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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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상실'이란 감정을 누구보다 재치있고 맛깔스럽게 그려내는 작가다. 그녀의 글은 담담하게 이어지며 상실의 아픔, 슬픔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끌어안는다. 그녀는 기발한 문장을 윤활유 삼아 불안한 처지의 인생을 다시 살펴보는 데 매우 탁월하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재수생, '침이 고인다'의 학원 강사, '칼자국'의 딸. 다들 무언가의 부재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슬픔을 폭발하거나, 펑펑 우는 쪽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후배가 건네준 껌을 씹거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칼로 사과를 깎아 먹으며 그리움을 삭힐 뿐이다. 8편의 단편 모두 처절하게 외로운 2013년 대한민국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물론 사물을 3차원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을 더해 4차원으로 보는 그녀의 표현,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 탁월하고 놀라울 정도다.

 

"K-59. 오래전 내 책상 번호.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 <자오선을 지나갈 때> 中


2007년. 수원 선경도서관 3층 열람실. 나의 재수생 혹은 죄수생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남문, 화성행궁의 시간은 21세기가 아닌 조선 시대처럼 느릿느릿하게 흘렀다. 걸을 시간은 많았고, 화창한 날씨는 유독 잦았다. 그때 당시에는 불안한 내 신분에 초조하고 답답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불안했다. 그럴 때면 1,500원짜리 조미료 덩어리 떡볶이를 후딱 먹어치우고 무작정 걸었다. 점집, 철학관이 2열 종대로 쭉 늘어진 생경한 거리, 한옥 돌담으로 둘러싸인 행궁초등학교. 공짜로 볼 수 있던 수많은 잡지와 신문과 함께 그때 그 공간, 시간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다. 무작정 대학생이 되어서 마음껏 술도 먹고 장기자랑 때 부를 노래나 걱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밝았던 순간이 바로 둥둥 떠다니던 재수생 시절 같았다. 민식이와의 풋풋하지만, 끝이 보이는 로맨스만 없었을 뿐이다. 사람들 틈에 끼어 모두가 '지나가고 있는 중'인 노량진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먼지 낀 유리병 속의 마늘장아찌나 숨 죽은 파김치, 복수심을 안고 포복해 있는 간장 게장과 독 안에서 꿈처럼 출렁이며 익어가는 물김치를 볼 때면, 내가 아주 옛날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먼지 낀 환풍기는 느릿느릿 돌아갔다. 어머니는 바닥에 구부정히 앉아 칼을 갈았다. 나는 숫돌 앞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어머니를 보며 웅얼거렸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이다.'라고."
- <칼자국> 中

<칼자국>에서 상실의 대상은 멀고도 가까운 어머니다. 대한민국 어머니의 전형으로 나타난 주인공의 어머니는 칼을 쥔 여자였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로 기억된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골치투성이 남편를 욕하면서도 퉁명스럽게 밥을 지어 준다. 커다란 개 앞에서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으름장을 놓는 일도 불사하는 어머니.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주방 앞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모든 어머니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내 기억 속 어머니도 항상 그랬다. 평생을 칼을 쥐고 음식을 하며 우리를 먹여 살려온 62년생 꿈 많은 문학소녀. 그녀는 시집과 편지지를 책상 속에 고이 넣어두고, 도마와 칼자루를 쥐고 뜨거운 불길 앞에 섰다. 잊을만하면 뒤통수를 치는 자식, 아닌 무심한 새끼들을 위해서. '맛나당'의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순간이 내게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응, 된장 넣고 그냥 끓이면 돼."
이런 만병통치약의 처방을 내려준 어머니가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집안이란 우주의 이치를 통달한 그녀가 없다면 아마 나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만 같다. 물론 서서히 적응하고 내 방식대로 소우주를 운행해나갈 테지만 그래도 '어머니'란 어미가 주는 먹먹한 사랑의 마음은 절대 잊지 않겠다.

<달려라, 아비>가 아버지, 편의점으로 치환되는 시대를 그렸다면, <침이 고인다>는 어머니, 단칸방으로 대표된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의 주인공은 블랙박스를 어머니라 생각하며 두 손으로 차가운 볼을 만졌다. '칼자국'에서 1,500원을 주고 특수 스댕 칼을 산 것도 바로 어머니다. '도도한 생활'에서도 만두집을 하는 엄마는 '보통'의 기준에 따라 피아노를 사줬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자식에게 걸었다. 지금의 고통과 슬픔은 미래에 아이들이 얻을 행복의 밑거름이란 생각을 굳게 믿고 그저 버텼다. 자꾸 어머니의 퉁퉁 부은 발목과 소녀 같은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울적해졌지만 나는 그녀에게 '자부심'이란 생각과 함께 묘한 사명감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 그녀가 챙겨준 고추장소고기 볶음을 밥에 비벼 먹었다. 물론 곰팡이와 정체 모른 벌레와 함께 사는 허름한 42-1번지 좌측 자취방에서 말이다. '성탄특선'에서 12월 25일 모텔, 여관, 혹은 여인숙까지 돌아다니며 그들만의 공간을 갈구하던 커플, 층층이 내려앉은 고시원과 겨울나무가 보이는 공간에서 바삭 말라가는 신림동 고시생.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 속에서 그들은 모두 무섭도록 차가운 사회적 상황을 대변한다. 그리고 '침이 고인다'에서 하기 싫은 꼭짓점 댄스에 의식을 맡기는 주인공을 보며 예감했다. 대학생 꼬리표를 끊고 회사원이란 ID카드를 목에 걸면 무한대의 스트레스가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말처럼 아마 이렇게 버티겠지?

"아울러 '그만둘까'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월급날은 번번이 용서를 비는 애인처럼 돌아왔다."

그녀는 점심시간마다 학원 옥상에 올라가 ‘꼭짓점 댄스‘를 춰야 했다. 팔과 다리를 벌린 후 하나 둘 셋 전진, 찍고, 다시 하나 둘 셋 틀고. 거기, 박선생님, 45도! 45도 몰라요? 확성기 소리에 다급히 목을 꺾고 반대로 갔다가 옆 사람과 부딪힌 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강약약. 한여름, 그늘 한 점 없는 옥상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안무를 따라 하는 동안 그녀는 줄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단체 기합‘과 ‘장기 자랑‘이었는데, 꼭짓점 댄스는 그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마블링처럼 엷게 번져가는 핏물을 바라본다. 오늘, 학원 가지 말까? 그녀는 고민한다. 그녀가 뭔가 선택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후다닥 찬물에 머리를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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