행동주의 칼럼니스트다. 그 어떤 기자나 팬이 직접 드래프트를 신청하고, 챌린져스리그 선수로 경기를 뛰고(최악의 데뷔전이었다.), 축구 응원가를 제작하고, 유소년 아이들에 껴서 축구로 살을 빼겠는가? 그의 글은 말로만 분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노력의 결과물이다.

 

피드백이 빠른 한국 축구계에서 김현회라면 까고 보는 안티도 매우 많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글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 내가 보는 스포츠 칼럼에서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재치있는 글을 부지런하게 토해내는 사람이 김현회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돌아오니 경악할 정도로 양질의 칼럼을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직접 관련 동영상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고, 소외된 선수나 감독, 경기를 재조명하는 사람은 오직 김현회뿐이다. 게다가 40~50년대를 비롯해 대한민국 축구의 사라져가는 역사를 재정립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 직접 인터뷰를 하는지, 사료를 찾아 재구성하는지 대단할 뿐이다.) 모두가 사랑하고 궁금해하는 글을 쓰기란 쉽다. 인기 있는 재료를 적당히만 다듬어내면 제법 훌륭하고 그럴싸한 축구 칼럼이 나온다. 하지만 모두가 주목하지 않고 별로라고 낙인찍은 소재로 유쾌하고 도발적인 글을 쓰기란 무척 어렵다. 대표팀에 비정상적으로 쏠리는 관심에도 유소년, 여자 축구, 내셔널리그, 심지어 조기 축구까지 넘나드는 그의 관심사는 ‘대한민국 축구’ 그 자체다.

 

그럼에도 국내 축구 취재가 나는 더 즐겁다. 아무리 해외 축구에 대해 비판을 가해도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지만, 국내 축구는 다르다. 내 목소리가 현장에까지 전달된다. 또한 국내 축구를 취재하다보면 정을 느낄 수 있다. 포항은 K리그에서 우승하면 과메기를 선물로 보낸다. 현장감 넘치고 정이 넘치는 국내 축구 취재를 향한 내 열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을 믿고 살 수 있었다. 칼럼 자체는 읽어본 글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클릭하며 읽어온 그의 무료 칼럼에 대한 구독료라는 생각으로 바로 책을 주문했다. 고화질로 실린 K리그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맨 마지막 장은 특히 더 유익했다. 경기장 소개는 물론 주변 맛집까지 추천하니 원정 경기를 가면 적혀 있는 꼭 가봐야겠다는 쓸데없는 경쟁심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수원, 성남, 상주, 광주, 부산 등 K리그 입장권 할인 혜택까지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하면 책값보다 오히려 이득인 셈이다.

“K리그는 ‘전쟁, 도전, 전설, 소풍’이다.” 각 장의 소제목처럼 어김없이 3월이면 K리그는 봄과 함께 시작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깨우쳐주면서 나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은 K리그가 무척 기다려진다. 물론 시즌 개막만큼이나 K리그의 깊이 있는 ‘스토리’를 골 때리게 써내려갈 악동 김현회의 글도 매일 기다리고 있다.

“K리그는 골 때리는 김현회의 밥줄이다! 그리고 그의 글을 기다리는 축구 팬과 그의 공통분모다!”



행정력과 마케팅 등 아직 개선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적어도 실력 하나만큼은 아시아에서 최고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K리그다.

장담컨대 비행기 타고 5시간 이내로 이동해서 K리그보다 축구 잘하는 리그를 찾을 수는 없다.

아시아 최고의 리그, 바로 이 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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